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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게임과 질병의 이야기
송진원 기자 | 승인 2019.06.13 16:11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다. 물론 문장을 남긴 인물이 현재 시대상을 알고 있을 리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19세기 철학자의 말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정확히 관통한다. 

지난달 WHO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과몰입 현상을 ‘Gaming disorder’(게임 장애)로 정의한 ICD-11(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개정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게임 과몰입 현상은 질병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국제 기준을 기반으로 하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역시 2025년에 게임 과몰입의 질병코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WHO의 결정은 즉각적으로 국내외적인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포함한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총 9개국의 게임산업협업단체는 ICD-11의 재고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언론 매체를 통해 게임 질병코드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찬성과 반대 측 입장 차이처럼 게임 과몰입 증상에 대한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WHO에서 규정한 게임장애의 판단 기준은 게임이 다른 생명의 이익이나 일상생활보다 우선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해 찬성 측 입장은 게임을 오래 플레이할수록 판단력과 집중력은 떨어지며,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는 인지 능력도 함께 저하된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더욱 혼란스럽다. 과거 뇌과학자들에게 논파된 바 있는 게임뇌 이론을 주축으로 게임의 폭력성이야말로 각종 살인사건과 흉악범죄의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언론들은 선릉역 흉기 난동 사건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보도하며, 사건의 경위와 게임을 연결해 자극적인 틀을 짜 맞추기도 했다. 

물론 컴퓨터가 상용화된 지 몇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만큼 게임과 인체의 연관성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게임의 경우 마약처럼 대조군과 실험군으로 단기간의 결과값을 추려내기 어려운 분야인 만큼 어쩌면 찬성 측이 주장하는 게임의 폭력성도 어느 정도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다만 게임과몰입 현상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행위의 과정과 결과보다 정확한 원인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게임을 근절시키는데 집중하기보다 ‘왜 게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치료를 도울 주변 환경은 마련됐는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게임과몰입 증상을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의 편향된 인식은 만화책을 불태웠던 7~80년대 수준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실제로 몇몇 정신과, 한의원은 권고 사항에 지나지 않은 게임 과몰입에 대해, 나름의 진단 기준과 처방을 미리 만들어 놓고 열띤 홍보에 나선 상황이다. 

어떤 게임을 몇 시간 했을 때 중독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찬성과 반대 측에서 서로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연구 자료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끝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은 마케팅과 가십거리를 통해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미 논의를 마친 끝난 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2022년과 KCD를 논의할 2025년을 준비해야 하는 게임업계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게임에 대한 인지도와 부정적 인식 개선이다. 단순히 산업적인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 중 절반 이상을 견인한 게임이지만 대중들의 인식은 주류 문화보다 서브컬처를 대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복합적인 사안인 만큼 해결책 하나로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문화를 다루는 일인 만큼 제도의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중구난방 얽혀있는 게임에 대한 인식은 몇몇 게임사의 활약만으로 풀어낼 사안도 아니다. 

TV 토론에서 나눈 대화와 저열한 병원 광고가 보여주듯 그동안 게임에 대한 인식개선은 마케팅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다. 비록 WHO의 결정을 되돌릴 순 없었으나 KCD를 논의하기까지 6년의 시간이 남았다. 어떻게 보면 충분한 시간이 남은 듯 보일 수 있으나 대중들을 설득할만한 연구와 자료를 모으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조금 늦었을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확한 자료와 논리를 쌓아나가야만 KCD 논의에서 왜곡되지 않은 게임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송진원 기자  sjw@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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