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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이 숨겨라' 게임사들이 자율규제 확률표기를 피하는 방법
길용찬 기자 | 승인 2019.11.28 16:46

자율규제는 한국게임 확률형 아이템의 유일한 제어장치다.

현재 한국 게임의 자율규제 준수율은 매우 높다. 유명 게임사는 모두 규제에 따르는 수준이고, 2018년 기준 협회 회원사를 통틀어 98%에 달하는 준수율을 보인다. 게임 사행성이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데에 자율규제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규제 항목은 고정되어 있고, 게임 시스템은 계속 요동친다. 확률표기 강제를 피할 수 있는 틈새를 찾은 게임사들이 시스템을 바꾼다. 이런 움직임은 모바일 MMORPG에서 특히 자주 관측된다.

자율규제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무분별한 사행성을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실시됐다. 이후 필요와 건의에 의해 규제 강화를 거듭했다. 과하게 낮은 확률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으나, 유저가 아이템의 개별 확률 정보를 확실히 입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강화된 자율규제 강령은 크게 2개 분야에서 확률표기를 하도록 규정한다. 첫째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 흔히 뽑기나 박스로 대변되는 확률형 아이템이다. 플랫폼과 등급 구분이 없이 개별 등장 상품의 확률을 게임 내에 모두 표기해야 한다.

둘째는 '인챈트', 강화 시스템을 말한다. 장비를 강화할 때 실패나 파괴 확률이 존재할 경우, 개별 성공확률을 게임에서 공개한다. 기존 공개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던 강령은 자율규제 강화로 인해 인게임 구매 화면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유료 재화와 관련된 확률 시스템은 뽑기나 강화에 포함됐다. 자율규제 강령만으로 모든 확률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유저가 알 수 없는 확률이 생기고 있다. 그 방법은 합성과 제련이다. 

게임사들은 이제 합성에 확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조짐은 그 전부터 있어 왔지만 올해 들어 나온 신작들은 합성 시스템에 과금모델을 설계하는 경향을 빠르게 보인다. 장비, 다양한 액티브 아이템, 그리고 소환수나 펫에 이르기까지 RPG에서 수집하고 합성해야 하는 대상은 많다. 

그중 절대 다수는 등급도 존재한다. 합성에 따라 확률적으로 상위 등급 아이템을 얻기도 하며, 그중 무엇을 얻을지도 나뉜다. 사실상 합성 재료를 지불해 뽑는 확률형 아이템이지만, 자율규제 강령을 비켜나간 부분이기 때문에 확률표기가 강제되지 않는다.

제련 시스템도 변화할 기미가 보인다. 제련은 기존 아이템에 추가 옵션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게임에 존재한다. 그런데 게임 플레이에서 제련 재료를 획득하는 빈도를 제한하고, 제련 등급에 따라 성능 차별화를 크게 두는 경우가 생긴다. 사실상 한 단계를 더 거치는 확률형 아이템이지만, 합성과 마찬가지로 확률을 표기할 필요가 없다.

MMORPG 본연의 BM과 수집형RPG식 BM이 결합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유저가 짊어지는 과금 부담은 몇 배로 늘어날 위험이 있다. 신작 중 하나는 뽑기 효과를 마치 슬롯머신이 연상되도록 구성하기도 했다. 게임을 도박과 같은 사행성 이미지로 박히게 하고 싶지 않다면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다.

오늘날 자율규제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겪는다. 규제 강령에서 이러한 틈새를 틀어막는 것도 방법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발생할 역효과까지 존재한다.

해외 게임, 특히 중국 게임들이 규제에 따르는 빈도가 낮아 시장 교란 및 불공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자율규제를 성실하게 지킬수록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불만은 점차 심해졌다. 규제 시행 환경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에서 지원받는 자율규제 모니터링 인력과 예산은, 국내 게임시장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연내 게임법 전면 개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히자 환영과 기대가 이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진흥은 지원하고 사행성은 규제해야 하는 지금 흐름에서, 현재 게임법은 진흥과 규제 양쪽 모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급변한 플랫폼 환경을 법안이 따라가지 못했다. 현재 게임생태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편이 요구된다.

진흥안 외에 확률형 아이템 본연을 향한 고민도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규제 준수만으로 모든 사행성을 해결한다고 말하기엔 유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확률형 아이템의 변형 모델은 갈수록 심화됐다. 기술과 사업 규모는 날로 발전하지만, 게임성의 발전은 더디다.

유저가 떠나거나 법적인 강제규정이 따라오기 전에 게임의 발전 방향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마주쳐야 하는 일이다. 고민은 빠르게 시작할수록 좋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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