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1년은 아니었다. 게임사, 업계인, 유저에게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다.

2019년 시작과 함께 넥슨 매각 이슈가 국내를 뒤흔들었다. 매각은 결렬됐지만 프로젝트 다수 취소와 조직 개편은 피할 수 없었다. 중국 판호는 여전히 한국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밖에 해외시장 싸움에서도 고전을 겪어야 했다. 게임사와 유저 사이 갈등이 격화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한국게임을 향한 신뢰 회복도 숙제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은 게임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주도로 출범한 민관협의체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데, 과학적 연구와 실태조사를 병행하는 만큼 긴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게임산업 안팎에서 악재가 겹치는 지금, 역으로 한국게임이 풀어야 할 문제는 명확해지고 있다. 첫째는 문화적 과제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둘러싸고 정신의학계를 중심으로 추진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중, 게임계가 내세운 슬로건은 '게임은 문화다'였다. 2013년경 중독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대두된 문장이다. 실제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접목한 종합문화예술의 형태를 띤다. 더욱 파고들어갈 경우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

그러나, 한국게임은 이에 파생되는 두 가지 질문을 받아내야 했다. '어떤 문화인가', '문화적으로 성숙됐는가'. 문화의 수많은 바리에이션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문화의 관점에서 온전히 자리잡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문화를 주장할 생각이라면 문화적인 고민이 함께 따라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임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발전상은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게임성, 이야기, 표현력 등. 한국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게임들에서 이러한 발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운영 역시 게임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유저들이 문화란 단어에 고개를 젓는 이유도 그 지점에서 나온다.

기술과 표현 면에서 정체기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질문, 산업 이외의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2020년이 되어야 한다. 매출 최적화형 게임들을 계속 생산해도 분명 산업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둘러싼 공격에 알맞은 대처가 될 수는 없다.

대형 게임사들이 직접 말했듯, 게임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로벌 시장을 향한 과제다. 한국게임 해외 진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임산업 한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의 과반을 차지해온 역사가 증명하듯, 해외는 게임계에서 중요한 젖줄이었다.

그런데 글로벌의 의미는 달라졌다. 날개를 달기 위한 선택지가 아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이다.

게임시장 내수 규모가 예년에 비해 정체기에 들었고, 개발비와 운영 리스크가 커진 것이 주요 이유다. 거기에 젊은 유저들은 글로벌 플랫폼 활용과 눈높이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중년층 남성을 겨냥한 RPG 장르를 제외하면,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게임성으로 경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배틀그라운드가 포문을 연 글로벌 시장은 대형 게임사들에게도 매력적인 무대다. 펄어비스가 지스타 2019에서 발표한 신작 4종을 모두 콘솔 및 PC 플랫폼으로 개발하는 것, 스마일게이트가 크로스파이어 후속작을 콘솔 기종으로 깜짝 발표한 것도 비슷한 결을 그린다. 그밖에 기존 MMORPG들이 글로벌 대상 플랫폼으로 이식하는 것 역시 당연한 시대가 됐다.

콘솔 플랫폼 국내 개발작도 조금씩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크래프톤의 미스트오버는 좋지 않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판매량에서 순위권에 들었다. 인디게임 래트로폴리스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12월에는 네오위즈의 디제이맥스 리스펙트가 PS4에 이어 스팀에서 좋은 판매 추이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유저들의 스팀 및 콘솔 게이밍 경험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올라왔지만, 가장 주목할 점은 서구권에서도 시장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중요한 것은 잠재력을 결과물로 만드는 일이다. 

셋째는 가장 다급하고 가장 어렵다. 확률형 아이템의 해결 과제다.

확률형 아이템은 적절한 재미 요소나 매출 보완의 의미를 넘어섰다. 대다수 한국게임을 움직이는 코어 동력이 됐다. 게임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동시에 사행성으로 도마에 오르는 소재이기도 하다.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더 강한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자율규제에 의존하던 확률공개 강령은 내년부터 강제화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자상거래 개정안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1월 16일까지 행정예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단순한 확률공개만으로 사행 심리를 자극하는 구조를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미 커졌다. 확률공개마저도 회피 수단이 발전하고 있다. 패키지 속 상자, 제련, 합성과 같은 방법으로 규제안을 피해나가는 것. 특히 모바일 MMORPG에서 흔히 발생하기 시작했고, 유저 사이에서는 금융권 파생상품을 연상시킨다는 감상까지 흘러나온다.

확률형 아이템에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2020년에 들어설 21대 국회가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도 큰 변수다. 문체위 및 복지위 의원들의 성향과 정계 개편에 따라 게임 진흥과 규제의 저울추는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또한 문화적 고민과도 연결된다. 게임이용장애 추진 움직임은 미디어와 문화산업이라는 관점에서 기본적 제약이 생긴다. 그러나 사행성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단지 문화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비켜가기 어렵다. 도박과 카지노 역시 문화산업의 한 형태다.

2019년은 게임계의 과제가 선명해지는 해였다. 2020년은 해결 방안을 찾는 해여야 한다. 문제가 출제됐으면 풀이와 답안을 써낼 차례다. 그리고 이 문제에 시간제한은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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