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가 숨겨둔 카드는 신작 카드게임이었다. 잊혀졌던 전장이 다시 술렁거렸다. 레전드오브룬테라(LoR)가 첫 공개 직후 5일간 체험 이벤트를 가졌다. 

관심은 블리자드의 하스스톤과 차이점이다. 수집용 카드게임(CCG) 장르에서 하스스톤이 쌓아올린 성적은 눈부시다. TCG 양대산맥인 매직더개더링과 유희왕 이후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카드게임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이고, 그 타이밍에 공개된 LoR은 현재 가장 뜨거운 IP인 리그오브레전드다. 블리자드와 라이엇게임즈의 대결 구도가 가속화된 지금, CCG 장르 왕좌의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5일 동안 다양한 덱을 플레이해 봤다. 가장 많이 들려온 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하기로 했다. "LoR은 하스스톤과 비교해서 어땠나"에 관한 대답이다. 

LoR은 하스스톤과 비슷한 게임이 아니다. 같은 장르라는 점을 제외하면 하스스톤을 모방한 요소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라운드 전개방식과 전투 공방선택 같은 기본 틀은 매직더개더링(MtG)이다. 여기에 소환과 주문 턴을 번갈아 주고받는 아티팩트의 시스템이 결합됐다. 

카드는 CCG와 같이 필드에 소환해 전투하는 유닛카드와 주문카드로 나뉘는데, 유닛카드는 챔피언과 추종자로 다시 나뉜다. 챔피언이 레벨업 해서 강력한 성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섀도우버스의 진화 시스템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LoR은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하고 즉시 레벨업이란 점이 다르다. 

위와 같은 조건을 기반으로, LoR이 절묘하게 빚어낸 2개 강점이 있다. 

첫째는 소환과 주문 하나하나마다 전개되는 수 싸움이다. 방어 라운드에 손놓고 구경해야 하는 게임이 아니다. 공격 라운드는 그저 선제행동 기회일 뿐, 카드 1회 사용마다 방어측이 곧장 대응 행동이 가능하다. 심지어 공격토큰을 생성해서 역으로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 소환한 라운드에 바로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유닛을 먼저 소환하다 역공에 당하게 되는 경우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바로 공격에 나서서 대응 기회를 차단하게 된다. 행동 하나하나가 심리전이다. 그만큼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많이 나온다. 다른 CCG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느낀 가장 큰 이유다.

MtG의 주문 카드가 소서리와 인스턴트로 나뉘는 것처럼, LoR 역시 전투 중이 아닐 때만 시전할 수 있는 집중 주문과 언제든 발동하는 신속 주문으로 나뉜다. 상대가 아예 대응할 수 없는 즉발 주문도 존재한다. 이로 인한 주고받기와 설계도 강화됐다. 여기에 선제공격이나 압도(돌격) 등 MtG에서 흔히 보던 유닛 특수능력을 대거 도입했고, 게임 양상을 더욱 공격적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CCG가 그렇듯 자원 카드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매 라운드 최대 마나가 1씩 늘어난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얹은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문마나 저장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두 번째 강점이다. 

마나를 남긴 상태로 라운드를 마치면 최대 3개까지 주문 마나풀에 저장된다. 이것은 다음 라운드에 주문을 쓸 경우 우선 소모된다. 즉 최대 마나는 10이지만 운영에 따라 13마나를 한 라운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LoR은 초반부터 탄력적인 자원 운용이 가능해졌다. 그로 인한 전략성은 숙련자 단계에서 승패를 가르는 큰 요소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마스터하기 어려운 게임은 콘텐츠가 잘 마르지 않는다.

챔피언카드의 캐릭터성 역시 매우 좋다. 라이엇게임즈가 IP의 매력을 살리는 방법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LoL의 챔피언 특성과 스킬 성격을 살리면서도 카드의 개념에서 재창조했다. 

원작재현 어워드가 존재한다면 대상은 티모를 주고 싶다. 1대미지를 주는 버섯을 상대 덱 카드에 수백 개까지 설치하는 덱을 만들 수 있다. 승률이 높지 않고 챔피언도 허약하지만, 사용하는 유저는 그 재미에 빠지면 미친 듯이 돌리게 되며 당하는 유저는 그라데이션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티모의 알파와 오메가를 완벽하게 옮긴 셈이다.

연출 퀄리티는 놀라운 수준이다. 게임판을 넘어서 게임 디스플레이 전체를 최대한 활용하며 생동감 넘치는 챔피언 효과를 표현한다. 단순히 영상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카드의 상황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정성이 느껴지게 한다. 

