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6.19 수 00:53
상단여백
HOME 인사이트
‘마법같은 과학’ 판타지 장르의 스팀펑크는 어떻게 표현되나?
송진원 기자 | 승인 2019.06.07 15:43

게임 속 판타지 세계관은 매력적이다. 

엘프, 오크 등과 절대선과 절대악이 맞붙는 대결구도는 복잡할 것 없이 심플하게 표현된다. 진영의 방어 체계나 전술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도 ‘마법’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어, 다소 무거운 주제의 스토리도 대중적인 코드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저들에게 게임의 판타지 세계관은 그 존재 만으로 특별하거나 흥미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많은 게임들에 사용되며 비슷해진 영향이 크고, 개성 역시 독특하다고 평가하기에 어려워졌다.

J.R.R. 톨킨 이후 정립된 엘프와 오크, 드워프의 이미지를 고정관념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공통된 세계관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아이온과 같이 천족과 마족의 대결을 다룬 게임도 더러 등장했으나 판타지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보다 날개의 종류나 외형, RvR 시스템에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의 완성도는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위 ‘명작’ 반열로 고정적인 팬층을 보유한 판타지 콘텐츠의 경우 비둘기, 박쥐 날개를 가진 캐릭터나 ‘끝없이 이어진 두 세력 간의 대결’ 등의 설정으로 장르의 매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실제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어반판타지’나,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한 ‘게임판타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세계물’ 등 한계가 없는 장르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독특한 설정과 배경으로 게임의 세계관에 녹아든 콘셉트는 ‘스팀펑크’다. 스팀펑크의 복합적인 매력은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긴 해도 ‘현실과 마법의 경계선’이라 정리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단순히 중세 서양을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라 생각될 정도로 평범한 모양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오버 테크놀로지 장비들은 상식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의 산물에 가깝다. 

스팀펑크의 핵심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시작이자 인류사 핵심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증기기관’ 기술이다. 실제 역사는 증기기관에 걸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과 전기동력의 발전을 다루지만, 스팀펑크의 세계관은 증기기관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사회를 다룬다. 

예를 들어 흑백영화에 나올법한 고풍스러운 정장과 정갈한 드레스를 입은 신사, 숙녀 캐릭터들이 회중시계를 하나씩 가졌다고 상상해보자. 겉으로 봐서는 실제 시계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벗겨진 커버 사이로 드러나는 기술은 당 시대를 초월한 수준인 것이다. 투박하게 조합된 황동 베어링 사이로 알람 기능에 GPS, 레이더 기능까지 모두 포함한 기능적 아름다움이야말로 스팀펑크를 대표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현실과 근접한 배경에 대중성 높은 판타지 장르가 조합됐다 보니 스팀펑크는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자주 활용되곤 했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함께 영화 ‘젠틀맨리그’와 ‘헬보이2: 골든아미’, 최근에는 ‘모털엔진’까지 흥행 여부를 떠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게임에선 스팀펑크 특유의 오버 테크놀로지 콘셉트의 아이템으로 매력을 더한다. ‘디스아너드’ 시리즈의 경우 일반적인 스팀펑크 작품과 달리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발전한 사회를 어둡게 그려냈는데, 작중에서 등장하는 ‘고래기름’은 에너지 연료로서 마법에 가까운 효율을 보여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또한 디스아너드에서 엿볼 수 있는 스팀펑크의 또 다른 특징은 마법과 과학의 자연스러운 조화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코르보나 에밀리가 사용하는 석궁과 단검, 고글 마스크도 판타지에 가까운 산물이지만, 두 캐릭터의 근본적인 힘은 방관자가 부여한 마법에서 비롯된다. 이 밖에도 등장인물 간의 대화에서 몇몇 발명품의 기동 원리로 마법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스팀펑크와 SF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특징은 `비공개테스트를 앞두고 있는 '에어'(A:IR)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첫인상만 보면 휴난, 엘프, 아인종, 오크에 마법까지 더해져 기존의 하이 판타지 콘셉트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비행’이란 콘텐츠에서 독특한 스팀펑크적 색채을 드러낸다. 

기존 게임의 비행 콘텐츠는 마법과 날개 등의 특수 능력으로 구현됐던 반면, 에어는 기계 장치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접근조차 불가능한 영역으로 다루어진다. 손에서 불을 뿜는 원소술사라 할지라도 부스터를 장착한 제트팩과 윙슈트가 없다면 높은 지대에 올라설 수 없고 가장 기본적인 이동 수단인 비행선과 탈것이 없을 시에는 스타트 지점인 인벤투스를 벗어날 수조차 없다. 

무엇보다 에어 속 비행선의 매력은 유니콘과 페가수스, 날개와 같은 판타지풍의 화려함과 전혀 다른 지극히 현실적인 기능에서 우러나온다. 외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선체 디자인과 투박한 추진기, 곳곳에 달려있는 냉병기들은 전투 시 마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잔탄과 과열 상황 등 실제 전투 요소를 그대로 반영하게끔 디자인됐다. 

여기에 메탈슬러그의 레벨아머를 연상케 하는 마갑기는 마법과 과학의 경계선에 걸쳐있는 산물로, 어떠한 마법으로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실제로 대규모 진영전 시 수많은 원소술사의 스킬보다 포격형 마갑기의 포탄 연사가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며, 마갑기의 유무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등 전장의 필수 요소로 마법을 압도한다.

그동안 국내 게임의 판타지의 다양성은 몇몇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설정으로 제한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대중적인 인기를 감안한 선택이었겠지만 중복된 설정은 배경 설명만으로도 게임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거나 업데이트 방향성을 짐작하는 기형적인 상황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팀펑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변용은 단편화된 판타지 콘셉트의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넥슨의 드래곤하운드 역시 기존의 미장센 중 열화된 문법을 모두 버리기 위해 대체 역사 오리엔탈 스팀펑크 콘셉트를 채택했으며, 강화 외골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중완’을 공개한 바 있다. 

물론 기존 하이판타지 세계관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 스팀펑크 콘셉트는 다소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천족과 마족의 끝나지 않는 대결처럼 고착화된 장르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만큼 국내 판타지 게임의 새로운 미래로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송진원 기자  sjw@gameinsight.co.kr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진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