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콘텐츠에서 역사는 최고의 소재 중 하나다.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좋은 사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국가에 존재한다.

대만의 레드캔들게임즈가 2017년 출시한 반교(Detention)는 전세계 유저들에게 호평 받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호러게임 반열에 올랐다. 연출이 감각적이고 공포 분위기를 선명하게 살리는 등 기본기도 훌륭했지만, 최근 영화화까지 이뤄질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대만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세계관과 스토리의 구성 때문이다.

배경은 무려 40년간 이어진 국민당의 계엄령 시대. 일당독재와 문화탄압 아래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방예흔과 위중장이라는 두 명의 고교생을 중심으로 비극적 이야기를 표현했다. 엔딩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이어지면서 감동을 선사한 것도 반교를 걸작 반열에 올린 결정적 이유다.

게임 매체는 인물의 경험을 직접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 몰입을 유도한다. 반교는 그 지점을 최대한 살려냈고, 글로벌 유저들이 대만의 슬픈 역사를 인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반교 영화 예고편 중 한 장면
반교 영화 예고편 중 한 장면

역사 논쟁에 의해 국내외에서 싸움을 벌여온 한국이야말로, 게임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역사 배경을 활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게임개발 인프라와 역사 리소스는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념해야 할 점은 하나 있다. 역사적 배경이 스토리를 잡아먹는다면 게임 본연의 작품성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교가 대만 역사를 지나치게 드러내 설명하거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강조했다면, 흥미와 감동을 모두 챙기는 시나리오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유의점은 모든 문화콘텐츠에 해당하고,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부터 게임인재단에서 운영하는 '게임인 한국사 나눔 프로그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게임이 기능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정확하게 포착했으며, 취지에 맞는 운영으로 성과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 겜춘문예 행사를 통해 한국사 배경 캐릭터 공모전을 진행하는 한편, COSDOTS팀의 언폴디드 시리즈 후원으로 역사 알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언폴디드 시리즈는 무거운 역사 중 하나인 제주 4.3 사건을 어드벤처 형식으로 다룬다. 인디게임의 개발 환경 속에서도 세련된 연출을 구현했고, 게임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경과 스토리에 몰입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3부작 중 '오래된 상처'와 '참극' 2편이 현재 완성되어 모바일 스토어에서 플레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 출시한 언폴디드:참극은 9월 열린 BIC페스티벌 2019에서 내러티브상과 소셜임팩트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마지막 3편 제작을 위해 제주4.3범국민위원회에서 고증과 조언에 나서는 등 지원도 늘고 있다.

2020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인 게임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것은 MazM:페치카와 원혼. 두 게임 모두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거부하고 살 붙이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MazM:페치카는 내러티브 중심 모바일게임으로 알려진 MazM 시리즈의 차기작이다.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극적인 생애를 다룰 예정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그의 주변에 있었을 인물들의 시점으로 시대상과 드라마를 작품성 있게 표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달 GTR 2019에서 소개된 원혼은 잠입액션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1920년대 일본군에게 죽음을 당한 한 소녀의 원혼이 복수와 더불어 독립군을 돕게 된다는 시놉시스도 흔하지 않다. 빙의 시스템으로 적군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PC와 콘솔 버전으로 개발 중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룬다는 공통점도 있다. 전파 여하에 따라 가혹했던 당시 실상과 독립을 위한 이들의 노력을 국외에 알릴 수 있고, 역사에 집착하지 않고 게임 자체로도 뛰어난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현재 역사적 스토리를 구성하는 게임은 인디게임 분야에 머물러 있고, 대형 혹은 중견 게임사에서는 큰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게임이 주류가 되지 못한 시장, 그리고 대작으로 만들기에 높은 난이도라는 점 등 장벽은 남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고민할 만한 필요성과 매력은 존재한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는 매 게임 특정 국가의 시대상을 다루며, 게임성 발전과 함께 결벽증이라고 불릴 정도의 완벽한 고증을 거치면서 작품적 가치를 오래 유지해왔다.

게임의 역사적 배경은, 제대로 논의를 거친다면 사회적 의미와 함께 소재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역사를 향한 관심과 새로운 소재에 대한 관심이 함께 늘어나는 시점이기에 연구 가치는 충분하다. 미래에 대한 답은 때때로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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