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게임, 얼마나 즐거우셨나요? 2018년 마지막은 게임 경험담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1월 시작과 함께 어떤 게임을 경험하고서 경악했고, 불과 며칠 전 또 다른 게임에서 놀랐습니다. 게임에서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소름 돋고 멋진 일입니다.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말이죠.

'소름'은 여러 이유가 나뉩니다. 굉장히 멋있거나, 무섭거나, 당황스럽거나. 그밖에 여러 방식으로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게임들을 떠올렸습니다. 지나치게 못 만든 게임을 만났을 때도 소름 돋긴 하지만 그 경우는 제외했습니다. 연말은 역시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보내야 아름답지 않겠어요.

즐긴 순서로 정렬했습니다. 1년 동안의 기록을 한 페이지에 돌아보고 나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게이밍 경험은 정말 최고였다고.

1월 :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 - 최초의 '그 장면'

스포일러 때문에 구체적인 표현은 못 하겠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평범한 미소녀게임처럼 흘러가던 게임이 지옥으로 변하는 데는 단 한 방이면 충분했죠. 그 뒤로 엔딩까지 사람 심리를 가지고 노는 타이밍과 연출이 절묘했고, 얼핏 엽기적일 뿐인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참 잘 만들었습니다. 스토리의 큰 줄기도 일관적이었고요.

스팀 상점 페이지 인기 태그에 '심리적 공포'가 붙어 있어요. 그냥 '공포'도 있고요. 이거, 무시하지 마세요. 게임 실행 경고문에도 나오는 것처럼 노약자와 임산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은 플레이를 삼가야 합니다. 하지만 심리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아직 이 게임을 모른다면 속는 셈 치고 해보세요. 심지어 무료니까요. 

2월 : 몬스터헌터 월드 - 바젤기우스 테마곡이 처음 흘러나온 순간

처음 듣는 포효가 울려퍼지고, 비룡 한 마리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바젤기우스 테마 음악. 몬스터헌터 세계에서 정말 웅장하게 들렸고, 긴박감 넘쳤고, 무엇보다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아직도 가끔씩 듣습니다. 그 바젤기우스가 공중에서 융단폭격을 투하할 때 건랜스를 들고 있던 저로서는 손에 땀이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드 방향 한번 틀리면 방패 든 바베큐가 되는 운명이었으니.

물론 모든 유저가 그렇듯 얼마 되지 않아 지긋지긋해졌죠. 이 녀석, 게이머 인생에서 만난 '관종' 중에서도 손꼽히는 녀석이었어요. 다른 몬스터와 싸울 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폭탄 뿌리고, 음악도 자기 테마로 덮어버릴 정도로 소름 돋는 관심병을 가지고 있었고요. 역시 훌륭한 관심종자의 필수 조건은 등장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죠.

3월 : 검은사막 모바일 -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화면

처음 실행하며 생각했습니다. "검은사막이니까 그래픽은 뭐, 좋겠지". 그게 모바일 플랫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모바일치고'가 아니라 그저 대단했습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퀄리티는 이 게임이 PC온라인이었다고 해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거든요. 

최대한 확대해도 피부와 헤어 질감이 깨끗하게 표현될 만큼 말도 안 되는 해상도, 모바일에서는 비교 대상조차 없는 커스텀 자유도, 이 그래픽에 거의 끊김이 없는 최적화까지. 캐릭터 선택창에서부터 이미 모바일게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을 만합니다. 전체적 그래픽도 최고 수준이었고요.

4월 : 갓오브워 - 처음부터 끝까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한두 번은 끊길 거야, 아니야? 이렇게 월드 환경이 다 뒤집어지는데 씬 전환이 없어? 와, 진짜 끝까지 해낸다고? 지독한 사람들...

제 갓오브워 소감은 위의 감탄사로 요약됩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게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싱글샷(Single Shot) 롱테이크(Long Take)'로 풀어낼 줄은. 한 번도 컷이 전환되지 않았습니다. 그 볼륨과 액션과 재미와 퀄리티와 상호작용과 내러티브를 다 담아내면서 원테이크 구성을 위화감 없이 완성하기 위해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그 외 모든 제작진이 얼마나 뼈를 깎아냈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몰입감을 지닌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거기에 유저를 내버려두고 영화처럼 혼자 알아서 하는 연출이 아닌, 유저가 직접 컨트롤하는 액션 자체가 그대로 연출이 되었죠. 다 적자면 끝이 없으니 줄이겠지만, 올해 최고의 게임 2개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당연한 걸작입니다.

5월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 내 선택으로 요동치던 플로우차트

'이 게임의 스토리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라는 말은 그동안 홍보 문구에만 존재하는 구전 설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였습니다. 체험판 플레이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본편 분기점에서는 현기증이 났습니다. 

퀀틱 드림 당신들은 역시 다르구나. 등장 인물들이 '기억'만 하지 않는구나!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제 손으로 직접 바꾸는 스토리를 즐겼습니다. 저의 코너는 3번 죽었고요, 혁명은 어떻게든 성공은 했는데 신기할 정도로 줄초상이 났지요. 경우의 수를 다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기와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각자 고유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6월 : 셀레스트(Celeste) - 이 악물고 트라이하다가 결국 클리어한 그 성취감

항상 다짐합니다. 앞으로 플랫포머 게임을 하지 말자고. 돈 주고 고통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지만 또 해버렸습니다. '갓겜'이라고 입소문도 다 났고 아트 스타일도 취향에 맞는데 게이머가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그렇게 셀레스트와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습니다. 거울 신전부터는 오우, 아, 정말. 여기가 그저 등산로라는 사실이 실화인가요.

