모바일게임의 뽑기, 그리고 결제는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지만 많은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한 청년의 모바일게임 뽑기와 그 이후의 생활, 그리고 뒤늦은 후회와 관련된 스토리를 리얼하게 담았습니다.


2013년 12월. 어느 모바일 퍼즐 게임에서 특정 유닛이 뽑기에서 잘 나오는 앙케이트 이벤트를 실시했다. 열 가지 유닛 중 필자에게 필요한 보라색 닌자 한 마리가 있었고 그동안 저 닌자가 없어서 이래저래 아쉬웠던지라 통 크게 질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걔 한 마리 안 나오겠냐며. 그리하여 운명의 날. 약 15분에 걸쳐 25만원을 소비한 결과

“안 돼! 제발!!”


필자 시간 대비 최고가를 갱신한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25만원이 날아간 그 순간엔 그냥 어깨에 힘이 빠졌다. 그 이전에 몇 만원 결재해서 대차게 망했을 때가 오히려 더 화나고 머릿속에 뵈는 게 없어서 대체 이 뽑기 누가 설정했냐고 가슴에 불이 붙었지 이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리액션이 거의 없었다. 달리는 전차 안에서 몇 분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다음 머릿속에선 내가 이렇게 날려먹은 금액으로 뭘 할 수 있는가 계산을 시작했다.

부질없는데도. 이제 와서 그래봤자 돈은 안 돌아오건만.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당시 위시리스트 1순위였던 모 신형 콘솔 가격과 비교하기 시작해 중고 사과폰, 밀린 만화책과 소설 구입 목록, 블루레이 발매 예정표, 영화표 값, 원조 TCG 부스터 가격까지. 그리고 낸 결론. 기다리자. 기회비용을 모조리 모바일게임에 쏟아 부은 이상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으니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자. 그 생각만 들었다. 이 물러터진 생각은 몇 분 뒤 지하철에 내려서 자판기에 캔 커피 하나 뽑으려 할 때 산산조각 났다.

‘내가 지금 얼마가 필요하지?’

반 년 넘게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느낌. 문자 그대로 앞이 막막했다. 안이했다. 한심했다. 멍청했다. 고정수입 없는 학생 신분에게 25만원은 당장 생활에 차질이 생기는 ‘빚’이란 건 진작 알았으면서! 700원. 1천원 지폐 한 장 쓰고 동전 3개 받는 그 가격조차 각오 혹은 계산하지 않으면 쓰기 어려워져버렸다.

이 순간부터 카드 값에 해방되기까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간의 생활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협소한 공간과 한정된 예산 가지고 용케 취미생활 몇 다리 걸치면서 “내 생활패턴, 성격에 파는 것도 일, 무조건 소장용만 사자.”라 다짐하며 모았던 수집품들을 상당수 정리하고 쓰는 시간과 수고를 감안하면 무조건 손해 본다 여렸던 찾아가는 직거래와 중고 받아주는 매장으로 달려가 떨이로 물건 넘기기를 수차례, 당장 돈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건 그런 문제였다.

이따금 모바일 게임에서 수십, 수백만 원 결재하는 이용자를 일컫는 ‘과금전사’들 눈에야 고작 25만원 가지고 유세 떤다 여길 수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유세 맞고. 필자보다 사정이 어려운 수많은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에겐 다른 취미생활도 같이 했단 시점에서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기 딱 좋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고자 바는 “누가 가장 불행해! 힘들어!” 가 아니다. 모바일게임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의 보급으로 누구나 즐기고 있는 매체로 자리 잡았으며 그 유저들 속에는 필자처럼 25만원 가지고 생활에 대격변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런 유저들도 모바일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필자처럼 돈을 쓴다. 지금부터 적는 내용은 그런 유저에게 바치는 필자의 치부다.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뻔한 결론이다. 인터넷의 흔한 훈수 소재조차 못 된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무슨 반응이 나오든 다 필자가 바라는 바이다. 딱 하나. 필자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나는 생활을 바쳤다-

