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속 미래도시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요소로 가득하다. 

자기부상열차, 월면기지, 홀로그램 장치 등은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단골 아이템들이다. 

시간마저 돌리는 트레이서나 볼스카야 인더스트리,호라이즌 달기지, 눔바니만 보면 블리자드가 그린 미래의 인류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듯하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의료, 안전 분야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비들이 개인 화기로 다뤄지는 걸 보면 상용화도 진작 완료한 듯 보인다. 

하지만 기대 수명이 200살은 넘어야 할 것 같은 오버워치 속 인류는 장수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오버워치의 활약으로 종결된 것처럼 보였던 ‘옴닉 사태’가 2차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워낙 극단적이다 보니 19살 송하나가 육군 소속으로 바다에 나가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빛이 있는 길에 그림자도 존재하듯 오버워치의 스토리는 미래 사회에 드리워진 양면성에 주목한다. 이번에 공개된 신규 캐릭터 바티스트 역시 옴닉사태로 던져진 전쟁고아 중 한 명이다. 어떠한 기회도 지원받을 수 없던 그는 군에 입대했고 이후 자신의 병원을 차리기 위해 탈론의 작전을 도왔었다. 

실제로 바티스트의 삶은 생존을 위해 마약 카르텔에 참여하는 청소년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없다 보니 윤리, 상식을 떠나 살인까지 손을 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신규 캐릭터로 간접적으로 나마 전해진 셈이다. 

이와 같은 전쟁고아의 이야기는 다른 게임에서도 스토리를 관통하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메탈기어솔리드V: 팬텀페인’은 고문과 소년병 등 전쟁사에서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다뤄, 스토리에 대한 유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중 ‘화이트 맘바’ 일라이의 포획 미션을 플레이하다 보면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연상케하는 요소들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남다른 통솔력과 전투 능력으로 대장으로 군림하는 일라이나 자신의 몸보다 큰 총을 힘겹게 조준하는 소년병들을 보면, 게임의 재미보다 불쾌한 감정들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특히, 생포한 소년병들의 처우에 대해 논쟁하는 ‘베놈 스네이크’와 ‘카즈히라 밀러’의 대화는 전쟁의 상처가 단순히 임시방편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상기시키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전부였던 전쟁터로 돌아가길 원하는 소년병들에게 유저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오버워치에서 전쟁고아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계들의 반란인 ‘옴닉 사태’에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국적으로 기계들의 폭주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그동안 ‘기계와의전쟁’은 게임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등의 문화 매체에서 숱하게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대중들이 흥미로워하는 공상과학 영역과 ‘인격’에 대한 철학까지 더해지다 보니, 작가와 작품에 따라 그려지는 미래의 세계관 역시 천차만별로 다양해졌다. 

기계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오른 ‘호라이즌 제로 던’도 미래에 대한 시선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설계된 기계가 폭주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인간이 포함된 모든 유기물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데다 ‘가마솥’에서 자가 생산까지 가능해, 전투력과 물량에서 인간은 기계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작중 내 등장하는 ‘프로젝트 제로 던’의 존재와 주인공의 정체는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충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기계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상 ‘인재(人災)’임은 틀림없으나, 주객이 전도된 지구상에서 기계에게 사냥 당하는 인간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오버워치는 ‘상생’이란 색다른 키워드를 제시했다. 사이보그화된 신체로 정체성 혼란을 겪던 겐지의 방황을 멈춘 건 역설적이게도 옴닉인 젠야타였다. 인간과 옴닉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개체 사이의 교감과 어울림에 있다고 설법하는 그의 이념은 정크랫, 모이라 같은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형태로 와닿는다. 

물론 그의 이론은 가족과 고향을 잃은 슬픔도 모르는 기계이기에 가능한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공상과학에서조차 AI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평가하는 감정의 영역을 한낱 공장제 로봇이 가르치려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이러한 불신의 시선에 대해 젠야타는 이렇게 말한다. 

자리야: 명심하십시오 옴닉, 제가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젠야타: 그렇다면 나는 그대의 뒤를 봐드리겠소

깨달음을 얻은 옴닉과 달리 리퍼, 솔저79를 둘러싼 인간의 싸움은 윤리마저 무시한 채 파멸로 달려간다. 특히, 게임 내 절대악 포지션의 ‘리퍼’의 존재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리퍼의 행보는 순수하게 악을 추종한다기보다 전직 오버워치 요원을 향한 복수에 사로잡혀 있다.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는 만큼, 복수의 동기는 알 수 없으나 블리자드는 캐릭터 스토리를 통해 ‘리퍼는 실패한 유전자 개조 실험의 부산물로서, 그의 세포는 초자연적인 속도로 썩고 또한 재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배경을 밝힌 바 있다. 

만약 타락 원인이 생체실험으로부터 비롯됐고 증오의 화살을 오버워치로 돌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리퍼의 복수는 정당한 명분 아래 펼쳐지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정의구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저들이 생각해왔던 절대선-절대악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반전에 가까운 서술 트릭은 래디컬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프로토타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검 직전에 기적적으로 깨어난 ‘알렉스 머서’는 이름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데 이어 기억마저 잃은 채 방황한다. 

스토리가 전적으로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유저 역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알렉스 머서의 기억을 수집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주변인에게서 수집한 과거의 알렉스 머서와 주인공 사이에서 미묘한 괴리감을 느낄 수 있는데, 서술 트릭의 열쇠가 되는 부분이니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오버워치의 세계관이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관계로 정의되는 수준이었다면 단편 소설이나 만화 등 OSMU(One Source Multi Use) 콘텐츠의 깊이도 얕아졌을 것이다. 물론 전쟁고아나 불법 생체실험 등의 문제는 관점에 따라 15세 이용가에서 가볍게 다루기에 무거운 주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오버워치는 ‘무엇이 정의다’라고 특정 짓지 않는다. 온몸으로 악당 분위기를 연출하는 리퍼야말로 오버워치 내 최대 피해자일 수 있고 만능 힐러 메르시가 만악의 근원일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유저들이 스스로 판단하게끔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디아블로와 같은 ‘블리자드 유니버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슈퍼마리오나 동키콩처럼 1차원적 목적의식에 집중한 게임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토끼와 거북이’보다 ‘햄릿’의 대사가 강렬하게 와닿는 이유는 캐릭터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버워치의 세계관이 인류에게 행복한 미래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솔저79와 리퍼, 자리야와 젠야타 등 유저들의 폭넓은 주장을 아우르는 입체적 관계가, 올해에는 얼마나 더 깊이를 더할지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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