하지만 결국 클리어하는 순간은 슈퍼미트보이 이후 가장 짜릿했고, 올해 최고의 인디게임으로 추천할 만큼 잘 만들었습니다. 맵 구성과 사운드 등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고, 컨트롤 방식도 다채롭죠. 스토리 엔딩을 보면 더욱 하드코어 난이도인 B-Side, C-side가 기다리고 있으니 끝이 없는 성취감을 경험해보세요. 저만 당할 수 없으니까요.

9월 : 월간아이돌: 아이돌키우기 - 열정착취하는 괴물이 된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아이돌 소재를 활용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데요. 소속사 사장이 된다는 매력적인 발상에 월간아이돌을 시작했습니다. 곱고 바르게 키우자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며칠 뒤부터, 저는 신문 사회면에 가끔 나오는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수익 배분 조절 업데이트가 나왔다고? 9:1로 하자. 물론 내가 9. 내 돈 들여서 키워주고 음반 내주는데 이 정도는 해야 돈 벌잖아? 옆집 사장은 11:-1로 가진다더라. 인기멤버가 술 먹고 사고 쳤다고? 신문사에 돈 보내서 입 막아. 팬들과 소통방송? 그거 돈 안 되잖아. 표절곡 만들어서 해외투어나 계속 돌리자. 피곤하다고 뻗으면 약 먹여서 살리고 또 보내자..."

게임은 게임일 뿐입니다, 여러분.

9월(2) : 마블스 스파이더맨 - 헬기 추격씬

속도감에서 특별했습니다. 오직 스파이더맨이기 때문에 구현할 수 있는 웹 스윙 이동, 그로 인해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이벤트. '패드가 손에 착 감긴다'고 하죠. 적절한 타이밍에 줄을 탁 떼고, 뉴욕 빌딩 숲을 크게 회전하며 다음 줄을 감아올리며 날아오를 때의 쾌감은 직접 컨트롤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멋진 장면이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절정을 달린 순간이 있습니다. 프로모션 영상에도 나왔던 헬기 추격씬이죠. 추격 자체도 저 세상 긴박감을 선사하지만 부서지는 건물을 돌파하면서 헬기를 향해 달려가는 부분을 제일 좋아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직접 해봐야 특유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요.

 

10월 : 레드데드 리뎀션2 - 생 드니에서 무심코 만난 최고의 공연

갓오브워와 더불어 2018년 최고의 게임 2개 중 하나. 이 게임은 크게 두 가지에서 놀랍니다. 하나는 자유도, 하나는 디테일. 놀라는 빈도는 '쉴 새 없이'. 대도시 구경 다니다가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들어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이 중요도 0의 콘텐츠마저 이렇게 알차도 되나요. 차력쇼는 왜 재미있고, 아니 노래는 또 뭐가 이리 좋아요? 저 잘 부르는 보컬은 또 누구예요?

게임에 준비해둔 것이 너무 많아서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심심해서 스트로베리 시장을 암살해봤는데 미처 상상도 못 한 곁가지 스토리가 연결되거나, 그저 NPC간의 파티일 뿐인데 노래와 상호작용이 너무 현실감 넘쳐서 자리를 뜰 수가 없거나. 레데리2를 플레이하다가 감탄한 횟수는 올해 다른 모든 게임을 합친 것보다 많을 겁니다.

11월 : 로스트아크 - 영광의 벽, 광기의 축제, 삶과 죽음의 경계

로스트아크 CBT에 3회 신청해 모두 떨어진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11월이 되어서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전장에서 모두 때려부수고 나아가는 쾌감을 느끼게 해준 영광의 벽의 연출도 좋았고, 위기와 반전과 '갬성'까지 어우러진 광기의 축제는 그보다 조금 더 좋았습니다.

보통 중간에 왕의 무덤까지 포함해 3연타로 묶이지만, 제가 그 대신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던전은 '삶과 죽음의 경계'입니다. 이전 이벤트들은 정말 대단하지만 어느 정도 래퍼런스가 느껴진 것도 사실인데, 이 던전의 디자인이나 색채는 다른 온라인게임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바닥이 잘 안 보여서 부활의 깃털 몇 개 써야 했지만, 저에게는 이 던전 때문에 로스트아크가 빛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12월 : 그리스(Gris) - 색채 변화의 아름다움 그 자체

모두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그리스와 지냈습니다. 걸작을 만났기 때문에 알찬 하루였죠. 

'저니'로 대표되는 장르가 있는데요. 대사가 거의 없이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이야기와 감동과 힐링을 선사하는 게임. 슬슬 이 장르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나 생각하던 차였거든요. 그러다가 이 게임에게 머리 한 대를 세게 맞은 느낌입니다.

한 차원 다르게 아름답습니다. 진행에 따라 게임의 색감 전체를 바꿔버리는데 아트 디자인과 사운드와 기타 모든 것이 역동적으로 변화합니다. 소녀의 심리와 성장을 표현해내면서 스토리까지 잡아냅니다. 앞으로 매너리즘이란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미학적 게임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더욱 뛰어난 작품도 나올 겁니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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