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현재 질병코드 주제는 '침묵의 전장'이다.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조용히 걸음을 떼지만, 서로 직접 총구를 겨누고 발포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후, 관련 논쟁은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일관된 반대 입장을 보였고, 보건복지부는 우호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처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낙연 총리가 간부회의를 통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가 비교적 조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을 둘러싼 각종 사회적-정치적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으로 분석된다. 한편으로 국내 도입을 결정하는 시기가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직접적 행동에 나서기 힘든 점도 있다. 20대 국회는 1년도 남지 않았다.

사회 쟁점에서 행정부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는 곳이 입법부다. 아직 정당별 공식 입장은 없지만, 게임을 둘러싼 정치적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각자의 신념과 위치에 따라 개인 주장을 펼치는 국회의원들이 하나 둘 보인다.

김병관 - "게임에 문제 원인을 돌리는 것이 건강한 사회인가?"

정계를 대표하는 친(親)게임 국회의원이다. NHN 게임제작실장으로 게임계에 입문해 웹젠 이사회 의장을 거치며 게임 및 IT산업에 깊은 이해를 가졌고, 게임규제 완화에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질병코드 이슈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김병관 의원은 5월 28일 SNS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게임이 누구나 손쉽게 즐기는 여가활동이 됐지만,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면서, "어느 여가활동이든 과하면 문제가 될 수 있고 게임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콘텐츠이자, 다양한 예술장르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이 결합되어 발전해온 미래의 유망산업"이라며 게임을 정의했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수많은 원인과 환경을 등한시한 채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게임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대형 게임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달 3일 굿인터넷클럽 4차 행사에 참석한 김병관 의원은 "나 역시 정계 입문 전에는 게임산업의 처우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형님'들이 나설 때가 됐다"면서 주요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섭 - 게임 입법의 선봉장, 행동으로 말한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겜잘알'로 불리는 의원실이다. 비영리게임 등급분류 면제와 대리게임 금지 등 깊은 이해 없이 나오기 힘든 디테일한 입법을 추진했고, 최근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 보고서 문제점을 파고들며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행사 참여나 발언보다 의정활동에 집중하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질병코드 등록에 반대하는 게임융합정책 토론회를 13일 공동주최하고, "게임이 중독을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매체인지 더욱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도 함께 전달했다. 

조응천 - "게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

법사위 소속이며 게임과 직접 관련된 활동이 그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WHO 질병코드 도입 이후 모습을 드러낸 의원 중 하나다. 13일 열린 게임융합정책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WHO 질병코드에 대한 발언을 꺼내면서 게이미피케이션 정책 추진에 의지를 드러냈다.

조응천 의원은 "WHO가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등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기류가 있는데, 게임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동근 - 게임산업 성장에 방점, '조율자'로 자리잡나?

게임 진흥에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행보를 보이면서, WHO 질병코드와 관련해서는 한쪽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5일 국회 의원회관에 게임계 및 의료계 관계자를 함께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주최한 것도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다.

19일 5G시대 게임산업 육성전략 토론회에서는 "중국 게임산업 급성장과 WHO 질병코드 도입 및 각종 규제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게임산업에, 5G기술은 우리가 세계시장을 다시 선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종필 - 판교의 중심에서 질병을 외치다

5월 2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송현초등학교 사거리 중앙에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의 이름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중독'은 질병!'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의학계에서는 현재 '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WHO에서 등재한 질병코드에도 중독 명칭은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윤종필 의원은 'WHO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환영하며'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며 WTO 조치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11월 국정감사에는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피의자의 게임 몰입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게임 중독자의 뇌 구조가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자료를 제시했으며,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료라는 반박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사진제공: 최도자 의원 블로그
사진제공: 최도자 의원 블로그

최도자 - 복지위의 게임 저격수 "게임업계는 중독기금 내라"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보육인 출신이다. 육아와 교육 관련 의정 활동에 중점을 두며, 보건복지위에서도 대표적으로 게임 규제를 강조하는 의원 중 하나다.

2018년 국정감사부터 "새로운 질병분류에 게임장애가 포함된다"면서 "한국표준질병에도 추가를 서둘러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게임업체들이 게임중독자 예방과 치료를 위해 치유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WHO가 질병코드 등재 결정을 내리면서, 관련 법안 추진에 속도를 높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밖에 - 공식 발언은 '조용', 그러나 바쁜 행보

여야 다수 의원들은 구체적 입장을 밝히는 데 꺼리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식입장을 직접 발표한 의원은 몇 되지 않는다. 게임 이해도가 높은 의원이 소수인 점에 더해,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학부모 세대를 의식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질병코드 도입 찬성측 역시, 게임에 우호적인 젊은 세대의 여론을 살피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다만, 토론회 등 국회 행사 주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향을 엿보는 것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옹호측 인사로 분류된다. 20대 국회에 초선으로 들어와 대한민국 게임포럼을 결성하는 한편 입법 활동에도 참여했다. WHO 질병코드 등재 이후 공식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3월 토론회에 참석해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기엔 아직 실체와 명확한 연구결과가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강훈식 의원 역시 질병코드에 관한 직접 발언은 없다. 대신 게임산업 진흥 발언과 활동을 통해 포지션을 확인할 수 있다. 5G시대 게임산업 육성전략 토론회를 함께 개최해 "콘텐츠 코리아 전성시대를 열고 젊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자신의 지역구인 아산시에 개소되는 충남글로벌문화센터를 지원하는 등 우호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은 5월 28일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긴급토론회를 주최했다. 다만 직접 참석하진 못했으며, 그밖에 눈에 띄는 활동과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다.

WHO의 ICD-11 개정안은 강제되지 않는다. 2022년부터 각국에 권고 효력을 가지며,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도입 여부는 2025년 결정한 뒤 2026년 시행한다. 정부는 합리적 해결을 위해 국무조정실에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2020년 총선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것도 변수다. 게임에 깊은 이해를 가지는 의원이 얼마나 생길 것인지. 질병코드 등재 찬반 비율이 총선 이후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고려할 점이 많다.

정부 관계자들은 "학부모 단체들의 행동력과 조직력이 매우 높으며, 지금은 그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의원 개인이 게임에 대해 입장을 표하는 것은 위험부담을 함께 안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KCD 도입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6년 남았다. 긴 대립이 이어질 확률이 커진다. 그와 함께 정계에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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