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주 52시간 근무상한제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한국 게임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업계는 정말로 이것 때문에 휘청이는 것일까.

1년 동안 주52시간제로 달라진 게임계 모습은 끊임없는 화두가 됐다. 이전 최대한도인 주 68시간도 모자라던 곳이었다. 일반지와 경제지 등 기성 언론에서 게임사의 문제가 터질때 마다 근거로 인용했다. 특히 시행 1년이 지난 지난 7월은 보도가 집중적으로 노출된 시기다.

'주52시간제 여파로 게임 출시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며 신작 출시가 늦어진다는 내용의 기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첫 기사는 2018년 8월 1일, 기간이 시작된 지 불과 1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근거는 금융계와 게임사 임원진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7월 한 달 동안, 게임사가 밀집된 판교와 서울 등지에서 일선 개발자 및 실무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부서와 근무 환경은 다양했고, 실질적으로 주52시간제를 지키지 못하는 곳도 존재했다. 최대한 여러 업체에서 짧게나마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반응 속에서 한 가지는 확인하게 됐다. 그들의 목소리는 미디어에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2~30잔의 커피를 산 것 같다
적어도 2~30잔의 커피를 산 것 같다

"개발 속도요? 주52시간제 이전이라고 해서 빠르지 않았어요"

핵심 주제는 주52시간제와 개발 지연과의 상관관계다.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거나 옆에서 지켜보는 시선인 만큼, 스스로 체감하는 개발 속도에 대한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큰 차이가 없다", 혹은 "원래 느렸다"는 답변이다.

넥슨 사옥 앞에서 만난 한 개발자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52시간 근무제 되기 전엔 개발 지연이 적은 줄 알겠다"면서 웃었다. "9시 출근해 저녁 8시까지 매일 일해도 주 50시간인데, 이 근무량이 너무 적어서 개발이 지연된다면 사람 자체가 부족한 것 아닌가"라고 되묻는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또다른 판교 소재 대형게임사에서 기획 파트로 일하는 개발자는 "우리는 제안서를 위로 올리면 다시 내려오는 데에 이틀은 걸리고, 실무에 전혀 맞지 않는 지시사항이 덕지덕지 붙는다. 의사결정 과정만 바꿔도 개발기간이 절반은 줄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주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중소 업체 개발자는 "신작개발 2년 동안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험을 5번이나 했다. 24시간 일하는 기계들을 데려와도 열 번 엎어지고 개발기간은 똑같을 것"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언론들은 1년 사이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가 신작 출시를 줄줄이 연기한 것, 그들의 실적 역시 좋지 않은 것을 주요 근거로 삼아 주52간제가 치명타였다고 말이 나왔다. 그러나 제도의 시행 전후에 의문점은 남아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게임 출시는 원래 연기가 잦고, 신작 기근과 실적 부진도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문제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가 2018년 뚜렷한 신작이 없었고 2019년 출시 예정작이 5개에서 2개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엔씨소프트는 예전부터 다작을 한 적이 없다. 결과물이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프로젝트 연기 및 취소를 망설이지 않고 결행해왔다.

엔씨소프트의 원래 매년 하나 정도의 신작을 출시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2017년에 그나마 여러 신작이 나온 것도, 파이널 블레이드와 아라미 퍼즈벤처가 기존 엔씨게임에 비해 개발력이 매우 적게 들어간 이유 때문이다. 지금 준비하는 오픈월드 MMORPG 프로젝트와 극명한 차이가 난다. 주52시간제 시행 이전과 이후가 유의미하게 달라졌다고 판단할 근거는 부족하다.

모바일게임 평균 개발 기간은 꾸준히 늘어왔다. 캐주얼 게임이 대부분이었던 초창기 시장과 지형이 달라졌다. 모바일게임도 풍성한 볼륨을 요구하며, PC온라인에 크게 밀리지 않는 그래픽 수준까지 향상됐다. 기준점이 폭등한 만큼 개발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52시간제가 개발 지연에 영향을 준다는 답변도 있었다. 하지만 비율은 높지 않았으며,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대형 게임사의 3년차 개발자는 "개인적으로 일 욕심이 많은 편인데, 한정된 시간을 팀원들과 맞추다 보니 프로젝트 진행이 더뎌져 답답한 심정도 있다"고 답했다.

