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매직이 있었다. 이후 시장은 '돌겜'이 지배했다. 돌이 조금씩 가라앉자 카드게임 왕좌를 노리는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든다.

라이엇게임즈의 레전드오브룬테라(LoR)는 현재 가장 뜨거운 IP로 승부수를 던진다. 리그오브레전드 기반으로 탄생한 첫 독립 게임이라는 점만으로도 화제성은 입증된다. 여기에 지난 체험 이벤트에서 호평을 받으며 2020년 출전 준비를 갖췄다.

넷마블은 '근본' IP로 왕위쟁탈전에 나섰다. 2018년 NTP에서 공개한 뒤 소식이 뜸했던 매직더개더링M이 매직:마나스트라이크로 게임명이 확정되어 돌아왔다. 위자드 더 코스트가 올해 정식 출시한 매직더개더링 아레나도 공격적 투자로 서양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게임계에 불어온 카드게임 바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매직더개더링(MtG)부터 시작해야 한다. 리차드 가필드가 위자드 오브 코스트를 통해 출시한 오프라인 트레이딩 카드게임(TCG)으로, 25주년이 지난 오늘까지 최장 최대 유저층을 보유하고 있다.

본체의 체력과 유닛의 소환 개념, 다양한 기능의 카드를 조합한 덱 구성, 자원과 속성 등 카드게임의 모든 기본 개념이 MtG에서 정립됐다. 유희왕을 포함해 현존하는 TCG와 CCG(수집형 카드게임) 대부분이 MtG에 뿌리를 두고 탄생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6년 인터하비 유통과 현지화를 통해 한국에도 MtG가 유입됐다. 입소문으로 재미가 알려지면서 인터하비 잡지가 꾸준히 팔리고 동네 문구점에서까지 부스터 팩을 판매하는 등 상승세를 그렸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소수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마니아들이 즐기는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게임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MtG의 강력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카드게임 왕좌는 공석이었다. 위자드 더 코스트가 PC게임 개발 능력은 썩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MtG온라인이나 플레인즈워커의 결투 시리즈 등 IP 활용 게임들 대부분이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온라인 카드게임계는 춘추전국시대로 흘렀다. 전쟁이 끝난 것은 2014년, 블리자드가 출시한 하스스톤에 의해서였다.

강력한 워크래프트 IP, 혁신적 UI디자인과 이펙트와 편의성, 직업별 개성,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게임성, 기존 카드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합리적 과금모델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결과는 온라인 카드게임 역사상 최고의 흥행이었다.

카드게임의 유저풀은 급격히 늘어났고, 대형 게임사들을 포함해 수많은 곳에서 하스스톤의 도전자들이 등장했다. 밸브의 아티팩트, 마인크래프트로 유명한 모장의 스크롤, CDPR의 궨트 시리즈,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 레전드 등.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적어도 하스스톤이 전성기를 유지하는 시간 동안은.

한국 게임계에서 카드게임 장르 초창기를 이끈 게임사는 제오닉스였다.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한 판타지마스터즈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른 온라인 TCG 도전이었고, 글로벌 기준으로도 괄목할 만한 유저풀과 매출을 이끌어냈다. 이후 출시한 소드걸스 역시 지금 수집형 카드게임 시장 기준에서 돌이켜보면 시대를 앞서간 요소를 다수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고질적 결함이었던 과금모델과 밸런스 인플레이션은 차츰 신규 및 라이트유저를 떠나게 만들었다. 힘겹게 서비스를 유지하던 중 하스스톤의 시장 석권은 결정타였다. 결국 판타지마스터즈2 오픈베타만 실시한 채 제오닉스는 폐업선언을 하게 된다.

이후 한국 카드게임은 게임성과 흥행에서 정체에 머물렀다. 마비노기 듀얼이나 소울카드마스터 시리즈, 마블 배틀라인과 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한계를 맞이하며 서비스 종료의 길을 겪었다.

공통 문제점으로 판타지마스터즈와 같이 BM의 허술함이 꼽힌다. 가장 중요한 소과금 유저의 카드수집 효율이 유명 해외게임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무너진 밸런스를 고치기 위해 더 강한 카드를 추가하면서 힘겨운 유저부터 떠나는 동시에 진입장벽이 함께 생겼다. 그중에서도 진입장벽의 절정은 카드강화 시스템이었다.

일본은 '카드의 나라' 등의 별칭이 붙을 정도로 카드게임 흥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가 중 하나다. 유희왕은 국가가 자랑하는 수준의 IP이며, 세계 최다 게임센터 인프라를 바탕으로 형성된 아케이드 TCG 시장도 특이한 점이다. 온라인 카드게임은 특유의 강점을 살려 '덕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유저를 공략해나갔다.

다만 유희왕도 MtG와 비슷한 약점을 안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기록적 오프라인 판매량을 달성했지만 온라인 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유희왕 듀얼링크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는 오프라인 카드게임의 온라인화 자체를 향한 회의론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상승세를 그린 사이게임즈의 섀도우버스는 큰 의미를 안겨줬다. 바하무트의 시행착오를 통해 빠른 게임템포와 빠른 업데이트로 재미를 끌어냈고, 하스스톤이 지배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특히 풍부한 카드지급으로 라이트유저를 끌어모은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갈수록 콤보덱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문제점이 대두되지만, 카드 수급의 배려로 장벽을 완화하면서 현역 주류게임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봤을 때, 가장 전망이 밝은 왕위계승자는 라이엇게임즈의 LoR이다.

하스스톤의 롱런은 플랫폼 제약이 적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PC와 모바일 환경을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었고, 스트리밍 및 e스포츠 흥행과 플레이 편의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원동력이 됐다. 섀도우버스가 하스스톤 왕좌 시대에 나름의 글로벌 파워를 구축한 것도 스팀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플랫폼 유연성, 적극적인 e스포츠 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이런 기준에서 LoR은 유리한 기본조건을 가진다. 엄청난 IP파워에 더불어 출시와 함께 모바일 서비스도 예정되어 있어 접근성도 만족한다.

체험에서 노출한 진입장벽의 불안감만 해소한다면 라이엇게임즈의 e스포츠 인프라와 폭발적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카드게임 왕좌 후보 중 1순위로 꼽히기 부족함이 없다.

매직: 마나스트라이크는 IP 인지도 기준에서 국내 경쟁력은 크지 않다. 대신 글로벌 시장 잠재력은 LoR에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 MtG IP에서 제대로 된 모바일 플랫폼이 없었다는 점은 서양 시장 흥행에 긍정 요소다. 물론 자세한 인게임 플레이는 지스타에서 공개되기 때문에, 그때 게임성과 재미를 입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의외의 게임이 떠오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카드게임 유저풀과 수익성이 증명된 만큼, LoR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새로운 시도를 갖춘 게임이 우후죽순 기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노하우와 인력을 갖춘 게임사는 많다. MtG의 틀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카드게임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기대할 만하다.

하스스톤이 게임 안팎의 문제로 전성기에서 내려왔지만, 하스스톤이 키운 거대한 온라인 카드게임 파이는 남았다. 2020년은 왕좌의 대격변이 일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갈곳을 잃어버린 카드게임 유저들은 어떤 보금자리를 선택하게 될까. 첫 분기점은 2020년 1분기, LoR 후속 테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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