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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아연대기 첫 테스트, 아름답고 험난한 직진
길용찬 기자 | 승인 2019.05.14 19:45

너무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길 자체가 참 매력적이라는 기대. 테스트를 마친 후 얻은 감상이다.

페리아연대기 파이오니어 팟 모험이 4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첫 공개 후 8년 만에 실시한 테스트였다. 특별한 프로모션이나 외부 활동 없이 조용히 진행됐다. 홍보 목적이 아니라 철저하게 유저의 의견을 듣고 개발에 반영하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페리아연대기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요소는 크게 2개였다. 지형과 오브젝트 및 지역 전체를 편집하고 창조하는 ‘제작’, 그리고 여행 동료이자 행동의 근원인 키라나를 수집하고 성장하는 ‘키라나 시스템’.

이번 테스트는 키라나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제작 관련 콘텐츠 역시 존재했지만, 일정 시간 열리는 균열 던전에서 사용하는 정도였고 작동 범위도 크지 않았다. 대신 키라나 관련 기본 뼈대는 테스트에서 대부분 확인할 수 있었다.

커스터마이징은 꽤 꾸밀 맛이 났다, 진짜로

우려도 있었다. 대부분은 지스타 2016 시연 버전에서 기반한 우려다. 많이 거슬릴 정도의 프레임드랍과 지나치게 복잡하고 지루한 전투. 보편적 사양에서 즐길 만한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 섞인 시선이 이번에도 존재했다.

예상대로였다. 최적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웬만큼 높은 사양이 아니면 플레이 자체가 힘겨웠다. 최적화는 무조건 1순위로 해결할 과제다. 게임을 평가하기 전 기본 조건이다. 야구에서 타자가 4할 타율을 쳐도 규정타석을 못 넘기면 기록에 못 들어가는 것과 같다. 더불어 UI/UX 디자인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지금은 첫 테스트였다. '이런 것들이 완성된다면'이란 가정에서 체험은 시작한다. 완성도를 평가하기보다 시스템의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고칠 점을 찾아보는 자리에 가깝다.

좀 반가웠다

보편적인 MMORPG의 흐름을 생각하고 접속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을 겪게 된다. 필수 퀘스트가 없다. V를 눌러 수행 가능한 퀘스트를 확인할 수 있지만, 중요도나 난이도를 구분짓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에 아무런 순서도, 동선도 없다. 모든 것은 유저 마음대로다.

유저 캐릭터의 직업, 능력치, 전투 장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왼쪽 하단 경험치와 레벨은 처음 시작하며 선택한 수호 키라나의 레벨이다. 키라나는 친구이자 적이며, 카드 덱(Deck)이며, 스킬이자 수집물인 동시에 제작 주체다. 키라나의 성장이 곧 유저의 성장이며, 유저 플레이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요리도 키라나가 만들어준다

키라나 시스템의 개연성과 몰입감은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인간들의 세계 '페리아'와 키라나가 살던 세계 '아르카'가 충돌한 뒤 이야기를 게임에서 다루기 때문. 키라나는 아르카의 신 아카샤의 창조물로 인간과 같은 개체이지만 천차만별의 형태와 성격을 가진다. 이런 내용은 NPC 및 다양한 키라나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키라나별 성격과 개성 부여도 매력적이다. 엄청난 친화력을 가진 키라나, 매사에 지나치게 진지한 키라나, 흑막인 척하는 키라나, 중2병 키라나, 조증 키라나 등 다양한 성격에 맞게 대화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컨디션 관리에 지나치게 소홀하면 키라나들이 반발해 능력 사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개인 공간인 아르키아는 페리아연대기의 소셜 콘텐츠가 연계될 그릇으로 보인다. 키라나와 대화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성장을 함께 하기도 한다. 아르키아에서 키라나들과 식사하는 장면도 소소하게 흐뭇해지는 부분이며, 공간을 꾸미고 활용하는 기능과 방문 기능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귀차니즘 분명 어떤 게임에서 본 것 같은데

키라나 시스템이 가진 딜레마는 다른 방향에 있다. 키라나를 중심으로 게임을 완성했을 때, 페리아연대기가 경쟁해야 할 라이벌은 다른 PC기반 온라인게임이 아니다. 모바일 수집형RPG다.

