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많은 게임을 만났다. 동시에 수많은 게임과 작별하곤 했다.

생애 첫 작별은 샤이닝로어에서 겪었다. 어린 시절 큰 즐거움을 가져다줬고, 당연히 긴 시간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너무 빠른 서비스 종료를 맞이했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걸까.

온라인게임이 서비스 종료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접속한 유저들은 보통 가장 큰 도시 광장에 모인다. 게임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던 유저라도 그 순간은 진심을 꺼낼 수밖에 없다. 고마웠다고, 재미있었다고. 절절한 채팅들이 마지막을 수놓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 세계를 영영 다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듀랑고가 유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2019년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다.

야생의땅: 듀랑고는 2018년 1월 서비스를 시작했고, 2주년을 넘기지 못한 채 올해 12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돈이 되는 게임이 아니었다. 서투른 점도 많았다. 플레이는 반복된 생활 콘텐츠 위주로 구성됐다. 초기 서버 문제는 모바일 플랫폼에서 치명적이었다. 매달 수백 종 신작이 비용 치킨게임을 벌이고, 간편한 플레이를 내세우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무모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을 비롯한 게임인들은 듀랑고와의 작별을 아쉬워 했다.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게임이었다. 국내에서 선뜻 건드리지 못한 게임성에 도전했다. 인공지능을 통해 섬 지형을 무작위 생성했고, 유저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이루면서 공동체를 이뤄 생활해나갔다. 유저 사이 상호작용 및 환경과의 공존에서 빛나는 아이디어를 보이기도 했다.

듀랑고가 가장 빛난 것은 이별의 방식이었다. 

서비스 종료 전, 오프라인 업데이트로 개인섬 기록과 창작섬을 추가했다. 창작섬은 모든 건물과 아이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공간이고, 모바일 앱이 지워지지 않는 이상 계속 실행할 수 있었다. 마치 고전게임에서 되돌리고 싶은 포인트에 세이브 파일을 저장해놓듯, 내 흔적을 다시 꺼내보는 수단이 마련된 것이다.

유저에게는 감사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했다. 최선을 다 했고, 진정성을 갖췄다. 이은석 총괄PD와 양승명 PD는 직접 글과 영상을 통해 서비스 종료 소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남은 업데이트 계획을 안내했다. 유저들의 사연을 게임 내 라디오 형식으로 송출해 추억을 공유했고, SNS를 통해서도 콘텐츠를 마무리짓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데이터로 끝나면 제품이지만, 감정을 보존할 수 있다면 작품이다.

게임은 현재의 유희인 동시에 추억의 매개체다. 지금 30대 게이머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PC방에 드나들던 어린 시기를 공유한다. 지금 10대는 훗날 가정을 꾸리고 나서, 친구들과 투닥거리며 리그오브레전드나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던 시절을 회상하지 않을까.

싱글게임은 아무리 잊혀진 게임이라도 한번 구매한 유저는 계속 즐길 수 있다. 온라인게임도 PC 기반이라면 플레이 정보를 간직할 방법은 많다. 먼훗날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서비스를 종료하더라도, 게임 속에 쌓인 수많은 기록은 전투정보실에 오랜 기간 남을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 싸이월드가 풋풋한 기억이나 부끄러운 과거로 지나가고, 어린 시절 한 켠에 걸린 게임들이 사라지는 것도 완전한 손실이 아니다. 유지비가 들지 않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남는 콘텐츠가 바로 추억이다.

그리운 시절의 게임을 다시 꺼낸다고 해서 그 시절이 돌아오진 않는다. 하지만 과거를 되새기는 일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가끔씩 기억 속 액자에 걸린 사진을 꺼내보는 일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끝나버린 모바일게임은 그동안 세이브가 없었다. 듀랑고는 처음으로 저장된 공간을 건넸다.

"듀랑고를 믿고, 다시 만날 그때를 기다려줘요"

듀랑고 마지막 무전에서 흘러나온 말 중 하나다. 시작이 언제나 끝과 연결되듯, 끝은 때때로 시작으로 이어진다. 

듀랑고로 쌓은 감각과 교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유저들이 바라는 것처럼 PC 플랫폼 기반으로 새로운 도전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게임이 사라져도 게임에서 추구하던 가치가 빛났다면, 그것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곤 한다.

올해 마지막 날은 듀랑고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싶었다. 아쉬웠지만 고마웠다, 유저들의 추억에 작은 세이브 파일을 하나 남겨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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