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으로 인해 게임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가장 뜨거운 전장은 바로 한국이다.

25일 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제72차 총회를 통해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6C51) 등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최소 12개월 이상 게임통제기능이 저하되고 다른 생활의 흥미와 일상 활동보다 게임이 우선시되는 등 심각성이 감지된다면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로 분류한다는 것.

이에 게임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학계에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는 총회 전후를 포함해 뚜렷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며, 게임 문화가 정착된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게임장애를 자국 분류코드에 등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일련의 결정을 게임계에서 활발히 반박하는 흐름이 조성된 만큼, 자칫 무리한 반론으로 논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논리를 재정비할 필요가 크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고 출발할 만한 3개의 포인트를 정리했다.

1. WHO 질병코드는 '불가역적 진리'가 아니다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은 권고 사항이며, 각 국가가 이를 반드시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한국은 한국질병분류코드(KCD) 2020년판에 ICD-11을 반영하지 않기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게임이용장애 등록 여부는 5년 뒤인 2025년 결정된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둘러싼 논란은, 국내에서 이를 '이용'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포착되는데서 나온다.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을 이슈로 삼아 접근하는 움직임은 대부분 한국과 중국에서 집중되어 나타났으며, 이는 지난 19대국회 신의진 의원의 4대중독법과 보건복지부의 정책 추진이 함께 맞물려 있다.

WHO의 질병코드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것이 질병이라는 진실을 뜻하지 않는다. 동성애가 오랜 기간 질병코드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역사도 이를 반증한다. WHO에서 질병코드 등록을 결정하기까지, 게임과몰입에 대한 연구는 게임이란 '연구 대상'을 향한 제대로 된 이해없이 이뤄졌다는 지적을 벗어나기 힘들다. 

중독을 기본 전제로 두고 연구를 진행하거나, 오래 전 논파된 게임뇌 이론이 다시 언론을 타고 전달되는 사례도 있었다. 또한 몹시 다양한 게임 형태와 장르를 특정지어 연구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팀이 4년간 청소년 2천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게임을 과하게 즐기는 청소년 중 매년 50% 이상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과몰입에서 벗어났으며, 이는 행위중독 가운데 질병 단계로 놓기에 지나치게 높은 자연회복률이다. 또한 연구팀은 근본적 원인이 게임이 아닌 가정환경과 학업 스트레스 등에 있다는 결과를 함께 발표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5년간 13~21세 755명을 조사한 결과 ADHD 동반 게임군의 자체 회복률이 0.17로 단순 과몰입 게임군(0.49)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게임 자체가 과몰입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정신적 문제가 게임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의미다. 

2. '놀이 매체'는 역사적으로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다

과거 국내에서는 어린이날마다 만화책을 한 데 모아 불태우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만화가 아이들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이유다. 1997년 일진회 사건에서 가해자 학생들이 일본 만화를 모방해 범행했다고 진술하자 언론은 자극적으로 전달했고, 청소년 보호단체들에 의해 만화 죽이기라는 흐름은 절정에 달했다.

TV가 보급됐을 당시 '바보상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청소년 TV중독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는 한편 물론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고, 시간이 흐른 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TV에서 멀어졌다. 지금 시대에 TV를 두고 바보상자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미성년자 중 게임에 빠진 비율 및 강도보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인터넷 이용과 영상 시청에 빠진 심각성이 더 높다는 분석도 있다. 마찬가지로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은 유해물질이라고 판단하기보다 그렇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옳다

항상 자녀의 성장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한편, 자녀의 놀이 수단을 막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동시에 주변 환경에 대한 전체적인 상담을 진행하는 방향을 권장하는 캠페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게임계의 진짜 '아킬레스건', 도박 프레임

의학계와 정계에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극히 낮다는 것은 불행인 동시에 다행이다. 

만일 사행성 요소가 들어간 게임 과용이 '도박 중독'이라는 근거를 연구해 치료와 규제를 주장했다면, 현재 국산 모바일게임에서 반박할 논리가 없다. 게이머들조차 옹호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도박은 이견이 없는 중독 요소다.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지만, 확률형 아이템의 높은 자율규제 준수는 유저에게 거의 체감이 되지 않는다. 현재 자율규제는 확률을 유저에게 공개하는 데에 집중될 뿐, 지나치게 불합리한 확률이나 과도한 사행성을 개선하는 항목은 없다. 

확률을 안다는 것만으로 사행성은 줄지 않는다. 카지노 룰렛에서 숫자 하나에 돈을 걸었을 때 배당률은 36배지만 당첨 확률은 38분의 1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밖에도 모든 카지노 게임은 오래 할수록 돈을 잃는 구조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서 도박에 빠지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이슈는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이미 랜덤박스 규제를 위한 법안이 발효되었거나 발의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매년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라가는 빈도가 잦아지는 추세다. 

담론이 게임이용장애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에 반박할 논리를 갖출 수 있다. 현재 게임업계는 서로 연대해 "게임은 문화이며 질병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공표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지나친 사행성을 개선해 '발전하는 문화'라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당장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감수하지 않으면 이후 더 큰 손해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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