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가 잠시 버튼에서 손을 떼고 감상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시네마틱이나 이벤트 컷, 작게는 NPC와의 대화가 나타나는 경우다. 그 자잘한 순간이 모이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결국 플레이를 오래 할수록 유저들은 점차 스킵 버튼을 누르게 된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싫은 사람은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게임을 같이 진행하는 파티원이 함께라면? 온라인게임의 스토리 스킵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개발자 입장에서 아까울 만도 하다. 시네마틱 하나 멋지게 뽑으려고 사무실에서 들이킨 에너지음료가 몇 병인데. 유저들 역시 할 말은 있다. 스토리를 정말 재미있게 뽑았으면 스킵 버튼을 눌렀겠냐는 것. 

그렇게 게임사들은 스킵 버튼을 두고 유저와 싸워왔다. 전쟁의 역사를 되짚으면 역으로 지금의 전략 전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연출을 비롯한 스토리텔링의 활약도 있었지만, 결국 온라인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스킵 방지 전술은 게임 시스템이다. 

혼자 즐기고 시나리오 신뢰도가 높은 싱글게임은 대부분의 유저가 스킵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스토리와 연출로 유명한 라스트오브어스나 위쳐3마저도 시네마틱을 모두 스킵하면서 진행했다는 유저가 존재했으니. 액션에 더 비중 있는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온라인게임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스킵에 맞서기 위한 게임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다른 유저와 섞이거나 경쟁하는 게임은 이벤트 감상을 포기하더라도 빠른 성장에 비중을 두는 유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느긋하게 영상을 다 보고 대사 하나하나 다 읽다가 중요한 레이드 자리를 놓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내가 본 것들을 스킵하고 먼저 달려갈 것이기 때문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는 스토리에 유저를 잡아놓는 분야에서 MMORPG 중 선구자 역할을 했다. 특히 리치왕의 분노 확장팩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한 위상 변화 시스템은 큰 이정표였다. 내 플레이에 따라 갑자기 주변 배경과 인물이 바뀌고 다른 월드에 진입하는데 관심을 안 가지기도 힘들다. 유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는 스토리텔링에서 매우 중요하다. 위상 변화를 적극 활용한 덕에 인게임을 벗어난 시네마틱 역시 많지 않았다. 다만 그 소수의 시네마틱이 워낙 강렬했을 뿐.

WoW가 보험설계사의 흡입력을 발휘했다면 파이널판타지14는 법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온라인게임이지만 스토리 감상에 공들이기로 유명하고, 파티 던전이나 레이드에 시네마틱 영상이 나오는 빈도가 높은 특징이 있다. 그래서 운영진은 초행유저 포함 시 파티에 파격적인 보상 보너스를 제공했고, 스킵 강요를 아예 신고 및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스토리 감상은 모든 유저가 간섭받지 않아야 할 정당한 권리라는 취지다.

한국 게임은 어떨까. MMORPG가 발전한 시장이지만, 이런 고민에 대해서는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다. 블레이드앤소울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시네마틱 연출을 사용했는데, 오픈 초기는 첫 던전에서 강제 스킵을 못하게 만들어 수십 번 경험한 파티도 질리도록 다시 봐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모바일게임 전성기가 열리고 나서 스킵 방지에 관한 고민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회전이 빠르고 신작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유저를 사로잡을 무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RPG 중 스토리텔링으로 호평을 받은 킹스레이드는 전투 진행 도중에 대화를 집어넣어서 디테일을 살리는 동시에 유저가 조금이라도 스토리에 눈길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했다. 다만 이것 역시 전투의 흐름을 깬다는 반응도 소수 존재했다.

최근 지스타에서 세븐나이츠2를 시연하며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인플레이 대화다. 필드에서 전투하며 나아가는 동시에 왼쪽 파티창에서 더빙과 함께 캐릭터간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메인 스토리와 다른 시선에서 각 캐릭터의 성격과 서로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고, 게임 진행을 스토리가 방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단조로울 수 있는 필드 진행을 맛깔나게 살려주는 양념 역할을 한다. 스토리와 인플레이가 서로 Win-Win 구도다.

콘솔게임 중 일부가 이런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모바일게임에서 이 정도로 깔끔하게 구현된 것은 처음이다. 사운드만 겹치지 않게 공들인다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열 수도 있다. 앞으로 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이 시스템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최근 화제의 주인공인 로스트아크 역시 시스템으로 스킵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말 중요한 스토리만큼은 스킵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편, 솔로 플레이로 던전을 돌아도 난이도 보정을 통해 어렵지 않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빨리 진행하자는 눈초리를 피해 던전 스토리를 즐기려는 유저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 

핵심만 말하자면, 스토리가 유저들에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유저 스스로 스킵하고 싶지 않게끔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 시스템으로 보완하기 위한 고민이 게임계에서 계속되었고, 관련 기획은 최근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모바일게임은 이와 관련해 악재와 호재가 동시에 있다. 악재는 게임이 발전할수록 빠르고 편한 진행이 중시된다는 점이고, 호재는 세븐나이츠2의 사례와 같이 빠른 진행과 스토리 구현을 동시에 잡을 만큼 노하우와 개발력이 발전한다는 점이다. 

스토리를 보여주려는 측과 피하려는 측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게임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 발전한다면 반드시 스토리 파트를 인플레이와 분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게임 설계가 대세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 게임계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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