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게임은 어떤 문화인데?"

오래 전 일이다. 국산게임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어떤 주장과 질문은 동시에 새어나왔다.

2013년, 4대중독법에 게임을 포함시키는 법안이 추진되었다가 폐기되는 과정 속에서 "게임은 문화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2019년 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결정하면서, 한국 게임사들이 연대하며 이 표어는 다시 떠올랐다.

사실이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고, 그중 비디오게임은 종합예술 작품이다. 그런데 현재 '게임 문화'는 어떤 형태와 특성을 가졌고, 앞으로는 '어떤 문화'로 나아가야 할까?

이 물음에 한국 게임계는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국산게임의 태동기에서 2019년까지 흘러온 긴 시간 동안, 한 걸음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문화는 무엇이고, 게임은 무엇일까

모든 문제는 문화의 개념이 엄청나게 광범위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어렵기 때문에 문화학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문화를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밖에도 각 산업과 집단과 가치관에 따라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정의된다.

게임이 문화라는 말이 너무 막연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경마나 카지노 등 사행성 위주 산업들도 넓은 의미로 문화에 포함된다. 게임이 문화라고 주장한다면, 그 다음 따라오는 작업은 게임에게 있어서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게임의 문화적 발전 방향이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 게임계의 목소리는 한 줄에서 그쳤다.

영화를 취급하는 방식에서 게임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엿보는 일은 가능하다. 영화에 들어가는 카메라 장비나 CG 처리 등 다양한 기술은  미디어 및 IT 산업의 집약체지만, 영화라는 이름으로 묶인 한 작품의 총체적 표현은 영상예술의 범주에서 평가된다.

현재 비디오게임은 인터랙티브 아트와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영상예술을 아우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쉽게 말하면, 놀이인 동시에 작품이다. "이렇게 많은 수준 이하 게임이 어떻게 작품이냐"고 묻지는 말자. 무료로 봐도 시간이 아까운 영화들 역시 작품이라고 불린다. 단지 평가가 낮은 작품일 뿐.

'게임의 문화학'은 한국에서 버려져 있었다

국내 게임사들도 유저들의 체감 이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 공헌도 활발하다. 그러나 게임문화에 관한 목소리와 실제 게임개발 형태는 분리되어 있었고, 결국 게임의 문화적 접근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체되는 결과로 다가왔다. 성숙된 문화로서 갖춰야 할 요건들은 아직도 결여되어 있다.

게임을 통한 문화이론 연구도 소수나마 존재하지만, 게이머들은 물론 게임업계조차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작품들의 개성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게임 비평 분야도 발전하지 않았다. 비평할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문화적 토양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는 인디게임 정도다. 그러나 게임 지원 사업은 VR이나 AR, e스포츠 등 '흥행 키워드'가 포함된 신기술 분야에 집중되어 왔다. 어떤 예술분야든 인디 육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다양한 표현을 꾸준히 공급해 장기적으로 건강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함인데, 그 방면에서 한국 게임은 메마른 지 오래였다.

몇 년 전부터 BIC페스티벌이나 구글인디게임페스티벌 등 다양한 인디게임 행사에 관심이 커지면서 희망의 불씨는 조금씩 보이고 있으나, 이제 걸음마를 뗀 시기에 비해 게임계의 위기는 너무 빠르게 찾아왔다.

업계 실무자들은 "투자 자본과 사업부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재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유행에 맞춘 상품으로 구색을 갖춰야 최초 기획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 한편 사업부 입장에서는 영향력과 비례해 정신적 부담을 심하게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작을 출시하고 유저 수에 비해 수익이 조금만 낮으면 자연스레 압박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PC온라인게임 중 국내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거두는 게임은 리니지고, 모바일게임 역시 리니지M이 압도적이다. 리니지 자체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게임이 수십 년 동안 1위를 굳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게임들이 그것을 벤치마킹하면서 새로운 시도가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는 현상은 시장 선순환이 일찌감치 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업체, 유저, 미디어, 시장논리가 어우러지면서 발생한 악순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 게임은 문화적 '경험'을 줄 수 있는가

서구권 게임사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설명할 때 Experience(경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나의 게임을 하나의 작품으로 규정한다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가'는 곧 작품성과 연결된다. 게임이 "인터렉티브를 중심으로 한 종합예술"이라는 표현을 굳이 입밖으로 낼 필요도 없이, 그동안 쌓인 토양 위에서 체득하고 있는 사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예술성과 감동 표현은 반드시 스토리를 통해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재미를 포기해야 구현되는 것도 아니다. 힐링게임의 정점으로 불린 2012년작 저니(Journey)는 이야기 표현을 추상적인 선에서 그치며 그저 세계를 이동할 뿐이었지만 유저들은 흥미로운 경험과 함께 깊은 감명을 얻었다.

흔히 예술적 게임이라고 하면 싱글 게임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온라인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즐긴 유저들이 자신의 또 하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경험을 완벽히 받아들이고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자신의 진영에 각각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IP를 구성하는 세계관과 만듦새 덕택이다.

현재 게임이 어떤 문화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국내 현실에서, "게임은 문화다"라는 외침이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느낌은 부정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를 들여올 때 받게 되는 국산 게임과의 괴리감도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영화처럼, 게임이 결국 승리하기 위해서

영화 역시 지금의 게임과 같은 압박을 수십 년 전 받은 적이 있었다. 선정성과 폭력성 문제로 청소년 보호라는 담론의 과녁이 되었고, 청소년들이 영상물에 빠져 책을 버리고 학업을 멀리 한다는 단편적 지적까지 똑같이 존재했다.

영화가 편견을 떨쳐내고 모두가 즐기는 대중문화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여럿 있다. 영화를 둘러싼 문화예술적 연구와 비평이 빠르게 발전했고, 걸작에 영향을 받아 재창조하는 동시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실험하는 시도가 활발했다. 무엇보다, 일련의 과정과 결과물은 재미가 있었다.

21세기 새로운 전장은 게임이다. 다른 게임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 인식 싸움이 힘겨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는 게임계에서 항상 언급되는 점, 과도한 교육열에서 비롯된 게임을 향한 적대심과 열악한 청소년 환경 속에서 나오는 게임으로의 도피 현상이다.

둘째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바로 한국 게임계의 빈약한 문화예술 연구와, 빈약한 결과물이다. 새로운 유희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기성 인식과의 싸움은 계속되어 왔다. 한국 게임계도 열심히 싸우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싸우고 있는가.

정서 공감대를 형성하든, 인터랙티브의 재미를 극대화하든, 새로운 표현과 기술을 보여주든. 게임만이 진화할 수 있는 방향은 충분히 많다. "이게 내가 만든 게임이라고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고 말하는 상당수 개발자들의 푸념은 남의 일이 아니다. 게임문화가 성숙하고 발전하지 않은 채 몸집만 커진다면, 게임장애 질병의 화살을 피한다고 해도 장애물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게임이 문화라는 당연한 말과 함께, 어떤 문화인지 보여주자. 현세대 비디오게임은 기술과 문화라는 양 날개로 비행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투자 대부분은 기술에 집중되고 있다. 제대로 날지 못한다면, 다른 한쪽 날개도 점검하는 것이 어떨까.

그릇된 편견을 제대로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게임사들이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과물을 내주기 바란다. 게임계가 당당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게임이 당당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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