서울 소재 게임사의 한 팀장은 "신작 프로젝트는 업무량을 급격히 늘려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 인력을 그때만 데려오기도 어렵다 보니 어느 정도 지연되는 일은 있다"고 답변했다. 다만 그 역시 "1년 가까이 지연된다면 온전히 주52시간제 때문일 수는 없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구로의 등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졌던 넷마블은 2018년 대폭 근로개편을 실시했다
'구로의 등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졌던 넷마블은 2018년 대폭 근로개편을 실시했다

"중국게임 경쟁력이 앞선 이유가 과연 밤낮없이 일해서일까요?"

지난 6월 조선비즈는 어느 국내 게임 업체가 중국 파트너사와 마찰을 빚은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 업체가 밤늦게 담당자를 찾을 때마다 이미 퇴근을 해서 거칠게 항의를 했고, 그밖의 협력업체들도 불만을 가진다는 것. 주52간제가 정착되면서 밤낮 없이 일하는 중국 게임업체들에게 한국이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는 우려를 표현했다.

중국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담당자를 다양하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표본이 작아 정답이 될 수 없으나,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크게 2개 방향에서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첫째로 기사의 사례가 보편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둘째로 게임 경쟁력과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것.

업계에서는 주52시간이 시행된 2018년 하반기가 아니라, 그보다 한참 전부터 중국 게임계 경쟁력이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추월당한 요인은 근무 시간이 아닌, 자본과 인력의 압도적인 차이가 꼽힌다.

비수도권 지역에 자리잡으면서 중국 개발사와 접촉할 일이 많았던 업체의 직원은 "그쪽에서 저녁에 연락이 안 되면 안 됐지, 우리가 먼저 퇴근했다고 연락을 못 받은 일은 최근에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이어 "원칙은 아니지만, 담당자들은 중요한 연락이 협력업체에서 오면 퇴근 뒤에도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우리 입장과는 많이 동떨어진 기사"라고 소감을 남겼다.

중국 IT업체 경험자는 "중국 스타트업의 경우 근무 환경이 엄청나게 열악한 것이 맞다. '996 룰(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근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강도 장기 업무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에 대해서는 "환경이 극과 극이고, 스타트업과 비슷한 곳도 있는 한편 놀라울 정도로 선진 업무환경을 갖춘 곳도 있다. 중국은 워낙 커서 기업문화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중립적 입장을 남겼다.

해외 업체와의 협업에 대해, 독일 게임사와 작업했던 한 개발자는 다른 방향의 시각을 내놓기도 했다. "근무 시간이 경쟁력과 비례한다면 유럽 게임은 이미 전멸했다"면서, "유럽의 근무 환경뿐 아니라 업무 소통 문화도 함께 벤치마킹해서 시간 효율을 늘리는 방향이 맞지 않는가"라는 제안을 남겼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는 직원들에게 패키지를 선물하는 카카오게임즈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는 직원들에게 패키지를 선물하는 카카오게임즈

"우리 말을 기사에 반영한 곳이 단 하나도 없더라고요"

미디어가 보여주는 정보는 때때로 논리의 착시 효과가 들어가 있다. 특정 사건과 무관하게 이미 진행되던 현상의 앞뒤를 잘라서, 그 사건으로 인해 현상이 생겼다고 인과를 호도하는 방식이다. 개발 지연과 경쟁력 약화, 게임 운영대응 논란은 주52시간제와 무관하게 계속 심화되고 지적받던 문제다.

