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학포럼은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회 태그톡(T.A.G talk)을 개최하고 'Gaming Disorder, 원인인가 결과인가'라는 주제로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추진 문제점을 지적했다. 

게임과학포럼은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에 자리잡고 있으며, 2018년 9월 첫 월례모임을 시작으로 운영되어 왔다. 매월 정기 포럼을 개최해 뇌와 인지기능적 측면 연구를 통해 게임의 순기능을 모색하며, 대중 대상 강연인 태그톡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태그톡은 'Think About Game talk'의 약자로, 게임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게임과학포럼에서 연구한 게임의 영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게임 활용법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번 태그톡은 2018년 12월 17일 첫 개최한 이후 4개월 만에 이어지는 두 번째 행사다. WHO의 게임장애 질병 등재와 관련해, 해당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학술적 측면에서 게임 과몰입과 중독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주제다.

*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 "스트레스와 우울증 원인 분석이 근본 해결책"

태그톡 사전 기자간담회는 오후 본강연 내용을 30분 가량 요약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미국 스텟슨 대학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는 '문제적 게임이용에 대한 연구 및 정책 동향'이라는 내용으로 게임에 병리적 해석을 덧붙이는 것을 경계했다.

퍼거슨 교수는 "WHO의 게임장애를 코드화하겠다는 것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며, 잠재적 위험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게임 뒤에 숨겨진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간과하거나, 돈만 벌기 위해 비싼 치료법을 제안하거나, 게임한다는 이유로 오점이 남겨지고 자유 및 표현에 제약이 걸리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연구자료에 따르면 게임으로 인한 유병률은 1~3% 정도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조금 높게 나타나지만 우려할 정도 수준은 아니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 등이 현상의 이유라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고 밝힌 퍼거슨 교수는 "학업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지역에서 게임을 통해 해소하기 위한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이어 "게임을 과하게 하는 것은 다른 행동과 차이가 없다. 먹는 것, 성행위, 운동 중독자도 있다. 워커홀릭이나 댄스, 낚시중독자도 있다. 물질 남용하는 코카인이나 마약 등과 다른 현상이다"라고 두 유형을 구분지었다. 청소년 접속을 차단하는 한국 정책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게임 시간이 줄어들지도 않으며, 청소년 수면시간도 유의미하게 늘지 않는다는 것.

퍼거슨 교수는 "현재 많은 연구들의 질이 좋지 않다. 보다 투명하게 수준 높게 진행해야 하며, 연구 계획을 미리 발표해서 결과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며 병리적 현상으로 몰아가는 연구들을 비판했다. 이어 "물질 중독과 같다거나 도파민에 연관짓는 이야기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도파민은 헤로인이나 코카인 복용시 말고도 모든 즐거운 것을 할 때 많이 분비된다는 것.

다만 "루트박스(랜덤박스)는 도박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는다는 의혹이 있는데, 아직 연구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 윤태진 교수 "중독을 주장하는 연구들은 여전히 학술 근거가 없다"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는 게임중독에 대한 학술적 연구들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도 2013년 게임중독을 '추가 연구가 필요한 범주'로 분류했으나, 이후 5년 동안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관련 논문은 한국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데, 그중 90%는 중독에 대한 질문 없이 연구를 시작한다. 게임중독이 있다는 것을 전제해버린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아직도 게임의 현상 개념이 학술적으로 합의되지 않았고, 용어도 통일되지 않아서 연구 역시 통일된 방식으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윤태진 교수는 말했다.

이어서 "그런 논문 중 특정 게임이나 장르를 지목해 진행한 연구는 극소수다. MMO냐 FPS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살펴보지 않는다. 반면 게임 순기능을 연구하는 논문들은 예외 없이 특정 게임을 지정한다. 상대적으로 정교한 연구와 구체적인 근거가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양측 연구의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중독 학술적 근거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의료화를 주도하는 집단과 대응 집단간 충돌이 벌어지면서 학술적 담론은 가려진 채 정치사회적으로 빠지고 있다"며 안타까운 심정도 함께 전했다. 언론에서 낸 게임관련 사설 40건 중 36건이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을 살리라는 내용이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또한 "게임 장르와 기술적 환경 변화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연구자가, 제한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불완전한 진단 도구로 연구해 그 결과를 게임중독이 심각하다는 것으로 내고 있다"며 게임 연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 정지훈 교수 : "게임뇌는 허구다"

경희사이버대학교 정지훈 교수는 뇌과학적 관점에서 현재 게임에 대한 논란을 이야기했다. 

책 '게임뇌의 공포'를 지은 모리 아키오는 자신이 독자 개발한 뇌파계 연구 방식을 사용했지만 전혀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며, 게임 대신 책을 가까이 하라고 하지만 책을 낭독할 경우도 비슷한 뇌파가 나왔다는 점에서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현재 일부 한국 정신의학계와 각종 언론은 이런 이론을 검토 없이 그대로 증거자료로 가져다 쓴 바 있다.

