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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탑골공원, 그리고 WoW 클래식
길용찬 기자 | 승인 2019.09.03 22:10

탑골공원은 종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모이는 시대가 됐다. 게임이 추억을 맞이해야 하는 방법도 함께 보인다.

SBS 케이팝클래식 채널에서 24시간 스트리밍으로 송출되고 있는 옛날 인기가요 현장을 말한다. 1999년 방송분이 인기를 끌자 2000년을 이어 방송했고, 2일부터 잠시 1998년으로 되돌아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풋풋한 신인 아이돌 신화가 무대에 올라 으쌰으쌰를 열창하고 있다.

당시 가요계를 수놓은 명곡들과 세기말 감성이 어우러진 무대로 인해 점차 입소문을 탔다. 결국 골든타임에는 실시간 시청자 2만명을 넘길 정도로 화제몰이를 했다. 과거를 추억하는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이유로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관리자도 공원 관리라는 말을 쓰는 등 센스 있게 대응하면서 개념이 정착됐다.

의문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거 음악 프로그램 영상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당시 영상 중 다수가 유튜브에 풀렸고 누구든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화제가 되지 못했다. 지금 온라인 탑골공원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억여행이 스트리밍과 만나면서 생기는 현상, 실시간 공감 커뮤니케이션이 그 주인공이다. 시청자들은 정작 무대는 귀로만 듣고 채팅창에 눈을 둔 채 즐기면서 시간이 삭제되는 체험을 하는 중이다. 서로의 리액션과 애드립 대잔치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게 된 것이다.

지금과 당시의 시대 차이로 인해 유머 요소는 폭발했다. 김현정을 탑골 에일리로, 백지영을 탑골 청하로, 빨간 머리 염색한 박혜경을 근손실 자리야로 부르는 등. 유튜브 관리자는 온라인 사회복지사로 불린다.

공원답게 비둘기 밥값도 공유한다

가요계가 밀레니엄 클래식이라면, 게임계는 2005년 클래식 열풍이다.

WoW 클래식이 초반 흥행할 가능성은 높았지만, 잠시 추억여행으로 즐기다 식을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지금 기준으로 WoW 오리지널은 너무 낡고 불편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풍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오픈일보다 2일차 대기열이 더 많았고, 주말 결국 대기열 1만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도 골든타임 1만이 계속되고 있다. 퀘스트 위치 파악에 언어영역 능력이 필요하고, 몬스터 한두 마리 잡으면 물빵을 먹으며 쉬어야 하고, 가방도 부족해서 상인에게 뛰어가야 하는 이 불편한 게임을 서로 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온라인 탑골공원이 준 힌트가 있었고, 어떤 유저의 말을 조합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주 불편하지만, 모두가 불편하다".

최신 버전 WoW는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져 있었다.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용을 타고 날아가 퀘스트를 진행하고, 아이템은 경매장으로 해결하고 혼자만의 콘텐츠를 즐기다 자동 레이드에 입장하면 그만이었다. 공대장을 제외하면 채팅할 일이 없었다.

WoW 클래식은 실시간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길 알려달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들창코 사냥파티 모집, 8칸짜리 가방을 거래하는 대화와 육성 상담까지. 기억과 경험을 서로 주고받는 현장이다. 편리함과 재미는 비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두가 실시간으로 느끼게 됐다.

'인생 2회차'라서 시행착오가 줄었다는 점도 완충 작용을 했고, 전성기 WoW가 MMORPG의 본질에 충실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얼라이언스 진영에서 처음으로 꼽히던 감동은 스톰윈드 입장이었다. 골드샤이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스톰윈드 왕성이 화면 가득 들어오는 순간, 웅장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모험의 시작점에서 강렬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얼라이언스에서 플레이하면서도 그 경험을 하지 못했다. 오리지널 시절 플레이한 종족이 노움이라 지하철 타고 스톰윈드 뒷골목으로 처음 입장한 탓이었다. 이번 기회에 인간 종족을 선택하고 15년 만에 그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음악 타이밍은 예술적이었다. 맞아, 이게 당시 모험의 맛이었지. 시간이 흘러도 감동은 죽지 않았다.

2일 저녁, 한국 클래식서버 처음으로 대규모 필드쟁이 열렸다. 오리지널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동시에 재미있다고 불리는 콘텐츠다. 스트리머 간 장난 섞인 싸움이 나비효과가 되어 힐스브래드 구릉지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격돌로 번졌다.

15년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그 사실은 재미를 한껏 늘렸다. 각 진영의 스트리밍 방송들이 실시간 중계 카메라 역할을 했다. 유저들은 멀티스크린으로 필드 상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고, 거기서 오가는 채팅과 소식 전달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플랫폼기술 발전이 추억의 재현을 강화시킨 셈이다.

추억 재현 콘텐츠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러나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WoW 클래식의 초반 열풍은 추억을 즐기는 방식이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 중심에는 실시간 스트리밍과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을 틀어놓고 가시덤불 골짜기에서 시체를 끄는 저녁시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겠다. 무한정 즐길 거리가 아니고 한때의 놀잇거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 게임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라는 말처럼, 결국 우리는 새로운 것을 다시 갈망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 콘텐츠를 돌아보는 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은 한참 지나간 과거지만, 당시를 재현하면서 즐기는 나 자신은 현재의 기록이니까.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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