정말로 게임 신작 연기에 주 52시간의 영향이 크다면, 300인 이하 사업장인 중소 규모 게임사들은 일정과 실적 추세가 차이 났어야 한다. 하지만 주5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는 곳도 게임계 매출 양극화 문제는 계속 심해지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가 개발 기간이 아닌 비용으로 흘렀다면 타당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주요 게임사에서 포괄임금제가 폐지됐거나 곧 폐지될 예정이다. 24시간 운영하는 게임 특성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탄력(유연)근무제가 속속 시행됐다. 분명 게임사의 인건비 부담은 늘어난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1년간 250명에 달하는 인력을 채용했다. 넷마블, NHN, 넥슨지티 등 많은 업체들의 직원 숫자가 10% 이상 늘었고, 특히 펄어비스는 6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 게임사 일부에 문의한 결과, 인력 충원의 원인은 말이 각각 달랐다. 어떤 곳은 "근무시간 축소로 인재가 더 필요해져 적극적으로 구인한 것이 맞다"고 긍정하는 한편, 또 다른 관계자는 "사업 확장으로 꾸준히 인력을 늘려왔을 뿐 주52간제를 이유로 더 늘은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일반지 및 경제지에서 개발 지연과 주52시간제의 관계에 대해 게임사에 잦은 문의가 이루어진 것도 확인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에 실무진의 의견은 빠져 있었고, 주52시간이 주 요인이라는 전제와 함께 임원진의 생각이 인용된 내용뿐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매체에서 문의가 올 때마다 우리 업체는 큰 관련이 없다고 소상히 설명했는데, 그 말을 기사에 실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보도 목적을 먼저 설정해놓고 그에 맞춘 의견만 취사선택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주52시간제 시행 전부터 매년 꾸준히 인력을 늘려온 업체도, "언론 기사에는 우리 해명이 완전히 사라진 채 주52시간제 역풍이 불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예시를 들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게임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작하는 공산품이 아니다. 하루 16시간 일을 시킨다고 해서 8시간 일할 때보다 2배 빠르게 개발할 수 없다. 미디어가 게임계의 주52간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게임을 문화적 콘텐츠가 아니라 생산품으로 취급하고 그와 같은 공식을 적용하려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재작년까지 크런치 기간에는 새벽 3시까지 코딩하다가 퇴근이 일상이었어요. 택시비를 지원받지만 야근 수당은 따로 없었죠. 집에 안 가고 회사 수면실을 애용했어요. 어차피 아침 9시까지 출근인데, 왔다갔다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으니까"

게임 이상의 근무 악조건으로 유명한 곳이 영화계였다. 노동법을 준수하면 촬영 일정을 절대 맞출 수 없다는 말까지 존재했다. 한국 영화계도 공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묻혀 있던 부당 노동착취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계약서도 쓰지 않던 근무 관행을 바꾸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특히 영화 기생충은 촬영 전 모든 스태프와 근로표준계약을 체결하고, 주52시간제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스태프를 존중하는 일정을 진행했다. 촬영은 순조로웠고, 영화의 질은 당연히 나쁘지 않았다. 한국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주52시간제가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비전문가 입장에서 단언할 수 없다. 대신, 사실관계는 제대로 실어야 한다. 사실관계 규명이 어렵다면, 최소한 관계자들의 의견은 편향 없이 전달해야 한다. 게임과 주52시간제를 둘러싼 언론 보도는 단순히 게임계에 대한 몰이해일 수도, 혹은 정해진 목적을 위한 의도적 왜곡일 수도 있다.

구로와 판교에는 '등대'가 있었다. 모두 게임사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새벽 시간 위메이드 앞 대로에서 줄지어 퇴근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행렬은 판교의 슬픈 볼거리였다. 게임사 밀집지역인 넥슨 사옥 앞도 심야택시 만남의 광장 중 하나였다. 게임개발자가 야근에 시달린 끝에 사망했다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흘러나왔다.

등대는 더 이상 환하지 않다. 이제 심야택시의 성지는 없다. 새벽 운전만으로 영업이 힘들어졌다는 판교 택시기사들의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직원인 동시에 부모님인 이들은 탄력근무제를 통해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지금이 게임산업의 위기일까? 어쩌면, 이제서야 가장 큰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은 아닐까. 그저 정치 논리에 게임계가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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