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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드라마로 증강현실 게임을 만나는 시대
길용찬 기자 | 승인 2018.12.05 16:45

증강현실(AR) 게임을 중심 소재로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때, 기대보다 우려 섞인 반응이 많았다. 게임 소재의 실사 콘텐츠가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았고, 소위 '오글거리는' 장면이 튀어나오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설령 자본과 기술을 집중한다고 해도 반드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충격적인 역사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근심 반을 얹고 주말에 TV를 시청했다. 예상은 틀렸다. 흡입력은 강렬했고 게임에 대한 해석도 탁월했다. tvN 새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비밀의 숲을 연출한 안길호 감독과 나인, 더블유(W) 등의 각본을 쓴 송재정 작가가 제작한 서스펜스 로맨스 드라마다. 

대형 IT투자회사 대표인 주인공 유진우(현빈 분)는 천재 프로그래머 정세주(찬열 분)가 만든 증강현실 게임을 경쟁사 대표가 100억 원에 사들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급히 그라나다로 향하고, 게임을 플레이한 결과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마법' 같은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00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던 진우는 세주의 누나 희주(박신혜 분)와 필연적으로 엮이면서 이야기가 확대된다.

사진 제공: tvN

"앞으로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이 아니라 마법의 도시로 유명해질 겁니다"

1999년 출간된 김민영의 소설 팔란티어(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는 장르소설 마니아 사이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역시 비슷한 초반 전개를 보인다. 전세계 패러다임을 바꿀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 게임의 베타판을 플레이하게 되는 주인공과, 그 게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송재정 작가의 전작 더블유에서 팔란티어 책이 소품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드라마는 증강현실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증강현실은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가 유리되지 않는다. 1화 후반부 진우가 밤을 꼬박 새우며 첫 적과 전투를 벌일 때,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허공에 혼자 허우적거리는 진우를 보며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는 장면이 그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실에 게임 화면이 겹쳐진다는 것은 두 세계의 충돌과 혼돈, 그리고 갈등을 불러온다. 포켓몬고 열풍 당시에도 안전이나 군사보안 및 사생활 보호 등 과제가 대두되기도 했고, 그런 논점은 나이언틱의 전작인 인그레스부터 존재했다. 각 포탈에 접속 로그가 시간과 함께 표시되는 인그레스 특성상 유저의 직장 동선과 거주 지역까지 유추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상대 진영 유저의 현실 추적이나 스토킹 등의 사건이 종종 발생한 적이 있다.

2화 마지막에서 이 드라마의 미래가 반드시 장미빛이 아닐 것임을 암시한다. 1년 뒤 그라나다로 향하는 기차에서 진우는 초라한 행색으로 총격전을 벌인다. 이때 승객 중 상당수는 비명을 지르지만 일부는 평화로운 것을 봤을 때 게임 속 세계로 추측된다. 현실과 너무나 비슷한 증강현실 게임이 보급되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변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대표님, 게임은 운동신경이 아니라 아이템빨이에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대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3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예상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채널을 돌릴 유형, 게임은 잘 모르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보는 유형, 그리고 안 보다가도 찾아서 보게 되는 게이머들. 실제로 일요일 2화는 전국 시청률이 약간 내려갔지만, 대신 2049 타겟시청률이 대폭 올랐고 화제성도 최상위로 측정되었다.

게임 경력이 깊은 시청자가 흥미롭게 볼 포인트도 많다. 주인공 진우가 레벨 1부터 만나서 밤새도록 죽어가며 싸우는 나사르 왕국의 전사는 다크소울3 튜토리얼에서 만나는 재의 심판자 군다가 연상된다. 시작부터 수많은 소울류 초심자들을 눈물짓게 하고 다수는 여기서 게임을 포기하기도 했던 악명 높은 문턱이다.

증강현실이라는 점에서 포켓몬고는 언급될 수밖에 없고, 게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한때 떠들썩했다가 개발 현황이 불투명한 구글글래스를 떠올리게 한다. 무기를 찾거나 목표 지점으로 향할 때 지도와 내비게이션이 표시되는 부분은 최신 콘솔게임들에 밀리지 않는 UX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이 게임이 실제라고 가정했을 때 가장 놀라운 부분은 증강현실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현실 자동차 위로 하강하며 공격하는데 차 유리가 터지며 흩날리는 효과까지 연출한다. 당연히 현실 속 차는 멀쩡하다. 물론 가상의 무기를 집을 때 실제 감촉을 구현한다는 점도 굉장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판타지에 가깝다.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왜 하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일까? 동명의 음악이 있지만 연관성은 없어 보이고, 이 드라마와 게임에서 스페인 그라나다와 알함브라 궁전이 배경이어야 하는 이유는 찾기 힘들다. 그 바람에 제목도 길고 직관적이지 못하다.

먼저 떠오르는 가능성은 2003년 리메이크된 '알함브라' 보드게임이다. 원작은 무려 1979년에 나온 만큼 역사가 깊다. 서로 전략적으로 건물 타일을 사들여 자신의 궁전을 연결하고 지으면서 건물 점수를 가장 많이 받은 유저가 승리하는 방식. 경쟁과 승자 독식이라는 게임 방식이 드라마에서도 나타나지만, 정확하게 와닿는 공통점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한 추측은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 흔적이 현대와 공존하는 그라나다의 특색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게임과 현실 세계가 겹쳐지는 드라마 소재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단순히 이국적인 정취가 필요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문이 풀릴 가능성이 있으니 앞으로 중요한 시청 소재로 지켜볼 만하다.

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안심하고 시청하자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C.클라크

검증된 PD와 작가가 만나고, 여기에 tvN의 유연한 투자가 결합되자 전례 없이 잘 만든 증강현실 게임 드라마가 탄생했다. 현빈과 박신혜의 비주얼과 열연, 여기에 EXO 찬열의 너드(Nerd) 캐릭터 연기도 흥미롭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게임'과 '증강현실'의 테마가 어떤 식으로 풀려나갈 것인지다. 마법은 그 자체로 인간과 사회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떻게 쓰고 억제할지에 달리기 마련이다. 결국 현실에서 게임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여담으로, 드라마 속 증강현실 게임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고작 100억에 사려고 한 경쟁사 대표는 도둑놈 심보였던 것이 맞다. GTA5가 추정 개발비 2500억 원 가량에 매출 3조 원을 넘겼다. 정말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이라면 인프라 및 플랫폼 사업을 포함해 100조 원 가치라는 진우의 말이 지나치지 않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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