키라나를 수집 캐릭터들과 등치시킬 경우,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를 확인할 수 있다. 키라나의 레벨은 유저의 '행동'을 통해 조금씩 오른다. 그런데 키라나들의 성장 단계는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즉 키라나와 새로 계약할 때마다 새롭게 성장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2019년 현재 트렌드가 이러한 수집 성장의 요소를 간략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사이, 유저들이 느낄 피로도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고난이도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키라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면 성장 커브를 기존과 다르게 가져가는 것을 생각할 만하다.

덱을 짜는 건 재미있는데, 일일히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행동이 키라나를 통해 진행된다는 부분도 조금 더 앞서나간 디테일이 요구된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은 조금 떨어진다. 그것은 온라인게임에서의 소셜 시스템을 어떻게 재미있게 짤 것인지에 대한 걱정과 겹쳐진다. 키라나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소통할 것인지, 테스트 버전에서는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투뿐 아니라 채집이나 대화 등 여러 활동으로 레벨이 오른다는 점은 좋다. 키라나와 대화를 통해 친밀해지고 성장하는 시스템도 흥미롭다. 그런데 지금 방식이 지속 가능할지는 물음표다. 게임을 계속할 경우 1번키와 F키를 반복해 누르는 노동이 될 위험이 있다.

기존 온라인게임과 완전한 차별화를 이룬 점은 높게 살 만하다. 다만, 직업과 장비를 없애서 기존 게임 성장의 틀을 깼다면 키라나 성장의 틀도 함께 깨는 것이 맞지 않을까.

키라나들과 밥 먹는 장면 하나에서도 각각 성격이 보인다

처음 페리아연대기의 콘셉트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게임은 울티마온라인이었다. MMORPG의 개념을 정립하는 동시에 판타지라이프의 마스터피스로 불릴 만큼 훌륭한 자유도를 갖춘 작품이다. 오직 생활 콘텐츠만으로도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기여할 수 있었고, 유저의 모든 플레이가 경제 구조와 연계되는 시스템은 지금도 구현하기 어렵다.

마비노기가 판타지라이프 RPG로 오랜 기간 자리잡았던 큰 이유는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염색한 내 패션을 뽐내고 악기 연주를 들려주는 한편, 다른 유저의 특성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호보완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시스템의 디테일이 다르더라도 기본 정신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

첫 테스트에서 경제 시스템 관련 부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가장 궁금한 동시에 기대되는 지점이다. 인류 경제는 완전한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탄생했다.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다. 유저의 생산물과 특화 능력이 다른 유저와 어떻게 교류되는지 공개된다면, 페리아연대기가 꿈꾸는 세계의 비밀이 풀릴지도 모른다.

페리아연대기는 첫 발표 당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테스트 결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직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자체엔진을 이용한 지형 편집의 엄청난 확장성, 자유로운 시스템, 기존 RPG의 성장에 관한 근본적 의문.

시연 당시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드럽지 않은 전투는 어느 정도 보편적 시스템으로 타협점을 찾는 것은 어떨까. 다시 마비노기의 예를 들자면, 전투 시스템이 비교적 단순한 반면 사소하게나마 생각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었다. 현재 페리아연대기의 전투는 복잡한 반면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다. 심플해질 필요가 느껴진다.

때로는 직진보다 돌아가는 길이 빠르다. 중요한 것은 갈림길마다의 길 선택이다. 엔진 및 기술 구현과 자유도는 조금 타협점을 정하고 우회로를 찾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대신, 성장 개념 파괴는 오히려 더욱 직진이었으면 한다. '확실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을 남긴 다음 디테일을 추가하는 작업이 다음 단계일 것이다.

수많은 장애물을 거쳤고, 그 여정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테스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은 있었기에 이후 더 완성된 모습을 기다려본다. 페리아연대기는 적어도, 무난한 게임은 아니었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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