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보부상처럼 팔아야 되는 거야.”

자신이 판매하는 아이템의 구매자가 계속 나타나지 않자 판매자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판매 역시 경쟁의 일부라는 사실을.

1대1 거래가 게임의 특징 중 하나인 ‘카이저’의 월드 채팅창은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몬스터를 사냥해 쟁취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나타납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의 아이템을 홍보해 구매자를 유혹합니다.

처음부터 경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픈 초기 상황은 물품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았기에 판매자가 ‘갑’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부르는 게 값’ 혹은 ‘엿장수 맘대로’가 통용됐습니다. 구매자가 판매자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알랑방귀를 뀌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가격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시간이 지나 ‘침묵의 숲’에서 아이템을 습득한 유저가 많아졌습니다. ‘플랫보우’, ‘클레이모어’ 같은 인기 상품의 판매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 시간대에 같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판매자가 늘어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가격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2000 다이아선(카이저02서버 기준)으로 거래되던 희귀 무기 가치가 800까지 떨어졌죠. 더불어 ‘용사의 오브’는 희귀 아이템이지만, 워낙 공급이 많아 100 가격에도 팔리지 않는 골칫덩이가 되었습니다. 판매가 되진 않지만, 막상 분해하기는 아까운 계륵 같은 존재로 말이죠.

판매자의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점점 자신의 상품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죠. 구매자를 혹하게 하기위한 ‘유혹의 소나타’가 펼쳐졌습니다. “크리스 구매하면 사냥속도 엄청 빨라집니다. 시간을 사시는 겁니다.”, “플랫보우 사시면 덤으로 백금반지 5개 같이 드립니다.”같은 말로 구매자의 구미를 당겼습니다.


새로운 전략도 있습니다. 강화로 아이템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카이저는 강화가 실패했을 경우 아이템 파괴되어 사라집니다. 덕분에 강화에 성공한 물건의 가치가 상당합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더욱 그렇죠. 예를 들어 8강 플랫보우가 8000다이아에 판매되는데, 아무도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제시를 하지 않습니다. 큰 리스크를 안고 도박에 도전한 판매자가 받을만한 마땅한 성과라 생각하는 것이죠.

수시로 변하는 가격의 판세를 파악하지 못하면 ‘호갱’이 되기 십상입니다. 어제 봤던 아이템이 가격이 1200선으로 거래됐더라도, 다음날 똑같은 가격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면 손해를 봅니다. 순진한 어투로 “1200에 사려는 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면 판매자는 “옳다구나”라며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순진한 구매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갖은 고생 끝에 능구렁이로 변모한 유저도 있습니다.그들의 언변은 상식을 벗어납니다. 판매자에게 ‘얼른 내놔’라는 압박감을 줍니다. “그거 어차피 곧 많이 풀릴 텐데, 가격 더 내려가기 전에 제가 부르는 값에 파는 게 이득일걸요?”라고 말이죠.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습니다.


지금도 판매자와 구매자의 진검승부는 계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싸움이 치열하게 나타나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아이템가치가 결정되는 만큼, 카이저의 ‘거래 경쟁’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만간 ‘매점매석’이나 ‘사기' 같은 사례가 나타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는 모두 유저가 시장경제의 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높은 자유도를 누릴려면 그만큼의 각오가 있어야 하는 셈입니다.

카이저는 철저하게 가격을 분석하고 더불어 끊임없이 상대를 속여야 살아남습니다. 단순하게 캐릭터가 강하다는 스펙 하나로 버티기가 어려운 세상이죠. 카이저에서 생존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모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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