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반짝'일 것이란 예상이 무색해졌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클래식 유저는 줄지 않는다. 대기열은 여전히 뜨겁고 서버는 늘고 있다.

WoW의 유저풀이 엄청난 서양 지역과 달리 한국의 WoW 클래식 흥행 예측은 회의적이었다. MMORPG 플레이 패턴이 크게 달라졌고, 단순 추억여행을 즐길 만한 인구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 한국 서버를 단 하나만 오픈한 것도 그런 전망과 궤를 같이 했다. 

출시 1개월이 되어가는 시점, 클래식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들어 파티를 찾아다니고, 퀘스트 팁을 서로 알려주며,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주요 분쟁지에서 투닥거린다. 다시 떠들썩해진 아제로스 대륙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불편함 + 인생 2회차 = 상쇄

클래식은 지금 기준의 불편함과 함께, 지금이기 때문에 편해진 점이 더해지면서 뜻밖의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모두 기억이 지워진 채로 클래식을 플레이했다면, 혹은 기억이 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편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유저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이세계물 주인공과 같다. 퀘스트 동선은 어느 방향이 효율적인지, 던전 패턴은 어떻게 공략하는지, 이후 60레벨 레이드 준비 방법까지 1레벨 속속들이 꿰고 있다.

오리지널 시절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아진 애드온 퀄리티는 클래식의 불편함을 개선해준다. 이제 죽음의 폐광 던전을 돌면서 보이지 않는 어그로 숫자에 떨지 않아도 된다. 몰래 놀고 있던 공대원을 한 눈에 적발할 수 있다. 오리지널 시절 모험의 재미는 여전하면서, 최소한의 편의성은 갖추게 됐다.

커뮤니티에서 클래식을 통해 WoW에 입문했다는 유저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순수하게 옛 유저의 추억여행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벗어난다. 수없이 많은 공략이 있고 지역 채널에 질문을 남겨도 10명 이상이 한꺼번에 응답할 정도로 답변자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옛 게임에 새로 적응해가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 '롱런' 조건은 이미 달성, 적어도 오리지널까지는

오리지널에서도 가장 큰 장벽은 최고 레벨인 60레벨까지의 과정이었다. 이제 국내 서버에 화산심장부 공격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단계까지 열기가 이어진 이상, 이제 식을 변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레이드와 전장을 즐기면서 WoW가 가장 재미있어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레이드에서 다음 장벽이라면 검은날개 둥지부터 급격히 올라가는 난이도 정도인데, 벨라스트라즈가 최악의 공대파괴자였다고 해도 이미 모든 정보를 알고 심리적으로도 대비가 된 유저들이 거기서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화염저항포션 값을 벌러 노력해야 할 생각을 하면 벌써 현기증이 좀 나지만.

특히 WoW의 오랜 역사에서 레이드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점도 장벽을 없앨 것이다. 유저들의 평균 레이드 개념과 공략 시스템, 그리고 애드온 수준은 15년 동안 몇 차원을 건너뛰었다. 레이드 택틱 난이도 역시 그에 맞춰 상승했다. '고인물' 유저들에게 오리지널 시절 레이드는 큰 난관이 되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롱런이란 오리지널 콘텐츠를 모두 즐기는 시간까지를 말한다. 결국 성장은 끝나고 콘텐츠는 소모될 것이다. 만일 불타는 성전 확장팩 이후를 적용한다고 해도 유저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다. 결과가 정해져 있는 롱런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상황이다.

* 대화가 생기고, 스토리가 다시 이어진다

클래식의 열풍은 유저들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MMORPG의 본질을 일깨운다. 그것은 '함께 하는 모험'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 

15년이 흐르면서, WoW 현재 버전을 포함해 지금 대부분의 MMORPG는 기술과 시스템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반대급부로 유저간 소통을 잃어버렸다. 대화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화가 사라지자 스토리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클래식은 지금 유저들에게 다시,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제공한다.

MMORPG를 최초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한국은 여전히 MMORPG가 게임의 절대 주류인 곳이기 때문에 필요성이 더욱 강하다. 편의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재미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WoW 클래식은 우리를 과거로 소환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과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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