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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리와 구미호의 아버지, '지그' 심현보 원화가를 만나다
길용찬 기자 | 승인 2019.12.02 09:55

"인터뷰가 처음이라 많이 떨리는데... 잘 정리해주시겠죠?"

라그나 페스타 참가자 목록에서 심현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옆에 붙은 닉네임 'ZIG(지그)'를 발견하고 나서야, 일러스트 한 장이 떠올랐다. 

지난 여름 데스티니 차일드를 강타한 화제의 캐릭터 구미호의 주인이었다. 작년에 등장해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은 시트리까지, 심현보 원화가는 시프트업의 새로운 얼굴이라고 할 만했다. 특별한 그림교육 없이 혼자 익힌 실력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호기심이 생겼다. 

첫 인터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떨린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이야기와 생각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그렸다. 

심 원화가의 첫 오리지널 차일드 시트리

심 원화가가 처음 그림을 마주한 시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그리다가 재미를 느꼈고, 이후 취미생활로 자리잡은 것. 환경부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자, '그림이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지그'라는 닉네임은 고등학생 시절에 지었어요. 생각 없이 닉네임을 짓는 편인데, 디씨인사이드에서 처음 닉네임을 적을 때 바로 옆에 있던 광고에서 보인 단어가 지그였죠. 그렇게 지은 닉네임이 지금까지 왔어요. 나중에 검색해보니 기계공업 용어더라고요. 왜 그런 광고가 떴는지도 모르겠지만..."

피터패트 시트리

데스티니 차일드에 나타나는 화풍은 확고한 정체성을 띤다. 특히 여성 캐릭터 스타일은 일러스트만 봐도 게임을 알아차릴 정도.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부터 시작해 '혈라' 김형섭 원화가까지, 심현보 원화가 역시 일명 '김형태 사단'의 일원이라고 할 만큼 비슷한 결을 그린다.

그에 대해 심 원화가는, 학창시절부터 김형태 대표의 그림을 통해 배웠다는 점을 자신 있게 강조했다. 팬으로 시작한 작가활동이 한솥밥을 먹는 직업으로 발전한 셈이다. 개인 그림방송을 하던 중 김형섭 원화가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생긴 인연이 시작이었다.

"그림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남이 보고 있으면 집중이 잘 돼서였어요. 그러다 당시 프리랜서로 일하던 혈라님이 방송을 들어오시더니 그림에 대한 조언 등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조언을 통해 수정하니 그림이 점점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인연이 됐어요." 

심 원화가는 시프트업에 입사하게 된 계기에 대해 "혈라님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며 웃음을 지었다.

"혹시 제가 그림을 게을리 할까봐 '방송 켜놓고 그려라'고 하셨거든요. 회사에서도 제 방송을 켜놓고 감시를 하신 거죠. 그러다가 시프트업 분들의 눈에 띄어서 외주 일을 하게 됐어요. 공모전에서 캐릭터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외주 작업으로 그린 시트리가 반응이 좋아 관련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작년에 정식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산타 레다

자신이 그린 캐릭터 중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에 대해, 심 원화가는 고민 끝에 크리스마스 레다 스킨을 꼽았다. 작업 제한기간이 짧았고, 원본이 꾸엠 원화가의 그림이라 개성 있게 힘을 줘야겠다는 부담이 있었다는 것.  

애정 가는 캐릭터는 채용의 발판이 된 시트리에서 최근 구미호로 바뀌었다고. 구미호는 '지금 이상의 파격적인 일러스트가 나올 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하던 유저들에게 다시금 충격을 선사한 캐릭터다. "기자 입장에서도 놀라웠다"고 털어놓자 심 원화가는 웃었다. 

"섹시한 캐릭터가 추가로 안 나온다는 말이 분명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 원한 게 이런 겁니까' 같은 의미로 내놓게 됐고, 실제로 많이들 놀라 주셔서 의도가 성공한 셈이죠.

사실, 구미호 첫 시안은 그렇게 거대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납량특집에 맞춰 구미호와 처녀귀신을 그렸는데, 그중 구미호가 괜찮아 보여서 콘셉트를 완성해 나갔죠. 소재에 맞게 매력적인 포인트를 찾은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

구미호

궁금한 점이 생겼다. 데스티니 차일드에서 아티스트의 비중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기획 단계에서 우선순위는 캐릭터 일러스트일까, 혹은 성격과 스토리 등의 설정일까. 대답은 역시 캐릭터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다 싶으면 성탄 느낌에 맞는 캐릭터를 먼저 그린 다음 설정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죠. 성격을 먼저 생각하고 어울리게 만드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다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맞춰서 그리게 되는 것 같네요."

게임에 쓰일 일러스트 하나를 그릴 때 평균 작업 기간은 2~3주, 구미호는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 걸린 경우다. 가장 집중해서 그린다고 밝힌 인체 부위는 흉부와 둔부, 특히 그리기 어려운 것이 이유라고 한다. 구미호가 전형적인 흉부 집중구도인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혈라님의 대표 캐릭터인 바리 때문이었죠. 바리가 둔부 강조 구도라서 일부러 반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정면승부라는 느낌으로요, 하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혈라님도 주변에 칭찬 비슷한 말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전해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심 원화가는 최근 독특한 경험을 했다. 데스티니 차일드 3주년 유저 행사 라그나 페스타 현장에 출연해 라이브 드로잉 쇼를 진행한 것.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원화가의 등장으로 현장 반응도 뜨거웠고, 실시간으로 작업을 지켜보는 지망생들의 눈도 빛났다.

"사실은, 드로잉 쇼 출연 때문에 몇개월 전부터 속이 쓰릴 정도로 걱정했어요. 그런 자리에 나가는 일이 처음이었거든요. 현장 준비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본 진행자분이 계속 말을 걸어주셔서 분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유저분들의 호응 덕택에 긴장을 풀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림 그리는 분들이 저를 따라서 그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시트리와 구미호를 거치면서, 심 원화가의 인지도는 부쩍 늘었다. '혈라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널리 퍼지기도 했고, 반대급부로 아류 아니냐는 지적이 따라오기도 했다. 본인은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대답은 솔직하고 시원했다. 제자라는 말이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혼자 그렸다면 불가능했을 일을 가능하게 해준 은인이라는 것. 두 원화가는 지금 친형제와 같은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가 많이 그리는 스타일은 시트리처럼 귀여운 느낌 캐릭터였는데요. 이제 반대로 구미호나 젊은 쿠바바처럼 성숙한 스타일을 더 그리고 싶어요. 그 방향을 원하는 유저분들도 많고요.

PC로 그림을 그리면서 가진 첫 번째 꿈이 '김형태 대표님이 날 알아주셨으면 좋겠다'였거든요. 너무 빨리 이뤄서 저도 당황했어요. 그 다음 꿈은 아류라는 말을 벗어나서 저만의 스타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저 역시 아직도 배우는 단계고, 계속 그리다 보면 고유의 취향과 느낌이 앞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드로잉쇼 현장 그림

유명 원화가들을 지켜보며 꿈을 키우던 사람이 이제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게임 일러스트로 직업을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심 원화가는 '절박함'을 꼽았다. 꼭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

"면접에 제출하는 포트폴리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목표 회사가 원하는 그림을 가져가야 회사에서도 주의깊게 보는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그려도 화풍이 맞지 않으면 걸러내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 점을 연구하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제 그림을 유저분들이 그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어요. 지금은 반응 하나하나가 모두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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