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에게 모든 뽑기 게임을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

1월 중순,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된 모든 게임에 청소년 이용불가(이하 청불) 등급이 매겨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게임계의 불안이 증폭됐다.

일부 매체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가 발표를 앞둔 '확률형 아이템 청소년 보호방안' 보고서에, 게임 등급심의 기준에 확률형 아이템 보유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면서 "아이템 판매에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청소년의 접근을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문제는 서서히 게임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청소년 보호란 명목 이외에도 도박과 연결지어 사행성 부분을 지적받았고, 2018 국정감사에 이르러 정치적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게임계 내외에서 형성되며 현재 일촉즉발 시점이라고 풀이해도 지나치지 않다.

확률형 아이템을 넣으면 정말 모든 게임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게 될 가능성, 실제 실행되었을 경우의 시나리오, 게임계가 대처해야 할 방향을 차례대로 짚어보았다. 

♠ 실현 가능성은? : 낮다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니며, 가능성 역시 낮게 점쳐진다. 작년 게임위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작년 말 결과 보고서가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임위 관계자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해 "현재 청소년 보호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이며, 청소년에 확률형 아이템 전체를 차단한다고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을 남겼다. 아직 연구 검토일 뿐, 무조건적 19금 등급분류로 처리할 것이라는 최초 보도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만일 실제로 확률형 아이템을 사용한 모든 게임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국내 게임계 현황을 토대로 해당 정책의 가능성과 효과, 그리고 벌어질 일을 분석하면 모든 면에서 부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실제 실행된다면? : 언제나 통증 부위가 질병의 근원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 전체를 막는 것부터 기준과 실효성이 불분명하다.

소녀전선을 예로 들어보자. 능력이 차이 나는 인형들의 뽑기는 인게임에서 획득하는 자원으로 실행할 수 있으며, 유료 재화는 밸런스 영향이 없는 스킨 뽑기에 사용되는 게임이다. 이런 시스템도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유만으로 19금 판정을 내려야 할까? 과금 구조는 게임마다 너무나 다양하고, 정책과 맞물리는 순간 판단이 모호해진다.

성능에 영향 없는 뽑기에 예외를 둘 경우, '성능 영향'이란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기 어렵다. 성능에 아주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보다 비주얼에 중심을 두고 유료 재화 뽑기를 실시하는 게임도 다수 있기 때문. 심지어 유료 뽑기 캐릭터가 성능이 더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료 재화 뽑기만 제재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유료 재화로 뽑기를 하는 대신 그 재화를 무과금 유저에게 많이 공급해주는 소위 '혜자 게임'들이 오히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청소년을 타겟으로 한 게임 중 상당수는 그런 방식을 활용하는 중이다.

결국 딜레마에 빠진다. '확률형=19금'의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실시하는 의미가 없다.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게임부터 차례대로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 게임사들은 청소년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 타겟 게임을 버리고 성인 전용 게임에 개발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확률형 아이템 수익의 절대 다수는 성인이 책임지며, 수익이 큰 게임일수록 헤비 과금 유저의 연령이 높다. 게임사가 수익 추구를 위해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는 명백하다.

그렇게 되면 정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전개로 흘러간다.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자본력에서 밀리는 소규모 개발사, 그리고 게임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청소년들이다.

정작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으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개발사들은 타격이 적고, 정작 게임계 전체가 확률형 아이템 성인게임으로 획일화될 가능성이 있다. 뽑기가 존재하지만 준수한 게임성과 심하지 않은 과금유도로 10대와 20대 유저에게 입소문을 탔던 크루세이더퀘스트 초창기와 같은 사례를 다시 만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최근 헌드레드 소울이 국산 모바일게임의 공식을 탈피하고 액션 퀄리티와 독창적 게임성에서 모두 호평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게임 역시 뽑기가 존재하면서 과금 유도는 크지 않다. 뽑기가 사라진다면 마땅히 수익을 창출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료게임으로 판매한다는 선택지는 있다. 그러나 이미 무료 다운로드 방식으로 시작한 게임들은 지금 와서 전환할 방법이 없다. 이후 신작들이 유료 방식을 택한다 해도 현재 유료게임 차트 10위권 게임이 매출 순위에서 한참 뒤에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결국 게임사 입장에서 답은 청소년을 포기한 19금 게임 집중뿐이다.

지나친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사행성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정확한 제재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많아 보인다. 목 디스크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뇌수술을 실시하는 형국이 될 위험이 크다.

종합하면, 2개 숙제가 완성된다. 확률형 아이템 전체를 막진 않을 것, 그리고 청소년과 성인 제재에 차이를 두지 않을 것.

