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과 나이, 세대와 관계없이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콘텐츠 중 하나는 ‘동화’다. 

동화의 이미지는 어린 아이의 동심을 대표하는 요소다. 캐릭터가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결말이 올 것이라 독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시절을 달콤하게 가꿔줬던 동화라 할지라도 어른이 된 지금, 의도치 않게 알아버린 동화의 이면은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잔혹한 매력을 두르고 있다. 가령 콩쥐팥쥐 속 콩쥐의 행복을 팥쥐가 보고만 있었을까. 또한 걸리버여행기의 여정은 정말 거인국에서 끝이 났던 것일까. 

대답은 모두 ‘아니오’지만 선뜻 어린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의 결말은 동심과 전혀 다른 일종의 비틀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추구하는 결말은 같다. 콩쥐와 사또와 행복한 생활. 단지 팥쥐의 행보가 반성이냐, 항아리 속에 담기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여기에 살인과 복수, 약간의 카니발리즘까지 곁들여진 이야기는 결국 주인공의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뤘기에 어린이 버전과는 다른 쾌감을 제공한다. 

출시를 앞둔 시노앨리스 역시 이러한 비틀림의 미학을 동화로 구현한 사례다. 그동안 출시됐던 미소녀 게임들을 감안했을 때 아름다운 캐릭터와 캐치프레이즈의 ‘추악함’은 다소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수 있다. 

공개된 일러스트도 캐릭터의 아기자기함으로, 유저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지녔지만 캐릭터들의 목적은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다. 작가를 부활시키는 것. 부활시키려는 목적은 서로 달라도 어딘가 비틀려있는 수단과 방법론은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동화 속 캐릭터와 사뭇 다른 극단적인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이 시노앨리스의 매력이자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각 캐릭터를 대표하는 단어는 극단적으로 구현된 성향과 개성을 짐작할 수 있다. 폭력으로 대변되는 빨간모자는 지혜로 늑대를 물리쳤던 원작과 달리 피와 파괴를 사랑하는 소녀으로 묘사된다. 

물론 어린이 버전도 늑대가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잡아먹는 장면이라든지,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째서 돌로 채워 넣는 등의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섞여있다. 그래도 빨간모자만큼은 어디까지나 약하지만 지혜로운 어린이를 상징하는 캐릭터였다. 반면 시노앨리스의 비틀린 세계관은 늑대로부터 할머니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빨간모자로부터 두 생명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것 같은 광적인 상황을 스토리로 녹여냈다. 

단순히 동심파괴만을 노린 해석일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한 요코오 타로 디렉터는 기괴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어두운 세계관의 게임이 많아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다는 그의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저들이 시노앨리스의 세계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기존 어린이 버전보다 원작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는 IP(지식재산권) 해석 방식에 있다. 어린 날의 추억과 다른 면이 많을지라도 팥쥐와 계모는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했으며, 거인국을 넘어 휴이넘과 생활을 함께했던 걸리버는 인간에게 환멸을 품는다. 

이처럼 언뜻 봤을 때 기괴해 보이는 서사구조이지만, 어른이 된 유저들을 위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스토리텔링이다. 

이러한 소설이나 콘텐츠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선뜻 자녀와 조카들에게 추천해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도서관에서 원작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즐겁지만 가슴 한 편으로는 불편함을 동반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통증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말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작가가 숨겨놓은 노골적인 풍자에 나도 모르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동화책 전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어린이는 어느덧 수염 거뭇한 어른이 됐다. 동물농장이란 단어에 TV 대신 조지 오웰을 떠올리며, 동심이란 말을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한 세대도 됐다. 

한편으로 어린 시절 동화를 보며 느꼈던 권선징악의 교훈과 감동이 희미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작가가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를 이해하고 시노앨리스의 비틀린 세계관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지성이 됐기에,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동심을 기쁘게 놔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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