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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2019년까지, 우리가 모르던 한국 게임개발 역사
길용찬 기자 | 승인 2019.04.26 12:55

세상 모든 것은 역사가 있다. 산업이나 문화적 결과물은 더욱 그러하다. 역사가 기록되지 않으면 과거 잘못은 되풀이되고, 성공 경험은 전해질 수 없다.

산업인 동시에 문화콘텐츠인 게임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전문적 역사 연구가 쌓였다. 게임기가 어떤 스펙을 가졌고 하드웨어별 게임 디자인이 이루어진 서사까지 정리한 플랫폼 스터디즈가 좋은 예시다. 하지만, 한국은 어떨까?

게임개발자 겸 연구자인 오영욱은 '게임 역사가'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2012년 '한국게임의 역사'부터 시작해 과거 한국게임을 조명하는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고, 개인 열정으로 방대한 게임 사료를 모으며 한국 게임문화의 정착 과정을 연구했다.

그는 26일 NDC 2019에서 '발굴되지 않은 한국 게임의 역사'란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한국게임 역사 연구에 대해 "기업 중심 역사 정리가 주를 이루고, 최근 게이머 중심 서사가 늘었지만 개발자 시점으로는 허전한 느낌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1987년 이전 한국 게임개발부터 시작해, 90년대 인디게임씬 문화가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1970년대 게임 관련 사진이나 자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과학오락실 기재 게임 리스트와 함께,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신문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수출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였고, 전자산업 육성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나오지도 않은 비디오게임을 6천 개 수출했다는 기사가 존재하고, 수출박람회에 외국 바이어들이 와서 한국 디바이스를 살펴보는 영상물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게임들의 흔적을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이유는, 한국은 TV를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초부터 국산PC 뉴스가 등장하고, 한국에서 게임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1983년 삼성은 자사에서 사용하는 베이직 강좌를 열고, 퍼스컴소프트웨어 공모전으로 자사 컴퓨터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유저들을 끌어모으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83년은 정보산업의 해로 지정되어 국가적으로 전폭적 지원을 시작한 시기다. 초기 PC문화는 전자잡지가 견인했고, 이후 컴퓨터잡지에 그 역할이 넘어가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창간호부터 컴퓨터게임 리뷰가 실려 있었다.

1984년은 세운상가 키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전달하고,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1985년, 국산 콘솔인 대우 재믹스가 발매되었다. 1986년 케텔(KETEL) 서비스가 시작되고, 1987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발효되고 미리내 등의 게임사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저작권 개념도 없고 복사도 처벌받지 않았다. 고등학생들이 국내 최초 한글게임 신검의 전설을 선보여서 화제를 끌었다.

1989년 케텔에서 개털오락동호회(개오동)가 설립되고, 1992년 개오동에 개발 관련 커뮤니티가 등장했다. 유명한 김학규 대표가 이곳에서 세미나를 이끌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게임잡지들이 창간되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개발문화들이 소개되었다. 국내 게임사들이 자리잡으면서 국산게임도 흔히 찾을 수 있게 되었다. 'C++로 게임 만들기'와 같은 내용과 C프로그래밍 전문 잡지까지 생기는 등 C언어 계통이 개발 언어의 주류를 차지했다.

1993년, 하이텔 게임제작자 동호회가 설립됐다. 당시 익숙한 이름의 게임사들이 구인하는 모습과 자기를 데려가달라는 개발자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1995년 나우누리 게임제작자포럼이 설립되어 소모임이 활성화됐다. 공개 게임들과 개발 자료를 서로 공유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위한 공모전도 우후죽순 늘었다. 1997년 하이텔 동호회에서 100k 게임 공모전, 1999년 아마추어 게임 콘테스트가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은 공모전의 전성기였다. 성균관대까지 참여하면서 "게임 잘 만들면 대학 갈 수 있다"는 슬로건이 생겼을 정도.

그러나, 2005년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생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게임관련 사건이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게임 심의를 그만두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행정편의 중심 단속을 시작하면서 인디게임 시장이 급격히 침체됐다. 학계의 지원도 줄어들었다.

오랜 암흑기를 거쳐, 한국 아마추어 게임은 다시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2014년 아웃오브 인덱스를 지나 2015년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2016년부터 GIGDC가 글로벌 게임경진대회의 이름을 잇고, 구글인디페스티벌도 한국에서 시작했다. 그밖에도 유니티나 언리얼 등 플랫폼 홀더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숨이 트이는 모습이다.

2006년 이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어려웠지만, 올해 게임 심의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등 희망이 다시 생긴다. "밟아도 밟아도 결국 다시 자라는 것 같다"며 소회를 밝힌 오영욱 개발자는 "한국 인디게임이 다시 제대로 자랄 수 있게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사 연구에서 느낀 한계도 털어놓았다. 2000년대 초 동인게임 연구는 거의 되어 있지 않다. 비슷한 시기 피처폰 게임들의 개발 기반도 알려지지 않았다.

2014년 이후 자생적, 자본적으로도 창구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게임개발 활동에서 제약으로 자리잡은 규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오영욱 개발자의 바람이다. "아마추어 게임이 잘 될 수 있다면 한국 게임계는 무조건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오영욱 개발자는 강연을 마치며 개발자 및 게임인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겼다.

"자신의 개발과 작품이 영향받은 것, 그밖에 사적인 경험이라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기록해주길 바란다. 웹에 올라간 자료도 영원하지 않으므로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동건 본부장이 기조강연에서 옛날 이야기를 남겨 다음 세대의 토양을 만들자고 말한 것처럼, 역사를 위해서는 발굴과 정리가 필요하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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