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틀로얄이 씨앗을 뿌리고, 브랜든 그린이 틔운 열매가 여기까지 왔다.

배틀로얄 장르 게임 열풍은 이제 국가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 'H1Z1: 킹 오브 더 킬'로 시작해 배틀그라운드가 기록적 흥행을 거두면서 시작된 물결이다. 무수히 많은 게임이 쏟아졌고, 타율도 높았다.

장르의 기본 룰은 고착화된 편이다. 유저 수십 명이 한 맵에서 시작하고 각자 타이밍과 위치를 정해서 낙하, 무기나 아이템 등을 파밍해 캐릭터를 성장시키면서 살아남아 상대를 제거하다가, 점점 활동 지역이 좁혀지면서 최후의 승자를 결정짓는 방식. 디테일에서 각각 개성을 부여하지만 큰 틀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그 이유로 비관적 전망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큰 변화 없는 게임만 양산되면서 결국 유저들이 게임 룰에 흥미를 잃어버리면 배틀로얄 장르는 한 때 유행으로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측이기 때문에 확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배틀로얄이 아직도 레드오션이 아니며, 장기적으로 메이저 장르에 정착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에 이어 새로운 광풍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는 타이탄폴을 만들었던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하고  EA에서 2월 5일 서비스를 시작한 배틀로얄 장르 신작이다. 타이탄폴 세계관에서 '레전드'로 불리는 캐릭터들로 각자의 특수기술을 활용해 3인 1팀으로 서바이벌 대회에 참가한다는 설정이다.

현재 초반 페이스는 눈부시다. 큰 기대와 홍보도 없이 갑자기 출시한 게임이 첫날 트위치 스트리밍 1위를 기록했고, 호평에 힘입어 급속도로 입소문을 탔다. 그 결과 출시 단 1주 만에 유저 2500만 명, 동시접속자 200만 명을 기록했다.

기존 배틀로얄 게임들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핑 기능만으로 팀원과 완벽에 가까운 소통이 가능해 마이크 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거됐고, 파밍 단계의 지루함도 사라졌다. 하이퍼FPS의 장점을 접목해 캐릭터마다 개성 있는 플레이 방식과 복잡하지 않은 컨트롤 구성을 가졌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1위라는 포트나이트도 아직까지 한국 및 아시아권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에이펙스 레전드는 한국 유저들 역시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출시와 함께 네이버와 구글 검색량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추월했고, 이제 시작이라는 듯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물론 장기 흥행이 가능할지 여부는 이후 진행될 업데이트나 핵 발생 가능성 등 여러 방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모든 지표는 긍정 신호를 보낸다. EA 입장에서는 스팀에 밀려 고전하던 오리진 플랫폼 전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까지 가지게 될 정도다.

배틀로얄 장르는 질과 양 모두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신작 외 기존 게임들도 배틀로얄을 적용한 모드를 추가하는 일이 흔하다. 캐주얼하게 진행할 수 있고, 개발 입장에서 다른 장르와 융합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현재 배틀로얄 룰의 원조격인 H1Z1 배틀로얄이 PS4 플랫폼으로 정식 출시를 눈앞에 뒀다. GTA 온라인, 레드데드 온라인, 콜오브듀티, 배틀필드5처럼 콘솔 대작 게임들도 배틀로얄 모드를 하나둘 선보이면서 열풍에 합류했다.

이색적인 배틀로얄이 눈길을 끄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중국에서 개발했고 소위 '무협배그'라고 불리는 무협X는 생각보다 준수한 게임성을 선보였다. 아크: 서바이벌 오브 더 피티스트(Ark: Survival of the Fittest)처럼 원시인 시점에서 공룡과 함께 배틀로얄을 즐기는 게임도 있다.

마인크래프트가 떠오르게 하는 블록 픽셀 그래픽에서 펼쳐지는 언턴드: 아레나, 귀여운 동물들이 맞붙는 슈퍼 애니멀 로얄 역시 항상 언급되는 이색 배틀로얄이다. 그리스 신들을 조작해 전설 무기와 스킬로 서로를 죽이는 제우스 배틀그라운드도 방송 콘텐츠 등으로 화제가 되었다.

국내 게임사들 역시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웨덴 개발사 스턴락 스튜디오가 만들고 넥슨이 국내 서비스하는 배틀라이트는 기존 MOBA 장르에서 배틀로얄을 접목시켜 배틀라이트 로얄을 따로 출시했다. 비록 정기 콘텐츠는 아니지만,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도 배틀로얄 모드인 사슬군도를 이벤트로 선보인 적이 있다.

검은사막도 배틀로얄 콘텐츠 '그림자 전장'을 1월 추가했다. MMORPG에서 기존 캐릭터 스펙을 버리고 모드 전용 캐릭터로 진행하는 방식은 신선하다는 평이었다. 펄어비스는 최근 "검은사막 모바일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구상 중이고,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지 판단해서 결정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상반기 출시 예정인 넷마블의 A3:STILL ALIVE도 배틀로얄 모드를 채용한다. 경쟁 중심 모바일 액션 MMORPG에 섹터별 파밍 맵을 도입해 승자를 가리는 것. 지난 지스타 시연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으며 내부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는 관계자의 전언도 있다. 그밖에 국내외 수많은 게임들이 배틀로얄 전장의 생존자를 꿈꾸며 출시를 준비 중이다.

어쩌면 전설의 시작, 배틀로얄 웹게임
어쩌면 전설의 시작, 배틀로얄 웹게임

배틀로얄 이전 트렌드는 팀vs팀의 매칭 맞대결이었다. 일대일 게임의 유저 부담을 줄이고 온라인 팀플레이 교류의 재미를 준다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한편 여전히 5:5인 승리 기대값과 팀 의사소통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한계였다. 그 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구도가 배틀로얄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배틀로얄이 지속 발전 가능한 장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유는 시스템의 진화와 액션의 발전에서 나온다. 배틀로얄 유행이 몇 년 흘렀지만,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유저의 성취감은 아직 줄지 않은 모습이다. 거기서 장르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면서 개량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결국 업계와 유저들은 또 기대하게 된다. 배틀로얄 장르는 '끝물'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도 '태동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 또 어떤 게임이 장르를 혁신시키고 새로운 시스템을 일구어낼까. 미래에 펼쳐질 배틀로얄의 '생존' 시나리오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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