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년 전, 밀리터리 슈팅게임 ARMA2에 모드 하나가 등장했다. 

목표는 맨몸으로 맵에 떨어져 좀비의 습격 속에서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장난처럼 나타난 이 모드는 게임 본편 이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드의 이름은 DayZ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게임은 이전부터 자주 있었다. 하지만 DayZ는 신선했다. 오픈월드 슈팅게임이면서 굶거나 목말라 죽을 수 있었고, 질병이나 감기에 걸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에 대처해야 했다. 또한 실시간으로 마주치는 다른 유저와 협력 및 배신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다. 

DayZ가 정립한 생존게임의 개념은 이후 수많은 게임에게 영감을 줬다. 그리고 게임 장르 발전에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H1Z1:Just Survive는 DayZ의 수많은 아류작 중 특히 주목받았던 게임이다. 그러나 생존게임 열풍은 영원하지 않았다. 인기가 시들자, 배틀로얄 모드 개발자로 명성을 얻던 브랜든 그린(PlayerUnkown)을 영입해 King of the Kill 모드를 개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모드는 곧 H1Z1의 메인타이틀이 되었다.

모드로 시작한 장르가 또 다른 모드를 낳고, 좀비 생존게임 시장이 자연스럽게 배틀로얄로 흘러가는 기점이었다. H1Z1을 통해 많은 유저들에게 알려진 배틀로얄 장르는 '생존'의 코드를 기반으로 "오직 나만이 유일하게 생존하는 것"을 목표로 잡게 됐다.

브랜든 그린은 블루홀에 영입되어 배틀그라운드(PUBG) 개발의 중심에 섰고, 배틀로얄을 세계 최고의 유행 장르로 만드는 업적을 세웠다. PC온라인 시장에 배틀로얄 장르를 향한 배틀로얄이 벌어졌다. 포트나이트 배틀로얄이 서구권 최고의 실적을 올렸고, 블랙옵스4와 에이펙스레전드 등 수많은 게임이 도전을 거듭했다.

배틀로얄은 생존게임의 하위 장르로 자리잡은 동시에, 생존 진화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생존에 실패했을 때 스트레스를 최소한 줄이면서 1위 달성 성취감은 극대화해야 했다. DayZ가 토양을 다진 생존게임 기본 공식에,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 불리는 최종 승자방식이 더해졌다. 여기에 심화된 성장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장르 진화는 가속화됐다.

배틀로얄 역시 유행을 선도하는 자리에 영영 있을 수 없었다. 장르 트렌드는 다시 변화했다. 2019년 시작과 함께 오토체스가 등장했고, 올해 신장르 열풍을 이끌고 있다. 

드로도 스튜디오가 도타2의 모드로 공개한 도타 오토체스는 본 게임을 능가하는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디펜스 장르에 유닛을 카드처럼 뽑아 성장시키고 세부 전투는 자동으로 치른다. 과거 워크래프트3 모드인 포켓몬 디펜스가 원조로 꼽히는데, 재미의 가능성이 입증된 상태에서 한층 성숙한 시스템이 결합되며 수많은 유저를 몰입하게 했다.

새 장르로 정립됐다고 평가받는 오토체스류는 삼파전 구도를 갖추기 시작했다. 드로도 스튜디오가 스탠드얼론으로 출시하는 오토체스, 도타2 개발사 밸브가 직접 서비스를 준비하는 도타 언더로드, 그리고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새로운 모드로 출시한 전략적 팀 전투(Teamfight Tactics, TFT). 현재 초반 주도권은 TFT가 쥐고 있다.

TFT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오토체스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며 도의적 논란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다만 독자 아이디어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유저들에게 '회전초밥'으로 불리는 공동선택 단계는, 드래프트 방식으로 원하는 챔피언을 가져가면서 일방적 운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역전 변수를 늘렸다. 

각 게임이 발전을 꾀하는 중인 PvP 라운드는 경쟁 유저와 물고 물리는 상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유저간 직접 상호작용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전략 폭이 넓어지고 견제 요소가 생기면서 게임의 몰입감이 한층 입체적으로 변한다. 각 게임이 비슷하다는 비판 가운데서도, 오토체스 장르는 분명히 진화의 조짐을 보인다.

유저간 경쟁 방식이 다채로워지는 현상은, 한 명씩 탈락시켜 최종 생존자를 가린다는 기본 게임방식과 맞물려 익숙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바로 배틀로얄의 특성이다.

장르 유행이 고착될수록 진입장벽 문제는 고질적으로 발생한다. 생존게임은 물론, 배틀로얄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포트나이트는 라이트유저와 '고인물'의 격차가 매우 심각한 게임으로 꼽히며, 배틀그라운드 역시 이제 뒤늦게 시작하기 위해 알아야 할 사전정보가 많아졌다. 

오토체스류는 배틀로얄의 경험 요소와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자기성장, 견제, 그리고 라스트 맨 스탠딩. 하지만 진입장벽을 해소시킨 장치가 분명하다. 전투방식이 다르며, 자동이기 때문에 컨트롤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재 유저가 원하는 재미 요소를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은 셈이다. 

DayZ부터 시작된 장르의 변화를 살피면, 일종의 생태계를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장르가 떠오르는 만큼 황혼을 맞이하는 장르도 존재한다. 

잊혀졌던 장르가 다시 부활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지금 RTS가 몰락했다고 평가받지만, 오토체스류의 간편한 조작 특성과 맞물려 최신 유행 시스템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태계가 복잡한 만큼이나 게임계 역시 변화무쌍하다.

아류작과 계승 발전은 아이디어 하나 차이다. 과거 시스템에 영향받지 않은 흥행작은 거의 없다. 다만, 새로운 것을 전혀 넣지 못하고 발전 요소가 없다면 돌아오는 것은 비판뿐이다. 배틀그라운드의 대흥행은 H1Z1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 아니다. 훨씬 더 좋은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오토체스류 열풍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제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열풍이 끝날 것이며 또다른 아이디어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새로운 재미는 무엇일까. 순환과 발전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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