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조상님들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이름이 후대에게 전해져 명예로 남는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로 평소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업적을 이루려 자기개발에 힘썼을 것이다. 

같은 메시지를 게임과 영화, 도서, 음악 등 21세기를 선도 중인 문화 콘텐츠 쪽으로 생각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민 케인’과 ‘프레디 머큐리’처럼 명작들은 오랜 시간이 흐를지언정 결코 잊히지 않고 대중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오르내린다. 

이러한 현상은 스토리와 음악, 영상 등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게임에도 적용된다. 소위 ‘세기의 명작’이 주는 감상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인 기준으로 선택한 ‘메탈기어 라이징’의 OST나 ‘오오카미’의 그래픽처럼 한 쪽에 두고 오랫동안 즐기는 ‘와인’ 같은 작품들도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에도 작품만큼이나 그래픽과 OST로 이름을 알린 게임들이 많았는데, 그중 출시된 지 10년을 넘긴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당시 3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컨트롤하는 ‘가문’ 시스템과 의상, 배경 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그래픽, 게임성 등으로 11회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양 판타지 세계관인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이름을 알린 것은 그래픽뿐만이 아니다. 당시 코나미의 BEMANI 시리즈에도 참여했던 쿠보타 오사무를 비롯해 김준성, SFA, SoundTeMP 등이 작곡에 참여한 높은 수준의 게임 음악도 대상 수상의 주요 공신이라 볼 수 있다. 

로그인 화면에서 들려오는 ‘Granado Espada’를 시작으로 게임의 시작지인 리볼도외의 BGM ‘Cite de Reboldoeux’ 등의 OST들은 당시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대표하는 ‘상징’ 그 자체였고 유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개인적으로도 ‘Old Speckled Reel’을 따로 녹음해, 등교할 때 듣거나 자습 시간에 집중 삼아 ‘Granado Espada’를 반복해서 들었을 만큼 그라나도 에스파다 OST는 학생 시절의 한 축을 장식한 의미 있는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OST에 이어 트리오브세이비어 특유의 그래픽도 개인적인 기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다. ‘라그나로크’를 연상케하는 2D 도트풍 캐릭터에 3D 배경을 입힌 그래픽은 어색하기는커녕 원래부터 한 몸인 듯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당시 화려하고 방대한 그래픽을 최고로 여겼던 내게 트리오브세이비어의 2014 지스타 영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트리오브세이비어의 첫 인상은 기존 서양 판타지 게임과 다른 ‘반지의 제왕’ 원작자 J. R. R. 톨킨의 세계관에 가까웠다. 젊고 멋진 선남선녀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종족들과 지역을 아우르면서 갑옷과 성, 8등신 캐릭터 등으로 고착화됐던 몇몇 서양 판타지 게임 세계관보다 매력적으로 돋보였다. 

비록 독특한 그래픽만큼이나 어느 쪽이던 상상 이상의 효과를 선보였던 버그들로 인해, 흠이 묻긴 했지만 라그나로크로부터 스피릿위시로 이어질 ‘동화풍’ 그래픽을 이야기할 때 트리오브세이비어는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작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라나도 에스파다, 트리오브세이비어와 갓오브워, 레드데드리뎀션2 등 ‘마스터피스급’ 타이틀 사이의 완성도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출시 당시 기술력과 제작비, 플랫폼 차이가 크고 개발사에 따른 문화적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향후 2-3년 전 GOTY 최대 수상작을 떠올리는 시간보다 ‘추억의 게임’을 되새기는 과정이 더 빠르고 유쾌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무법자 총잡이와 민머리 그리스 신보다 학생 시절이 즐거운 추억이 아무래도 가깝고 편한 법이니까. 

최근에는 로스트아크 ‘별빛 등대의 섬’이나 스피릿위시 등 OST와 그래픽을 마케팅 포인트로 세운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트리오브세이비어처럼 그래픽과 OST가 누군가의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이러한 마케팅 방식이 좀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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