♠ 확률형 아이템 규제는? : 이루어질 것, 어떤 방식으로든

당장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유저들의 불만부터 상당하다. 잘못된 규제라면 유저들이 나서서 막아야겠지만,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반응을 다수 확인하게 된다. 그만큼 국산 온라인게임을 향한 불신과 이미지 손상은 커졌고, 이를 진화하지 못한 국내 업체들의 책임 역시 부정할 수 없다.

PC/콘솔 싱글 게임들이 도리어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도 오래 쌓여왔다. 2011년 니노쿠니: 하얀 성회의 여왕은 단지 미니게임 슬롯머신 하나만으로 18금 등급으로 분류된 적이 있고, 그밖에 해외에서 전체이용가 혹은 12세 이용가 정도로 분류된 건전한 게임들이 사행성에 관련된 사소한 이유로 엄격한 취급을 받거나 해당 콘텐츠가 삭제되기도 했다.

실제 화폐로 확률 뽑기를 돌리는 게임들은 아무 문제없이 서비스되는데, 패키지게임 속 극히 일부분인 미니게임 중 도박을 닮은 게임이 한두 개 있다는 것만으로 지나친 불이익을 주는 심의는 모순이 심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환경 역시 확률형 아이템 규제 가능성을 높인다. 모든 법이 그렇지만, 게임 관련 법안은 진흥과 규제 양쪽 모두 의원간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에 발의 숫자에 비해 법안소위 및 본회의 통과 비율이 매우 낮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만큼은 이미 어느 정도 이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 여야 모두 사행성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민감하며, 이를 막는 의견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2019년 내에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 대안은? : '사행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근본 원인을 찾아야

PC 온라인게임 한도 월 50만원과 모바일게임 한도 무제한은 형평성이 맞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개선방안에 따르면 PC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가 완화되거나 폐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청소년 월 7만원이라는 한도는 유지되며, 오히려 모바일게임에도 청소년 한도가 신설되는 움직임이 보인다. 

청소년의 확률형 아이템 노출에 대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전망이나, 사행성 자체가 도마에 오를 경우 성인 역시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은 크다. 근본적으로 현재 주류 게임과 '도박'이 차별화될 수 있는 시스템 정비를 하지 않으면 가혹한 칼날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현행 자율규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확률을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이 지탄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강한 아이템이 지나치게 낮은 확률로 인해 폭락하는 기대값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사행성을 잡기 위해서는 이 기대값에 대해 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거기에 천장 시스템, 즉 상한가를 지불하면 원하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넣자는 의견도 있다. 물론 천장 상한가도 최대금액 제약이 필요하다.

♠ 민감한 결론 : 유저도 바뀌어야 하고, 업체는 더욱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수익을 얻고자 하는 업체의 욕망과, 얼마를 지불하더라도 게임 속에서 강해지고자 하는 유저의 욕망이 서로 결합해 지금 결과를 낳았다. 과도한 뽑기를 유도하는 다수 게임은 그만큼의 수익을 얻었고, 업체는 그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미디어 역시 할 일이 많다. 게임 국적에 상관없이 뛰어난 작품성을 가졌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게임들을 많이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사들의 각성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자율규제를 돕는 형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 이상 자율규제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게임계 주류 BM(Business Model)을 바꿔나가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게임사들이 위기를 인식하고 먼저 근본을 개선하는 타협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해외 역시 업체와 유저의 욕망이 결합하는 모습을 점점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EA는 피파 시리즈 등 인기 게임에서 유료 결제 후 확률형 아이템으로 밸런스를 결정짓는 BM으로 비판받았지만 막대한 수익도 함께 얻었다. 그밖에도 추가 과금을 유도하는 게임이 늘어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도 고유의 개발 정신을 가진 주류 게임사들이 건재하고, 여전히 적절한 수익 구조로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게임 시장을 풍성하게 유지하고 있다. 지금 국내 게임계도 깊이 돌아볼 때가 됐다. 탑을 지나치게 높게 쌓아올리기만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유저 입장에서는 한국 게임업계가 극단적으로 침몰하더라도 큰 피해가 없다. 소비 시장은 여전하니 해외 여러 게임들이 현지화를 거쳐 들어올 것이고, 걸작 게임을 원하는 유저는 지금처럼 스팀과 콘솔을 통해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업계에 생업을 두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 일선 개발자들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

게임 속 사행성 문제가 처음 제기된 지 10년도 넘었다. 처음은 외면했다. 불만은 커졌다. 다음은 자율규제로 어떻게든 봉합하려 했다. 불만과 개선 요구는 더욱 커졌다. 자율규제를 강화했지만 핵심 요소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눈을 돌리기 힘든 지점까지 왔다.

제대로 된 규제를 피하려다 오히려 불합리할 정도로 과도한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9년이 지나기 전 반드시 근본적으로 해결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손해를 두려워한다면, 내년 이후 발생할 시나리오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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