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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잃어버린 신뢰의 가치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2.03 15:10

반응이 뜨겁다. 다만 뜨거움의 방향은 우리가 바라던 쪽이 아니었다.

블리자드가 1월 29일 출시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는 명작의 재탄생이라는 시점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출시 후, 반작용으로 강한 혹평이 돌아왔다. 메타크리틱에 등록되는 유저 평점은 3일 기준 10점 만점에 0.5점까지 떨어졌다. 사이트가 생긴 이래 역대 최저 점수다.

워크래프트3는 기본 뼈대인 스토리와 게임성이 이미 뛰어나다. 리포지드의 성공 여부는 결국 비주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구현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리마스터가 아닌 '리포지드'를 타이틀로 붙인 만큼, 명작의 감성을 현재 감각에 맞게 재구현하는 일도 중요했다.

며칠간 실제 플레이를 거치면서 드러난 점은, 리포지드가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어긋나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HD 리마스터링을 하는 것보다 좋지 않은 경험을 마주하게 됐다.

형체는 잘 잡았고, 사운드는 즐겁다

장점도 짚어줄 필요는 있다. 캐릭터와 오브젝트의 리모델링은 준수하게 이루어졌다. 

화면을 확대할수록 눈에 잘 들어오는 부분이다. 고해상도에 따른 리터칭이 위화감 없이 구현됐고, 4종족의 특성에 따른 고유의 질감을 세세하게 살린 점은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이벤트 대화에서도 모델링으로 인해 원작보다 자연스러운 구도가 완성된다. 

한국어 더빙은 바랄 나위 없이 훌륭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성우진을 기반으로 모든 등장인물에 풀 더빙을 실시했고, 한두 마디 남기는 인물까지도 섬세한 캐스팅과 대사 연기가 이루어졌다. 

유닛들의 더빙 역시 깔끔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효과음과 목소리가 겹치지 않고 어우러진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특히 휴먼과 오크 종족 일꾼 더빙은 원작을 초월했다고 말할 정도로 훌륭하게 캐릭터성을 살렸다. 

업그레이드를 묻어버린 수많은 다운그레이드

그러나 장점은 여기까지다. 장점에 속하는 모델링마저 게임 속에서 제대로 된 매력을 뽐내지 못한다. 다른 비주얼 요소와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배경과 타일이 색감 면에서 미려하지 못하다. 분명 퀄리티는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모델링과 다르게 이 부분들은 인게임 아트워크를 결정짓는 부분이다. 품질이 아니라 감각에 좌우된다. 그 미적인 감성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합쳐지지 않는다.

합쳐지지 않는 중심에는 스킬 이펙트를 빼놓을 수 없다. 리포지드의 이펙트를 표현할 때 가장 가까운 단어는 '쨍하다'는 것. 원작 대규모 전투에서도 부드럽게 교환되던 스킬 효과가 지나치게 선명하기만 한 비주얼로 돌아왔다.  

결국, 리포지드의 전투 애니메이션은 부조화로 요약된다. 좋은 퀄리티의 유닛이라도 동작과 스킬 연결이 부자연스러우면 어색한 액션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자연스러운 배경과 눈을 아프게 하는 이펙트가 연결되면서 불만으로 완성되는 결과를 낳았다.

마감새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텍스트가 깨지는 현상과 사소한 버그는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며, 플레이에 지장을 받는 치명적인 버그까지 연달아 제보되고 있다. 게임의 퀄리티에 비해 눈에 띄게 불편한 최적화 문제도 드러난다. 로딩 속도는 그대로며 프레임 드랍 역시 감지된다.

기대가 크기도 했지만, 기대를 부풀린 책임이 크다

단순하게 '리마스터가 잘 됐느냐'로 평가 기준을 잡는다면, 리포지드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지만 적어도 '최악'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유저 평가가 나타난 큰 이유는 그동안 공개하고 발표해온 내용과 심각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리포지드의 악평은 블리자드 및 워크래프트 팬들이 겪어온 서사와 연결된다. 개발 정보가 처음 밝혀진 것은 2018년 11월 블리즈컨이다. 이후 오랜 기간 새로운 정보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2019년 내 출시가 목표였지만, 침묵 끝에 완성도를 위해 출시 연기까지 겪었다. 

오랜 기간 신뢰 하나로 기다려오고 구매한 결과이기 때문에 반작용은 더욱 컸다. 컷신의 생생한 재탄생, 생동감 있게 개선된 UI 등 기존 발표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유저 입장에서는 속았다고 말해도 대답할 것이 없는 셈이다.

출시 후 이어지는 혹평 속에서 블리자드의 뚜렷한 대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불만을 가중시킨다. 어떤 게임이든 출시 직후 피드백과 사후관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지금 시기에서, 지금과 같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 정도의 게임사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유저 입장에서는 실낱같이 남겨온 신뢰마저 무너질 수 있는 지점이다.

최초 공개 당시 발표한 리포지드 화면

'리포지드'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워크래프트3는 블리자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를 담당한다. 

글로벌 기준에서 가장 큰 팬덤을 쌓아올린 RTS이며, WoW 역시 워크래프트3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지금의 블리자드를 만든 최고의 공신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임이다.

블리자드의 오랜 팬들에게, 워크래프트3의 재탄생은 한 가지 고전 게임을 다시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 이 게임을 그대로 놔둬선 안되는 이유다. 기존 IP들에서 한 차례씩 실망감을 안겨준 사례는 최근 잦았다. 그러나 워크래프트에서 오는 타격은 단순히 게임 하나가 아니다.

이미 틀어진 결과물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최소한 불만을 접수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요구된다. 18년 전 게임의 리마스터에 4만원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한 유저들의 신뢰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본래 '리포지드'는 그런 의미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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