정지훈 교수는 "RTS 장르나 조이스틱 조작 등을 많이 한 유저들이 훨씬 뇌가 발달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면서, "부정적 연구들은 명확한 내용이 없고 인터넷 중독을 혼용해 집어넣는 등의 과정이 많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게임은 우리 생활 곳곳으로 확대되는 일종의 미디어이며, 오히려 잘 하지 않은 사람과 격차가 날 가능성이 높다"고 게임의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단 "모든 게임이 다 순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며 개념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폭력 게임이 정서 발달에 부정적인지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내는 연구가 많아 아직 결정을 내기 어려우며, 단순 반복 게임은 도움이 되지 않고 도박 요소가 강한 게임도 당연히 연령제한이 필요하다는 것. 

"과도한 이용 역시 삼가야 한다. 물론 모든 취미활동이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정지훈 교수는 "보드게임이나 스포츠라면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비디오게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질병으로 먼저 낙인찍는 프레임은 문제가 있다"며 발표를 마쳤다.

이경민 교수 "과잉의료화는 게임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이자 게임과학포럼 공동대표인 이경민 교수는 의학계의 관점에서 게임을 둘러싼 과잉의료화의 위험을 지적했다. 비디오게임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의료화는 중요한 담론인 동시에 이미 사회 곳곳으로 퍼진 현상이다.

이경민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의료화는 3개 측면이 있다. 첫째는 임상적 측면,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효용성이 입증되고 문제를 의학적 관점으로 해결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용성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너무 보편화시키면서 문제가 생긴다.

다음은 사회적 측면이다. 문제 해결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니라 독점적인 전문가에게 맡기고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의사들이 독점적 전문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미국 의사협회가 사용한 정치적 행동과 전략을 예로 들 수 있다.

마지막은 경제적 측면으로, 자본주의로 인한 모든 문제 해결의 상품화다. 이것이 과도해지면 의인성 질환을 일으켜서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다. 모든 문제를 의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과잉의료화다. 이경민 교수는 "과잉 의료화는 약을 팔기 위해 병을 팔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WHO의 게임 질병코드 등재는 과학적으로 옳거나 원인이 발견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에 체계적 분류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런데 이것을 꼬아서 질병코드에 등재된다면 병이라 말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을 넘어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의학계를 비판했다.

이경민 교수는 다음으로 오용의 우려를 제시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보다 게임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속 편할 수 있다. 전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지만, 게임 탓을 하는 순간 내 잘못은 없다. 의료인 입장에서도 우울증과 스트레스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보다 게임 중독이라고 진단을 내리면 편하다"는 것이다.

금전 문제와 연관된 남용의 우려도 존재했다. "보험체계에서 비보험 수가를 받으면 수가가 엄청나게 올라가며, 질병코드가 새로 붙으면 보험 인가가 나올 때까지 돈 벌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 이경민 교수는 "비보험 치료의 인센티브가 몇몇 의료인에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왼쪽부터 윤태진, 이경민, 퍼거슨, 정지훈 교수
왼쪽부터 윤태진, 이경민, 퍼거슨, 정지훈 교수

Q: 게임산업에 부정적인 인식이 규모나 성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나?

윤태진: 그렇다. 가장 걱정하는 것은 사회적 담론 효과가 강력하다는 점이다. 게임회사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물으면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담론이 부정적이라면 이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우수한 인력이 업계로 진출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디자이너나 그래픽 계열 여성인력이 게임사로 들어가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기왕이면 웹디자인 등으로 많이 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산업 발전에 위험 요소다.

정지훈: 게이미피케이션이나 미디어 연구, 프로젝트를 할 때 위에서 게임이란 말을 쓰지 말라는 압력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에듀테인먼트 같은 단어로 바꾸곤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게임을 미디어로 활용할 여지가 굉장히 많은데, 대부분 위축되고 큰 기업이 만들어내는 게임만 인정되는 분위기가 됐다. 미국이나 북유럽은 자기 스튜디오를 가지고 게임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걸고 이야기한다. 

Q: 서양 쪽은 게임 연구 결과들 중 정신의학보다 심리학 비중이 높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서양 언론들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달하는지 궁금하다.

퍼거슨: 유럽은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의료 쪽에 너무 집중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데, 현재는 게임장애에 약이 없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아닐까. 약이 있다면 달랐을 것이다.

서양 미디어도 게임에 대해 좋지 않게 표현한다. 언론은 어느 곳이든 자극적 헤드라인을 내걸어야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라고 기사를 쓰면 조회수가 낮겠지만, "게임이 헤로인과 같다"라고 올리면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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