일단 저 퍼즐 게임 얘기부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의욕을 잃어 지금은 접속 보상만 받고 있다. 그렇다고 바로 접었던 건 아니다. 25만원에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긴 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쓴 돈이 아까워서 접을 생각은 못 했으니까. 그리고 노렸던 것만 안 나왔지 결과 자체만 따지면 딱 쓴 만큼만 뽑아서 게임을 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붙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부은 탓에 이 게임 말고 즐길 여건이 되는 취미 생활 자체가 없었고. 그런데 이다음부터 게임이 그렇게 재미가 없더라. 분명 해당 게임은 주기적으로 콘텐츠를 추가하고 필자는 필자대로 동원 가능한 수가 많아져서 객관적으로 따지면 게임에 재미를 붙이기 더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미가 없어지니까 특정 시간에만 출현하는 던전을 챙기기 귀찮아졌고, 그 던전에 갈 일이 없으니까 스태미나 소모가 큰 던전만 몇 번 돌다가 그것마저 귀찮아졌다. 그렇게 게임을 접어갔다. 한창 즐기던 시절엔 한 끗 차이로 랭크 업과 스태미나 회복이 걸리면 졸린 눈 비비며 기다렸건만 재미가 없으니 스태미나를 100, 200 낭비하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엔 단 하나의 생각이면 충분했다.

‘네가 뭔가 감히 나에게!’

동전 하나 쓰기 겁나는 생활을 보내면서 이 게임이 점점 괘씸하단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좋다고 달려들어서 적당히 할 줄 모르다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 것뿐인데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경험 없는 초짜면 뭘 몰랐단 핑계라도 가능하지 필자에겐 이것이 첫 모바일 게임도, 첫 결재도 아니었다.

2012년 9월 1일 필자가 구글 지갑에 카드를 등록하고 처음 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바일 게임에 쓴 비용을 계산 해보니 총 결재 횟수는 150회, 액수는 2047$(약 211만원)이었다. 여기엔 저 퍼즐 게임에 앞서 거래소로 주식 시장의 위험성을 알려준 게임도 있었고 백만 명이 마라톤하면서 함부로 경쟁 이벤트 뛰지 말란 교훈을 알려준 게임도 있다. 범위를 좁혀 이 게임에 쓴 돈 만 따져도 8개월 동안 총 37회에 걸쳐 958$를 결재했고 저 25만원은 240$, 약 1/4다. 돈을 하루 이틀 쓴 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초보처럼 절제하지 않은 나를 탓하지 않으면 누구를 탓하랴.

그리하여 내 생활을 모바일 게임에 바친 책임은 내가 지어야 했다. 앞서 적었듯이 남들이 사줄 물건들을 총동원하여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여기에 집중하면서 재미까지 잃어버리니 더는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들인 돈,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얘 때문에 힘든데 뭐가 아쉽고 아까워서 매달려야한단 말인가. 필자는 그랬다.

-나는 생활을 되찾았다-

그렇게 모바일 게임과 멀어지니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수확은 심신의 안정. 이른바 내면의 평화였다. 모바일 게임을 그만두고도 카드 값의 여파는 남았었고 진열 모습만 봐도 뿌듯했던 소장품들의 빈자리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생활은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생활의 일부였던 모바일 게임이 사라지면서 붕 뜬 시간이 낯설던 건 오래가지 않았다.

모바일게임에 썼던 시간이 때로는 집에서 재미없는 전공 서적이나 복습하는 걸로, 언제는 구글 영화에서 1천원 내고 놓친 영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그러다 돈이 없어 놀지를 못 하니 산보나 조깅으로 시간을 보내니까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돈이 없는데 무슨 생활 패턴에 변화가 생기겠는가). 더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면서 그동안의 게임 라이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을 뺏기고 있었구나.’

