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세계보건기구)가 20일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과몰입 현상을 ‘Gaming disorder’(게임 장애)로 정의한 ICD-11(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개정의 확정 여부를 결정한다.

ICD-11에 따르면 게임 장애는 게임이 다른 생명의 이익이나 일상생활보다 우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WHO는 게임 장애가 가족과 교육 등 중요한 사회적 영역에 큰 손상을 입힐 정도로 심각하다고 덧붙이며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동안 게임 과몰입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있었던 만큼, 이번 세계보건총회의 결정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ICD-11의 개정이 확정될 경우, 2022년부터 게임 과몰입 현상은 ‘질병’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국제 기준을 기반으로 하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역시 2025년에 게임 과몰입의 질병코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짓는 WHO의 결정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국내 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ICD-11에 대한 반대 의견을 WHO에 전달했으며, 한국게임산업협회도 의견 수렴 사이트를 통해 반대 의사를 제출했다. 

국내 게임 업계가 ICD-11 개정을 반대하는 근거는 명확하다. 게임 과몰입 현상을 질병으로 규정하기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인과관계와 가능성 역시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의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 1~5차년도 연구’를 근거로, WHO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특히, 2014년부터 5년간 국내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게임 과몰입 현상의 원인은 게임 자체가 요인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 태도, 학업 스트레스, 교사와 또래지지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서술했다. 또한 국제 질병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조사 범위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청소년 연령층에 국한되어 있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WHO가 공존장애(Comorbidity)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게임 장애의 근거로 제시되는 연구 결과들의 대표 증상은 우울,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인데, 이러한 장애로 인한 증상이 게임 과몰입으로 나타났을 가능성도 고려 대상임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양우 문화체육부관광부 장관은 “게임을 과몰입 요소로 여기는 것은 불합리하며 특정 장르를 질병화하는 행위와 확실한 근거 없이 추정만으로 분류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국내 업계뿐만 아니라 APA(미국정신의학회)와 ESA(미국게임산업협회) 역시 ICD-11 개정에 대해 게임 과몰입 현상 관련 연구가 보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WHO의 결정에 대중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과 국내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로 급류를 탄 게임의 인식 개선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는 것.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ICD-11의 개정이 확정될 경우, 국내 게임 산업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KCD에 적용되지 않은 게임 과몰입 현상을 장애 요인으로 추가하고 이에 대한 치유 부담금을 게임사들이 지불해야 한다는 논조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질병 코드의 국제 표준을 규정하는 기구의 결정인 만큼 게임 과몰입에 대한 판단이 ‘장애’로 규정된다면, 게임 역시 중독의 가능성이 있는 산업으로서 예방과 치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기구의 결정이다 보니, 업계에서 전달한 반대 의견과 연구 결과가 어떤 식으로 반영됐을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게임 과몰입 현상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던 만큼 이번 개정 여부가 불러올 파장은 산업 전체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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