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가정이 남는다. 재료는 좋은데, 더 좋은 레시피를 발견했다면.

크래프톤의 아이모(AIMO)팀이 10일 출시한 크로스오버는 국내 PC콘솔 유저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됐다. 까다로운 난이도의 던전RPG를 애니메이션풍 캐릭터로 구현한 점은 이목을 끌었다. 한편으로 다키스트던전과 비슷하다는 감상과 함께, 게임성에 대한 찬반 양론도 뒤를 이었다.

보통 난이도로 주말 동안 체험한 결과, 미스트오버의 게임성은 다키스트던전 아류작이 아니다. 기본 뼈대는 일본식 3인칭 던전RPG에 해당하고, 다키스트던전의 분위기 및 화풍과 서브 시스템 몇 가지를 접목한 형태에 가깝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스트오버는 꽤 할 만한 게임이 될 수 있었다. 각 포인트마다 완성도는 높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이 없는 시기에, 기존 게임의 요소를 섞은 것만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로 훌륭하게 어우러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 재료 구상은 참 잘 했다

미스트오버의 원류는 이상한 던전 시리즈, 그중에서도 1995년 첫 작품이 나온 풍래의 시렌으로 보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위저드리 시리즈까지 나올 수도 있지만 큰 공통점은 없다. 표절이나 도용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후 20년 넘는 기간 동안 이상한 던전의 시스템이 수많은 게임에 영향을 주면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맵 구성, 3인칭 시점의 8방향 이동, 함정과 수집품으로 인한 변수, 식량으로 조절해야 하는 만복도 시스템, 사망할 경우 처음부터 다시 키우게 되는 위험, 장비 감정과 합성까지. 가장 많은 요소와 기초 틀이 풍래의 시렌과 겹친다.

클래스별 파티 운용이나 캐릭터 감성은 세계수의 미궁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키스트던전에서 따온 요소는 진형기반 스킬 사용과 일회용 아이템 편성, 광휘도, 캐릭터에 무작위로 붙는 징크스(기벽) 등. 미스트오버 고유 시스템은 9마스 타일 전투맵과 종류별 열쇠-상자 무작위 배치 정도다.

최초 기획은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일본식 던전RPG는 확고한 마니아 유저층을 가지면서, 발전이 더딘 분야다. 초창기부터 완성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양 게임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다키스트던전의 요소를 잘 얹는다면 경쟁력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첫 더빙을 일본어로 진행한 것도 공략 대상을 짐작케 한다.

어려우면서도 도전 의식과 성취감을 자극하는 게임을 만드는 일은 개발 입장에서도 어렵다. 다크소울이나 다키스트던전 같은 게임들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미스트오버 기본 난이도는 적절한 편이다. 적을 만나는 대로 마구잡이 전투를 치르면 아주 어렵지만, 섀도블레이드의 은신이나 위치의 시간정지 등의 탐험스킬을 활용해 전투 빈도를 조절할 수 있다. 굳이 몬스터를 다 잡지 않아도 파티원을 생존시킨 채 상자와 잡동사니만 꼼꼼히 열면 멸망의 시계는 전진하지 않는다.

전투 역시 요령만 알면 크게 어렵지 않다. 보스 퇴치 퀘스트를 너무 빨리 덤비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긴 한다. 팔라딘과 시스터가 탱킹과 힐링을 맡으면서 마비 스킬을 적극 활용해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된다.

문제의 핵심은, 미스트오버의 난이도 보충을 탐험과 전투 바깥의 시스템으로 올렸다는 점이다. 긴장감 있는 어려움이 아니라, 지루하고 번거로운 방향으로 어려워진 이유다. 힘을 너무 준 채로 지나치게 많은 시스템을 넣으려고 한 느낌이 강하다.

그 시계
그 시계

* 난이도의 시곗바늘이 어긋나다

골드 수급은 적고, 식량이나 포션 등 필수 아이템은 던전에 들어갔다가 남기고 오면 오염되기 때문에 소지량을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그런데 탐험 중 얻는 아이템의 무작위성이 너무 강해 식량이 5~6개씩 쌓인 채 골드를 낭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소량만 가져간 식량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전투 템포도 긴 편이고, 몬스터가 리젠되는 것도 너무 빨라서 게임이 늘어지는 현상도 생긴다. 회피 확률이 서로 높은데 빗나갈 때 악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도 지적된다. 안전한 플레이가 무조건 좋아서 장기전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미스트오버에서 멸망의 시계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던전 탐험을 끝낼 때마다 모든 상자를 열었는지, 모든 몬스터를 잡았는지, 모든 잡동사니를 뒤졌는지 등을 시계가 체크한다. 그중 완수하지 못한 분야가 많다면 시계가 멸망을 향해 한 칸씩 전진하고, 12시 바늘까지 도착할 경우 게임 오버다. 유저는 탐험마다 모든 맵을 다 뒤질 것을 강요받으며, 번거롭고 늘어지는 동시에 게임 외 변수가 지나치게 늘어난다.

