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한 관점 변화는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파이널판타지14 신규 확장팩인 v5.0 '칠흑의 반역자'는 전세계 MMORPG의 역사에 한 획을 새겼다. 메타스코어 91과 오픈크리틱 92로 평단과 유저 양쪽의 찬사를 받았고, 최고의 스토리로 기억될 것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글로벌 출시 5개월 뒤 한국 유저들의 기다림도 끝났다. 12월 3일 칠흑의 반역자가 국내 출시되면서 파판14는 다시 날개를 달았다. PC방 점유율 20위권에 재진입했고, 복귀 및 신규 유저들이 몰려들며 게임 속 필드는 성황을 이뤘다. MMORPG 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칠흑의 반역자는 유저가 어둠의 전사가 되어 빛을 물리치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파판14의 기존 유저에게는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유저는 항상 빛의 전사였고, 빛을 위해 싸웠다. 구도가 완전히 역전된 세계는 모든 것이 이해될 만큼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갖췄다.

어둠과 빛의 대립은 수많은 콘텐츠에서 존재했다. 공존할 수 없고 정확하게 반대 개념이기 때문에 가장 편한 이분법이기도 했다. 빛은 언제나 생명과 연계되는 상징이었고, 어둠은 공포와 미지의 개념이었다. 다만 빛만 존재한다면 생태계는 무너지게 된다. 이런 관계로 인해 시나리오 작가들의 입장에서 즐겨 사용하는 지속적 갈등 장치였다.

칠흑의 반역자는 역발상과 함께,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어둠에 관한 이야기를 소화해냈다. 유저가 도착한 제1세계 노르브란트는 빛의 범람으로 지역 대부분이 소멸한 세계다. 괴물이 뿜어내는 빛으로 인해 밤과 어둠이 사라졌고, 이런 설정은 레이드 등의 콘텐츠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파판14에서 유저가 '빛의 전사'로 명명되던 것을 생각하면 게임 본연의 개념을 정반대로 뒤집는 수준이다. 요시다 나오키 P/D는 "빛의 전사들이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도 이제 지겹지 않을까 싶었다"고 답하면서 "어둠의 전사가 어둠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로 흥분을 주려 노력했다"고 기획 배경을 밝혔다.

그 시도는 성공했다. 메인 스토리 컷신만 11시간에 달하는 압도적인 볼륨으로 소화해냈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긴 시네마틱에 연출과 내러티브를 통해 최고의 정성을 들였다. 결과는 몰입감 극대화로 나타났다.

파이널판타지14 요시다 나오키 P/D
파이널판타지14 요시다 나오키 P/D

이전 확장팩 홍련의 해방자는 NPC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유저는 겉돌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중요한 순간에는 맥락 없이 유저의 능력으로 해결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개연성 문제도 제기된 바 있다.

칠흑의 반역자는 창천의 이슈가르드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스토리를 담당하면서 유저를 중심에 세웠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주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호평 요인이었다. 단순 스토리 감상에 머무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게임으로의 진화를 거듭했다.

현지화 과정에서 액토즈소프트의 노력도 한 몫을 했다. 한국어 더빙 분량만 5시간일 정도로 방대한 대사를 철저한 작업으로 소화했고, 성우들의 열연도 잘 녹아들었다. 민감한 영역인 번역 역시 훌륭한 퀄리티로 구현했다. 고유명사 표기에서 스퀘어에닉스의 지침을 따라가면서도 한국어에 맞는 표현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글로벌 기준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칠흑의 반역자까지는 6년이 걸렸다.

MMORPG에서 6년은 스토리 면에서 신선한 인상을 남기기 쉽지 않은 수명이다. v5.0이라는 숫자가 말하듯, 파판14는 큰 틀에서 다섯 번 바뀌었다. 그 어려운 미션을 완벽하게 충족했다는 것만으로 칠흑의 반역자가 이룬 사업적,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다.

빛과 어둠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발상은 당연한 것을 조금 건드리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총력을 기울인 내러티브를 추가할 경우 온라인게임의 생명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시간이 지나도 유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은 모든 게임이 받는 질문이다. 칠흑의 반역자는 다른 게임이 참조할 만한 핵심 가이드라인을 남겼다. 그것은 비단 파판14뿐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 전체에 남는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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