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취미임에도 ‘첫 게임’이란 물음의 대답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바람의나라를 선택한 유저도 있을테고 다른 누군가는 일곱개의대죄를 꼽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PC게임 입문 타이틀인 레이맨 시리즈와 함께 하드 커버 케이스로 포장된 ‘패키지 게임’의 감촉을 떠올리곤 한다. 

패키지 게임은 CD에 익숙하지 않은 10대 유저에게 생소할지도 모른다. 종류에 따라 두꺼운 전집이나 백과사전을 연상케 하는 박스에는 가이드를 담은 설명서뿐 아니라 일러스트, 설정집 등의 특전을 담겨 있다. 언뜻 보면 과하다 생각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팬의 입장에서 패키지 구성품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 이상으로 폭넓어진 게임 장르와 재미처럼 서비스 역시 다양해 졌다. 전화로 인터넷을 연결하던 시대부터 이어져왔던 MMORPG의 월정액 방식은 부분유료화로 폭을 넓혔다. 모바일게임 역시 타이틀을 구매하는 방식에서 플레이에 필요한 아이템과 행동력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다운로드 방식의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간단한 결제 절차만으로도 손쉽게 해외 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 비록 과거 디아블로와 워크래프트 등을 감쌌던 하드커버 케이스 감성이 상대적으로 비싸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압도적인 편리함은 대부분의 문제를 커버하기에 충분했다. 

언뜻 보면 게임을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더욱 편리해지고 다양해진 듯하다. 몇 가지 인증을 거치면 게임을 배송 기간 없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다. 카드만 미리 등록해놓으면 버튼 하나로 원하는 콘텐츠를 즉시 구매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간단해진 구매와 달리 최근 게임에서 엿보이는 콘텐츠는 혼란스럽다. 콘텐츠의 수준과 볼륨은 분명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보이지만 플레이 도중 어딘가 미완성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빠진 콘텐츠를 더듬듯 찾아보면 자연스럽게 유료 DLC와 추가 상품으로 연결된다. 

유료 DLC와 추가상품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확장팩과 같은 추가 콘텐츠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적용됐다. 추가상품 역시 시간을 재화로 구매하는 측면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덜어주는 지극히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대부분의 문제 원인이 그렇듯, 이는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100% 완성된 게임 속 추가콘텐츠는 선택 사항이다. 그러나 미완성 타이틀에 필요한 콘텐츠는 선택으로 미뤄둘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가격에 만족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개발자와 유저 간의 기본적인 약속이기에 그저 추가 상품 정도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상품을 강매하는 느낌의 추가 콘텐츠 판매가 일반화 되면서 유저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몇몇 모바일게임의 경우 뽑기뿐 아니라 편의기능을 정액제 형식으로 판매한다. 바꿔 말하자면 구매 유무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뉘는 효율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셈이다. 

물론 구매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좋은 게임에 영화, 소설, 뮤지컬 등과 마찬가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첫 게임을 선택하는 어린 유저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예전과 달라진 것 역시 실감하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 '이 게임 재미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돈 좀 쓰셔야 할걸요?’라는 대답이 어색하지 않은 때가 왔다. 과거에 비해 물가도 용돈의 개념도 달라졌지만 몇 만 원에 달하는 액수는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입장에서 여전히 큰돈이다. 하지만 게임을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을 때까지 필요한 콘텐츠를 구매하다 보면 어느새 웬만한 패키지 게임의 가격을 뛰어넘는다.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할 때마다 고민하는 심정은 먼 옛날 가게에서 패키지 게임을 고르던 그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오히려 아쉬움이 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비록 업데이트도, 수정 패치도 진행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박스 하나로 완성된 패키지 게임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술도 인프라도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타이틀이 곳곳에서 보이는 이유는 비단 짧은 데드라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업계가 품고 있는 큰 문제다. 한 번에 모든 것이 바뀔 순 없겠지만 지금은 ‘완성된 게임’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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