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수많은 게임의 개발 정보가 공개될 때마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베꼈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논란이 커지곤 한다. 실제 완전히 가져다 쓴 게임과 약간의 모티프만 가져온 게임이 혼재되기도 한다. ‘짬뽕 게임’, 요즘 속어를 가져다 쓰자면 ‘스까 게임’이란 속칭이 여기저기 붙는다.

표절과 짬뽕의 정의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 소스나 세부 디자인을 가져다 쓰고 이펙트 등 그래픽을 똑같이 구성하는 것은 표절에 해당한다. 스토리의 디테일이 지나치게 닮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게임 룰이나 전투 시스템 등 아이디어에 해당하는 부분이나 연출 방식을 따라하는 것을 표절로 보진 않는다. 그리고 두 사례 사이에서 모호한 기준이 혼재하는 상태다.

게임의 표절은 아직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표절과 모방의 구분선에 대한 논의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첫째로 좋은 게임에서 영감을 받고 발전시키는 작업까지 위축될 수 있으며, 둘째로 정말 양심을 버리고 표절을 저지르는 행태가 묻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걸음은 확실한 모방 바깥에서 게임의 발전을 이룬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은 거의 없다. 이제 짬뽕의 맛을 따지고 연구할 때가 됐다.

디아블로 (1996)
디아블로 (1996)

우리는 소문난 짬뽕 맛집을 하나 알고 있다. 블리자드 이야기다. 블리자드 게임들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일은 드물다. 대신 기존 가능성 있던 시스템들을 잘 조합해 질 높은 게임으로 제공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중 디아블로는 잘 섞은 게임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존 RPG의 내러티브에서 탈피해 로그라이크의 랜덤 던전 생성과 실시간 액션을 결합했고, 콘텐츠는 던전 탐험과 파밍 중심으로 연결해 쿼터뷰 핵앤슬래시 시장의 막을 열었다.

기존 RTS 특성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고유 세계관에 맞는 정체성을 섞기도 했다. 우주 세계관에 맞는 빠른 게임 템포와 상성 플레이를 유도한 것이 스타크래프트, 영웅 중심의 컨트롤과 전략을 구성한 것이 워크래프트3. 결국 개성을 가진 게임으로 탄생시켜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에버퀘스트 (1999)
에버퀘스트 (1999)

이후 MMORPG의 기준이 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베타 초창기는 에버퀘스트 기반에 DAOC 진영시스템을 좀 섞은 아류작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영향을 받아 MMORPG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합류한 에버퀘스트 게이머 중 한명이 이후 오버워치 흥행을 진두지휘한 제프 카플란이다.

오버워치 역시 발표 당시 대부분의 서양 유저들은 밸브의 팀포트리스(Team Fortress) 시리즈를 먼저 떠올렸다. 카툰 분위기에 캐릭터간 역할과 스킬 구분이 이루어지는 하이퍼FPS 팀플레이 게임, 하지만 오버워치는 게임 템포를 차별화하는 동시에 캐릭터성을 선명하게 가져가면서 접근성까지 올렸다. 결국 이전과 마찬가지로 해당 장르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로 맛있는 짬뽕을 요리하는 일은 블리자드만이 가진 실력이었다. 게임 완성도를 어떻게 올리고 친밀하게 접근시킬 것인가, 모든 게임사가 생각하면서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다. 단순히 섞는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팀포트리스2 (2007)
팀포트리스2 (2007)

세계에서 작품성을 경쟁하는 AAA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은 특유의 스타일을 상당 부분 희생하는 것을 감수하고 타 오픈월드 게임들의 장점을 흡수해 만들어졌다. 기존 시리즈의 매너리즘을 탈피했다는 반응이 우세했고, 후속작인 오디세이에 이르러 더욱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국산 온라인게임으로 눈을 돌리면, 로스트아크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디아블로3의 쿼터뷰 핵앤슬래시 시스템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고, 주요 시네마틱 연출은 반지의제왕 등 다른 유명 미디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부분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몰입감을 높이는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물론 불호 의견 역시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엔드 콘텐츠 및 운영에 관한 논쟁이며 다른 게임 특징을 섞었다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모방이 아닌 영감을 받은 수준에서 게임의 뼈대와 알맞게 결합되었고, 높은 퀄리티의 연출과 액션으로 새로운 수준을 개척했다. 다른 곳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잘 어우러진 오리엔탈 샐러드처럼 완성된 셈이다.

얼마나 맛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재료를 섞되, 재료의 조합을 가장 오래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특제 소스로 양념을 한다면 금상첨화. 아류작이 되지 않고 개성을 온전히 가진 게임들이 시장에 나왔고, 그 사례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특제 소스로 최고의 요리를 완성한 게임 중 하나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들 수 있다. 자아를 가진 AI가 인간과 대립하는 소재는 지금 시점에서 새롭지 않았다. 시네마틱 연출과 버튼액션, 선택지로 전개하는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무늬만 선택이 아닌 정말 무수하게 많은 분기로 이야기가 쪼개진 것, 그 한 가지 무기가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개발사인 퀀틱 드림이 그 골목 요리의 선두 주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2010년 출시한 헤비레인은 인터랙티브 어드벤처 장르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선택에 따라 스토리를 실제 변화시키는 게임은 당시 없었다. 그때부터 소스의 비밀을 간직해왔고, 더 발전하고 개량시켜 지금에 이른 셈이다.

2018년 최다 GOTY에 빛나는 갓오브워 역시 정보 공개 당시에는 기존 시리즈 팬 사이에서 특유의 매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했다. 보스전의 호쾌한 처형 같은 기존 요소보다 사이드 볼륨과 파밍 콘텐츠 등이 보강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 

하지만 갓오브워의 기본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크레토스식 액션 연출은 여전히 훌륭했고, 트렌드에 맞게 추가된 재료들이 특별 소스와 함께 완성되었다. 게임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로 연결되는 연출이 그것. 덕택에 서브 및 파밍 콘텐츠까지 완벽한 몰입도를 자랑하면서 갓오브워 시리즈의 정점으로 자리잡았다.

짬뽕은 무죄, 하지만 맛이 없으면 유죄다. 다른 곳에서 가져오기만 했는데 재미가 없으면 결국 아류작 혹은 모방작으로 남는다. 자체적으로 첨가한 부분이 재미가 떨어진다면 마찬가지다. 

국산 게임 중 상당수가 개성 없이 모방만 했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신 트렌드 따라 양산형 게임을 대충 만들어 수익을 노리는 행태가 스팀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들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게임 특징만 섞어서가 아니다. 제대로 섞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게임 혼합과 융합에 대한 연구는 더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도타올스타즈에서 갈라져 나왔고, 배틀그라운드는 H1Z1의 개량이다.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 섞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기획은 섞는 방법을 다르게 하는 데서 나온다. 그 기획을 치밀한 개발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우리는 '재미'라고 부른다.

유저들이 맛있는 짬뽕을 많이 먹을 수 있길 바란다. 가끔씩 완전한 신메뉴가 등장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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