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소녀 게임 유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비단 게임의 선정성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소녀 캐릭터와 장르만 보고 ‘오타쿠’란 단어로 일반화해, 사회성이 낮다고 몰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플레이만 해도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업계의 시선은 마니아들의 ‘덕심’에 몰려있다. 피규어, 애니메이션, 만화책 등 마니아 취미생활이 점점 영역을 확대하면서, 이들을 관통하는 ‘미소녀’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도 감소하는 추세다. 

물론 아직 고정관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최애캐(최고 애정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 장르의 형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소녀 게임들은 소위 ‘미연시’라 불리는 연애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벗어나 퍼즐, RPG, TCG 등으로 진출했으며, 그에 걸맞은 게임성으로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들까지 포섭하기 시작했다. ‘캐릭터’를 도입한 게임이라면, 장르와 상관없이 융합할 수 있는 특유의 범용성이 빛을 발한 셈이다. 

또한 최근에는 미소녀 콘텐츠의 특성에 차별화 요소로 개성을 더한 게임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러스트와 캐릭터 도입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콘텐츠의 매력을 한층 더 부각시켜줄 수 있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일러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Live2D 기술은 2D RPG 모바일게임에서 중요한 기술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구체관절인형처럼 단순한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그쳤지만 발전을 거듭하면서 감정과 신체적 움직임까지 잡아내기에 이르렀다. 

게임들은 2D가 가진 태생적 표현의 한계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다. 일러스트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캐릭터간 인물 관계와 상황 전개를 영상으로 그려, 스토리의 완성도를 실제 애니메이션 작품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에픽세븐의 경우 캐릭터 업데이트 주기가 상당히 빠름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춰 필살기 연출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커스텀 스토리 모드를 통해 선택지에 따른 멀티 엔딩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미소녀 콘텐츠의 원류인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까지 게임성을 확장했다. 

이처럼 게임 내 애니메이션 비중이 높아지면서 관련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은 신작도 등장했다.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이하 프리코네)는 50명 이상의 캐릭터 특징을 살리기 위해 ‘진격의 거인’을 제작한 WIT STUDIO와 더불어 ‘광란가족일기’, ‘앙상블스타즈’의 시나리오 작가, ‘사쿠라대전’, ‘원피스’의 메인 테마곡 작곡가 등과 협업했다. 

이에 대해 프리코네의 국내 퍼블리싱을 맡은 카카오게임즈는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OST뿐만 아니라, 프리코네 스토리 역시 마니아 유저들의 기준에 맞는 번역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에서 서비스 중인 프리코네는 다른 2D RPG와 비교했을 때 애니메이션 분량이 많은 편이다. 대화 지문이나 이벤트, 스킬 연출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콘텐츠의 수준뿐만 아니라 자막의 번역 퀄리티 역시 중요한 흥행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리코네의 사례처럼 미소녀 콘텐츠의 흥행 요소는 캐릭터 작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실질적인 지분을 따졌을 때 비중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뒷받침하는 지원 없이 미소녀 콘텐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같은 미소녀 게임이라도 생명력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이다. 일본에서 출시된 지 어느덧 4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페이트: 그랜드오더’의 강점은 IP(지식재산권)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 넷마블은 ‘스토리 수집형 RPG’란 이름으로 최상의 번역 퀄리티를 약속했으며, 스토리 번역에 ‘페이트 제로’와 ‘페이트 아포크리파’를 번역한 전문가들의 감수를 거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이 게임성 자체를 끌어올리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Live2D와 애니메이션, 번역이 다소 부실해도 재미만 있으면 게임은 자연스럽게 흥행작에 이름을 올린다. 실제로 부가적인 요소가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면 항아리게임으로 불린 ‘getting over it’의 성공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레드오션에 가까워지는 미소녀 콘텐츠 시장 상황을 감안한다면, 미소녀 게임 역시 기존 흥행작들이 갖춘 요소들에 집중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현재 많은 게임사들이 애니메이션과 번역 등으로 콘텐츠 퀄리티를 높이려는 이유 또한 이러한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예쁘고 착한 행동만 하는 캐릭터가 게임 흥행을 이끌던 시기는 과거의 영광이 된지 오래다. 미소녀 게임의 중심 콘텐츠인 캐릭터의 생명력은 배경이 입체적일수록 강해진다. 알 수 없는 매력에 눈길이 가듯 때로는 고뇌하고 방황하는 캐릭터가 ‘최애캐’의 자리를 꿰차는 법이다. 

또한 유저들의 관심도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팬픽과 굿즈 등 2차 창작물의 퀄리티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역과 애니메이션 등의 작업이 게임성과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일지라도 몰입도를 높이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인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현재 2D RPG를 이끌고 있는 흥행작들의 공통점은 디테일이다. 어떻게 보면 게임성과 전혀 관계없는 요소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정작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치열한 신작 경쟁 속에서도 국내 게임사들은 마니아들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한 듯하다. 

이와 같은 디테일을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미소녀 콘텐츠의 인기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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