비록 돈 백 만원 쓸 때까지 분별없이 지른 몸이지만 무엇이 생활이고 무엇이 족쇄인지 구분할 줄은 알았다. 없어서 더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생활이고 취미일 수는 없는 노릇. 시작할 땐 생활의 활력소를 담당했을지 몰라도 언제부턴가 그리고 그만둘 때까지 내 생활 속 모바일 게임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더 일찍 느껴야 했다. 지금까지 하나의 모바일 게임을 그만 둘 때마다 이벤트 진도를 못 따라가서, 열심히 노렸던 목표 달성에 실패해서, 재미가 없어서란 이유가 붙었으나 돌이켜보면 그 때마다 필자의 생활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본능에 따라 운 좋게 빠져나왔고 이런 요행 속에서 제대로 깨우칠 기회를 필자는 놓쳤다. 돈 쓰는 방법을 몰랐으면 게임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도 좋아야 했는데 그러지조차 못했다. 욕망에 눈에 멀지 않고 노리던 유닛을 제대로 평가했으면 10만원 아니, 5만원만 투자하고 끝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당 유닛이 없어서 베스트는 아니었으나 그전까지 718$을 쓰면서 차선은 갖추고도 남았던 상황. 베스트와 차이는 고난이도 몇 던전에서 재도전이 필요하냐 않느냐의 차이뿐이었다. 한 번 재도전에 1$이니까 필자는 그 재도전 안 하겠답시고 240회의 재도전을 포기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른 셈이다.

이렇게 멍청해서야 별 수 있나. 머리로 못 배우면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몸으로 배우는 비용이 25만원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한편으론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돈 쓰는 유저만 이기는 게임, 돈과 시간, 여기에 생활까지 전부 바쳐야 간신히 성립하는 게임, 기만술로 유저의 신뢰를 배신하는 게임을 만나지 않은 것 역시 그나마 운이 좋았던 부분이다. 이런 게임들을 만났으면 이쪽이 정상이라 여기며 끝까지 생활을 뺏겼을 테니.

-나는 생활을 산다-

필자는 계속 모바일 게임을 한다. 생활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모바일 게임이 언제 어디서나 시작하고 끝내기 편한 매력적인 문화 상품이다. 게다가 현재 벌어지는 각축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게임들이 펼치는 생존전략들은 게이머 입장에서 끌리는 것들이 많다. 필자는 여기에 홀려 매우 매우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참가했단 소식에 조공 바치거나 외딴섬에 탐정들 모였다가 발생한 배틀로얄의 배드엔딩들을 수집하기 위해, 모 아이돌 그룹의 라이브를 보려고 또 돈을 썼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모바일 게임에서 결제는 일종의 유지비, 아무런 투자 없이 그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내 시간과 수고를 팔면서 끈기마저 가져야 하는데 이러면 자기 생활 망가지기 딱 좋다. 구글이 오는 9월 말부터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결제 시스템이 포함된 모바일 게임에 대해 '무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변경한 일 역시 사실상 완전 무료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기 어렵단 점을 반증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로 확률 놀음하는 뽑기만큼은 삼세번을 넘기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초기비용의 마지노선. 나머지는 무조건 재도전 혹은 시간을 사는, 자기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만 돈을 썼다. 당연히 뽑기에서 나올 강력하고 희귀한 유닛들이 탐났다. 그러나 아무리 게임을 편하게 해줘도 이제 필자는 그것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 어디 감히 게임이 좀 편해지겠다고 주인님의 생활을 침범하려드는가.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재밌고 뛰어나고 위대한 게임 이어봤자 사람이 먼저다. 더 중요하다. 하물며 플레이가 편해서 장점인 모바일 게임이 유저를 불편하게 만들려하다니 가당치않은 만행이다(정 게임을 계속 하고 싶으면 바다 건너 있는 이름난 연쇄할인마를 찾아가자. 11연 뽑기 비용이면 가격 대비 퀄리티가 뛰어난 명작들을 몇 개나 소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돈 쓰는 방법에 정답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오답들은 분명히 있다. 모바일게임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답들을 피할 때 유저가 즐기는 모바일게임은 분명 더 알차리라 감히 주장해본다.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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