UI디자인과 직관성은 하스스톤에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다. 하스스톤이 흥행과 더불어 e스포츠로도 기대 이상 성과를 거둔 큰 이유는 UI디자인과 직관성, 이펙트 조절을 게임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 구현했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자가 워낙 강력한 분야일 뿐 LoR 역시 나쁜 편은 아니다. 모니터 화면에 구현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최대한 쉽게 풀어낸 흔적은 충분히 느껴진다.

덱메이킹 난이도도 초심자에게 다소 까다로울 수 있다. CCG 장르에서 덱 40장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같은 카드는 3장까지 들어간다. 마나 커브도 기존 게임에 비해 직관적이지 않아서 정식 출시 시기에는 덱메이킹을 돕는 시스템이 추가된다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덱 코드를 복사해 가져올 수 있지만, 인게임 가이드는 언제나 중요하다.

짧은 체감으로는 덱에 프렐요드 진영이 들어가면 강해지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밸런스는 아직 논하기 어렵다. 5일 만에 특정 진영이나 덱 스타일이 매우 강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말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틀린 말이거나, 곧 틀릴 말이거나. 

메타가 정립되기 전 테스트가 끝났고, 카드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덱 구성이 재발견되고 상성이 뒤집히곤 한다. 거기에 LoR은 주문 변수가 상당히 많은 시스템이다. 메타 변동성이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CCG에서 과금모델과 직결되는 시스템은 카드제작 방식이다. LoR의 카드 제작은 '만능 카드'라는 재료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만능 카드를 지불할 때마다 해당 등급의 원하는 카드를 얻게 된다. 테스트 계정은 만능 카드를 등급별로 20장씩 지급해 여유롭게 덱을 만들고 즐길 수 있었다. 

실제 서비스에서는 만능 카드 수급량에 따라 과금모델 수준도 결정될 것이다. 다만 가장 비싼 챔피언카드가 덱에 최대 6장만 들어가기 때문에, 카드를 만드는 비용 상한선이 확실히 제한된다. 구조적으로 하스스톤에 비해 저렴한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대신 시간을 꾸준히 들여 카드를 수집하도록 설계할 것으로 보인다. 

2개 불안요소가 있다. 진입장벽과 플레이 템포.

진입장벽은 가벼운 불안이다. 하스스톤은 게임성 이해라는 측면에서 장벽을 엄청나게 낮춘 게임이다. 공격턴 여부와 주문 교환이 정신없이 이뤄지는 LoR 시스템은 게임 경험이 적은 초심자에게 어려울 수 있다. 

불안이 가볍다고 말한 이유는 심층적인 게임 시스템을 감안하면 선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MtG에서 맛보던 깊은 게임성을 상당 부분 가져오면서 최대한 가시성을 고민해 구성한 흔적은 역력하다. 하스스톤을 통해 CCG의 기본 법칙에 숙달한 유저 풀이 상당히 넓기 때문에 생각보다 장벽이 큰 문제가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템포 문제는 조금 큰 불안이다. 평균시간을 측정하면 하스스톤 정도의 적절한 수준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끝나거나 한없이 늘어지는 경기가 종종 나온다. 플레이타임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은 멀티플레이 게임 유저 입장에서 피로도가 쌓일 여지가 생긴다.

챔피언 효과가 특출나기 때문에 덱 차이에 의한 플레이 경험 격차도 경계해야 한다. 서비스 초창기가 지난 뒤 초심자가 들어와 기존 유저들을 상대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끝나는 게임 양상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컨트롤 덱끼리 만날 경우 주문 주고받기와 필드 청소가 교차하면서 게임시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경우도 간과할 수 없다.

게임의 깊이가 반드시 폭넓은 흥행을 아우른다는 보장은 없기에, 초반 입문 계단을 튼튼하게 다질 필요는 있다. 메타에 따른 템포의 변수를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 라이엇게임즈가 서비스 과정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큰 퀘스트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전설적 대흥행, 그 IP를 바탕으로 탄생한 첫 게임. '레전드오브룬테라'는 글로벌 게임시장에 한 장의 골든카드로 놓이기 충분하다. 

LoR은 2020년 시작과 함께 CBT 실시, 그리고 1분기 안에 정식 출시 예정이다. 반 년도 남지 않았다. 기본 틀은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이미 지금 모습만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카드를 번갈아 내는 과정에서 쫄깃한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프렐+필트 컨트롤덱과 데마시아 미드레인지, 피오라 콤보덱과 티모 인성덱을 즐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덱마다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완전히 색달랐다는 점이다. 이미 지금부터 새로운 덱을 만들고 싶어진다. 

첫 라운드는 만족스럽게 끝났다. 본격적인 공격 턴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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