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한 판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게임성은 준수하다. 디테일 보완은 갈 길이 바쁘다.

나선영웅전은 수집형SRPG다. 별다를 것 없는 장르인데, 퍼블리셔 이름을 함께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웹젠의 첫 수집형RPG다. 중국의 루나라게임즈에서 개발했고, SRPG 장르의 편견을 깨고 누구든 간결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성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시장에 나섰다.

현지화에 공을 들였고, 사전등록 보상인 춘향에 이어 황진이를 공개하는 등 한국형 영웅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웹젠의 이번 결과물은 어떨까.

'게임판'과 조작 메커니즘을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했다. 나선영웅전의 가장 큰 특장점이다.

한 눈에 들어오고 스크롤이 필요하지 않은 맵 크기는 조작 스트레스를 대폭 줄여준다. 전투 시간 역시 길지 않다. SRPG지만 어렵지 않고 간편한 재미를 주겠다는 개발 의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나치게 쉬운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상쇄된다. 3속성의 물고 물리는 상성은 전투 승패를 가르고, 적의 증원 포인트를 선점하는 전술도 중요하다. 쉽게 하려면 할 수 있는데 파고들수록 게임성을 활용할 여지가 많다. UI가 불편한 부분이 곳곳에 들어오긴 해도 SRPG의 기본 재미는 게임 속에 녹아든다.

사전정보에서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생각 외로 흥미로운 콘텐츠가 나선의힘과 나선의탑이다. 25레벨에 개방되는 나선 시스템은 무속성을 포함한 속성 단위의 전체 성장을 돕는데, 일괄 속성의 적이 등장하는 나선의탑 던전과 이어지면서 육성 순서에 자유도를 부여한다.

카드풀이 많아져도 애정하는 SR캐릭터의 '취직' 자리가 충분해지고, 개별 캐릭터마다 덕지덕지 붙곤 하는 성장 시스템이 단일화 된 것도 의미 있다. 전투와 성장 개념에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고, 간편한 게임이라는 기본 그림은 확실하게 그려낸 모양새다.

캐릭터의 매력도 나쁘지 않다. 메인 캐릭터들은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스토리를 이끈다. 닌자 가문을 소재로 강아지 닌자인 주인공 시바마루와, 이기적인 성격 속에 사연을 지닌 오쵸우 등 인물들의 속사정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캐릭터의 힘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의 기본 줄기도 흥미로운 편이고, 외전 스토리는 진지함을 빼고 가볍게 접근하면서 양념 역할을 한다. 다만 대화창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이야기 구현을 따라가지 못하고, 번역에서 느껴지는 직역투와 세련되지 못한 폰트는 마음에 걸린다.

자동전투의 인공지능은 눈에 띄게 낮다. 결과적으로 치명적 단점까지는 아니다. 수동을 유도한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고, 소탕 시스템이 존재해 자동전투 요구 수준이 크지 않도록 정비되어 있다.

밸런스 조절이 적정 수준이고, 출시와 함께 제공하는 재화도 많다. 무과금이라도 캐릭터가 없어서 메인 스토리 진행이 어려울 걱정은 크지 않다. 24레벨 진행 만에 총 50연속 뽑기를 진행하고 UR등급 3개를 얻을 수 있었다. UR 확률이 기본 4%라 다른 수집형 게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뽑기 방식의 한계로 유저별 편차가 크다는 것은 숙제다. 사전등록 보상으로 제공하는 춘향 외에 확정적으로 획득 가능한 UR등급은 없는데, 이벤트로 좋은 영웅을 얻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지켜볼 만하다.

고유의 매력포인트를 갖췄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가장 결정적인 벽은 첫인상이다. 나선영웅전의 비주얼은 분명 좋지 않다. 게임 시작부터 지속적 플레이를 유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있다.

비주얼 개념은 정지 화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화면전환에서 동시대 게임들에 비해 연출이 투박하다. 전투 액션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비주얼이 부족해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게임들이 분명 있지만, 대부분 IP의 고정 팬덤이 확실한 동시에 그들의 니즈만큼은 확실하게 충족시킨 경우다.

수집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평가 기준이 수집의 재미다. 나선영웅전의 일러스트는 대체로 준수한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플레이를 계속할수록 수집에 동기부여를 하는 부분이 조금 약하다.

UR등급 캐릭터를 얻었을 때 성능 외 추가되는 리소스는 일러스트 한 장과 대사 몇 마디다. 다른 수집형 게임들이 캐릭터별 스토리텔링과 높은 등급 특전에 힘을 쏟는 것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다. 디테일 면에서 개선할 점이 상당 부분 보인다.

음악도 아쉽다. 퀄리티가 훌륭한 수준은 아니고, 짧게 소리를 메워주는 BGM 느낌으로 몇 곡 있는 정도라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특히, 음악 한 사이클이 끝나면 부자연스럽게 몇 초간 끊겨 있다가 처음부터 시작되는 점도 보완이 필요하다.

웹젠의 변화 신호는 긍정적인 징조다. 전까지 기업과 게임 이미지에 경직된 면이 있었고, 장르 다변화라는 도전은 시기의 문제일 뿐 필요했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걸은 첫 발자국이 나선영웅전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든 게임이든 자기PR이 중요해지는 시기에서, 나선영웅전은 열심히 공부했는데 프레젠테이션에 서투른 사회초년생의 느낌을 풍긴다. 첫 만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어렵지만, 게임의 본연 목표를 살린 만큼 운영에 따라 장기적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은 있다.

변화는 지속적 투자와 조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디테일을 보완하고 최신 감성을 갖추는 것, 진정한 변신이라는 다음 계단에 오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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