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를 통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6C51) 등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HO는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1년 이상 게임통제기능이 저하되고 게임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경우 게임이용장애로 판단할 방침이다.

WHO의 이 같은 결정에 국내 각계에서는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다.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판단이다.”라며 비판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역시 10일, “게임 행위와 중독간 인과요인에 대한 의약학 연구와 사회과학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학계 내의 합의조차 부족한 중독정신 의학계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의료 현장의 혼란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수긍할 수 있는 과학적 검증 없이 내려진 결정인 만큼, WHO에 추가로 이의를 제기할 방침이다. 2022년 WHO의 권고가 발효되더라도 권고에 불과하고, 국내에 적용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처럼 국내 각계각층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현업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야 할 게임사들의 행보는 아직 잠잠하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 이후 수차례 토론회가 열리고, 공대위가 출범하는 등의 각종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공대위에는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 등 각종 게임 관련 단체와 학계, 한국영화학회,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등의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수많은 단체가 참여했다.
  
하지만 정작 게임사들은 한국게임산업협회 소속으로 간접적인 참여만 하고 있을 뿐, 실효성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오위즈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통해 ‘우리는 모두 게이머입니다’라는 페이지를 개시하며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에 대한 반대하는 입장을 표출하긴 했지만, 조금 더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게임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게임사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규제 강화 등을 우려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은 최근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의료계에서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 함께 고민이 필요하다. 저 역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생각으로 정치 입문 전 이러한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라며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젠 나설 때가 됐다. 현업에 종사하는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며 게임사 오너 및 경영진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게임사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은 어느 정도 마련됐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에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넥슨 이정헌 대표, 넷마블 방준혁 의장 게임빌/컴투스 송병준 대표를 비롯해 게임 업계 주요 관계자들이 동행하기로 한 것.
  
순방 동행만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게임업계와 정부가 현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WHO의 이번 개정은 권고안이기 때문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할지는 개별 국가에서 정하게 된다. 국내의 경우 한국표준질병·사인코드(KCD)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려면,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은 2022년 1월부터 발효될 예정으로 KCD가 5년 주기로 개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록되는 시점은 2026년으로 예상된다.
  
국내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약 7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게임사들이 남은 기간 주도적 대응을 이어간다면, 이번 결정의 결과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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