어렵지만 유저에게 호평받는 게임들은 단계적 학습으로 유저 적응을 함께 설계한다. 다키스트던전 역시 초반 폐허지역은 적당히 할 만한 수준이고, 사육장과 해안을 거치면서 난이도가 한 계단씩 뛰어오른다. DLC 추가지역인 안뜰은 완전히 난이도가 달라진다. 한번 쓴맛을 본 유저는 안뜰 진입 전 영지와 파티원을 재정비하고, 지역별로 다양한 게임 공략법을 미리 익히게 된다.

이 분야 최고의 예시는 프롬소프트웨어의 세키로다. 간파하기 기술의 기본을 가르치는 중간보스, 구르기 회피를 학습시키는 중간보스, 패링을 숙달시키는 보스와 2연속 패링을 테스트하는 중간보스를 지나면 어떤 메인 보스가 1차 종합능력시험을 출제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작정 어려운 것 같아도, 유저도 모르게 게임의 개념이 스며들면서 빠져드는 것이 잘 만든 게임의 특징이다.

던전RPG에 포함된 멸망의 시계는 탕수육에 춘장 소스를 찍어먹는 것 같은 위화감을 제공한다. 어려운 게임의 기본인 계단식 성장과, 던전RPG의 기본인 "멈출 것이냐 vs 욕심내서 나아갈 것이냐"의 딜레마를 동시에 없애버린다. 높은 레벨 파티가 낮은 지역을 갈 때도 시계에 패널티가 붙기 때문에, 안정적인 골드 수급이 막힌다는 점도 단점을 부채질한다.

* 근본적 의문 : 굳이 '많이'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트오버는 개발력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게임이다. 일본식 던전RPG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재료를 지녔다. 오히려 그쪽 장점을 더 선명하게 가져갔다면 유저층 공략 측면에서 매력적인 게임이 되었을지 모른다.

2016년 출시한 니혼이치 소프트웨어의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은 장르 특성상 널리 알려진 게임은 아니지만, 그 분야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마니아 사이에서 던전RPG의 수작으로 불렸다. 던전 탐험의 개연성과 게임성을 스토리에 온전히 녹여냈고,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선보이면서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제공했다.

일본식 던전RPG가 서양식과 크게 구별되는 점은 크게 2가지다. 캐릭터성과 스토리의 비중이 크다는 것, 그리고 파고들기 요소가 강하다는 것.

미스트오버는 캐릭터 디자인과 배경 아트워크, 맵 디자인 등 기본 구성요소를 충실하게 선보인다. 직업별 설정과 대사 재해석도 독특하고, 아트워크 역시 단단하다. 시나리오 중심으로 더욱 힘을 준 다음 그에 맞춰 게임을 재편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도 해본다.

조작법은 체험판에서 바뀌지 않았다. 게임패드에 완전히 최적화된 형태고, 키보드만 가능하며 마우스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키보드 조작 배치가 불편하다는 점도 같다. PC플랫폼 유저를 위해 더 나은 조작법을 고안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버그 제보할 점도 하나 있다. PC에 PS4 패드를 연결해 플레이할 경우 디폴트 옵션에서 X 버튼이 결정키인데, 이것을 O버튼으로 바꾸고 플레이하다 종료 후 재실행하면 다시 X버튼으로 돌아가 있다. 옵션창을 매번 들락거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싱글플레이 게임도 업데이트를 통해 환골탈태하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미스트오버는 가능성이 있다. 앞서 말했듯, 구성 요소의 개별 퀄리티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시스템 재정비와 난이도 커브 조절을 통해 사랑받는 게임이 될 잠재력은 충분하다.

한국 PC 콘솔게임이 국내에 큰 기대를 하지 않던 현실에서, 미스트오버에 쏟아진 관심은 새로운 한국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의 소망을 드러낸다. 고쳐나갈 점이 많더라도 의미 있는 도전이자 결과물이다. 피드백을 수렴해 즐거운 까다로움으로 재탄생할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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