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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M 100일간의 체험기 下: 과시와 권력의 사회심리학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3.05 17:03

직접 뛰어들어 겪은 세계는 더욱 거칠고 빠르게 변한 사회였다.

유저 1인당 월평균 28만원 과금, 아이지에이웍스에서 공개한 리니지2M의 추정 데이터다. 출시 후 지금까지로 따지면 100만원 과금한 유저가 평균치에서 약간 웃돈다는 것이다. 무과금과 작업장 계정도 상당수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헤비과금 유저의 지출액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계산이다.

한달에 10만원 꼴로 지출하면서 "모바일게임에 너무 과도한 비용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마저도 평균에서 한참을 밑도는 금액이었다. 몇몇 친해진 유저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백 단위가 아니면 그냥 안 지르시는 게 좋아요"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리니지2M 유저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니지 IP에서 강해진다는 것은 어떤 가치와 만족감을 얻게 되는 일일까. 그것이 궁금해 100일 동안 매일 접속하고 사냥하며 유저들간 대화를 지켜봤다. 세계의 모든 부분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흐름은 감지할 수 있었다.

리니지의 세계는 현실에 비하면 그나마 적은 돈으로 움직인다. 최상위 계급에 올랐을 때 얻는 권력은 더욱 크다. 과시욕과 권력욕을 가진 유저가 뛰어들기 최적이다.

예컨대 1억원은 큰 돈이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한 번에 쓴다고 해서 주목을 받을 정도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리니지2M에서 1억원을 쓸 경우 극소수 도시 서버를 제외하면 한 손에 꼽히는 '네임드'가 될 수 있다. 그 월드의 유명인사가 된다. 게임이에 현실에서 불가능한 종류의 권력도 발휘할 수 있다.

월드 채팅에 붉은색이나 보라색 알림이 뜨면 유저들은 술렁거렸다. 영웅 아이템을 얻거나 전설 제작 상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제작 상자를 만드는 것도 확률이며, 상자에서 전설이 나오는 것도 확률이다. 실시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현장을 모두가 지켜보게 된다. 그 알림에 자주 뜨는 이름이 바로 그 월드의 최상위 과금 유저다.

게임 캐릭터 과시 욕구는 명품 자동차를 통한 욕구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스펙이 눈에 바로 드러나며, 차의 가치는 곧 지위를 상징한다는 인식이다. 성능과 외형에서 눈에 바로 드러나는 과시는 곧 허영이나 과소비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한국의 대형차 선호도는 세계 최상위다. 2018년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에 오른 것도 명품 자동차 소유욕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밖에도 중국 등 아시아권은 일본을 제외하면 대형차 선호도가 높은 편인데, 리니지 IP가 통하는 지역과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매번 신경 쓰게 되는 10분 단위의 랭킹 변화

리니지는 경쟁 완화가 아니라, 경쟁을 최대한 밀어붙이는 문법을 활용한다. 개발진이 직접 언급한 이야기에서도 기조는 명백하다. "장비 성장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대신 획득한 아이템의 가치는 최대한 보존". 막대한 비용을 쓰거나 운이 매우 좋아서 최고 아이템을 얻는다면, 그 가치는 신용도 높은 화폐처럼 장기적으로 유지된다.

"필드쟁은 리니지의 꽃"이라고 한 말처럼, PK와 필드쟁 역시 적극 권장한다. 상위권에게 카오틱 패널티는 큰 문제가 아니다. PvP 랭킹이 높을수록 얻는 버프와 혜택이 더 크다. 그래서 PK를 즐기는 유저들은 새벽 시간에 자동사냥 캐릭터를 학살하며 끊임없이 돌아다니곤 한다.

1월경, 리니지2M에 조롱 시스템이 추가됐다. PvP에서 해치운 상대에게 조롱 메시지를 써서 보낼 수 있는 것. 이후 업데이트에서 그 상대의 친구와 혈맹원에게까지 메시지가 출력되도록 '개선'됐다. 강한 이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높이고, 약해서 패배하면 최대한의 굴욕을 맛보도록 유도한 방식이다.

모든 메시지는 '억울하면 강해져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연결된다. 약한 유저는 3개 선택지를 맞이한다. 게임을 포기하거나, 조롱을 견뎌내며 사냥을 거듭해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거나, 과금으로 급격히 강해진 다음 자신이 권력을 즐기거나. 헤비과금의 상대적 경쟁이 시작되는 도화선이다.

리니지는 전투에 컨트롤이 필요 없는 구조다. 게임 유저의 성장 4요소를 과금-컨트롤-시간-운으로 정리할 때, 리니지M과 2M은 절대 비중의 과금과 어느 정도의 운으로 결정된다. 시간은 자동사냥 기능이 훌륭해 모두가 24시간 돌리므로 변별력이 없다. 

싸움이 벌어지면 모든 버프를 둘러놓은 다음 물약과 함께 강한 스킬 한두 개를 연타하면 된다. 다대다 쟁으로 번질 경우 팀워크와 전략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필드쟁이 그렇게 정돈된 상태에서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캐릭터의 스펙을 비교해 우세한 쪽이 승리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분유료화 RPG가 돈을 쓴 만큼 강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리니지가 '특별'한 이유는, 컨트롤의 배제와 함께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을 선명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상하관계는 혈맹과 혈맹 사이에서, 그리고 유저 개인 사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에 따른 결과물도 극적이다. 강한 혈맹과 연합은 지역과 콘텐츠를 통제할 수 있고, 기분에 따라 다른 유저를 죽여도 저지받지 않는다. 개인은 랭킹에 따라 등급별로 혜택이 나뉜다. 약육강식의 법칙을 게임 사회에서 철저하게 구현한 형태다.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권력에 대해 "자기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에서 권력이 발생하는 요인은 자원의 제한이며, 결과물은 인간행동의 변화다. 다시 말해,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요소를 많이 독점한다면 상대를 복속시키는 권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리니지는 모든 게임 중에서도 자원 통제에 최적화된 구조다. 상위 단계로 나아갈수록 필드보스와 콘텐츠를 한쪽에서 독점하기 편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강한 유저라면, 강한 혈맹이라면 과시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리니지2M의 발전한 기술력도 필드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로딩 없는 오픈월드와 캐릭터 충돌처리로 인해 약한 피지배층이 전투에서 발휘할 만한 '꼼수'도 상당 부분 사라져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스펙과 조직력의 싸움이었다.

리니지2M을 100일 내내 플레이하면서, 그 세계에 정이 들기도 했다. 분명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필드쟁이 절정에 달할 때 서로 격려하면서 돕는 혈맹원들이 있었고, 힘들어 하는 초보를 위해 선뜻 다이아를 내주는 유저도 있었다. 처음에 어려웠던 기란 영지 후반부를 함께 버티기 위해 필드에서 즉석 결성한 파티원들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리니지의 사회상은 복합적이었다. 개인의 인생이나 사회 시스템의 수많은 점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선과 악의 구분을 떠난 문제였다. 단지 다를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가치관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유저의 한 사람에게, 리니지2M은 그 평행선이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종류의 게임이 있다. 게임을 즐기는 만족감도 그만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게임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명언처럼, '게임'을 하는 개념과 법칙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리니지는 무섭도록 치밀하게 만들어진 세계다. 어떤 점에서 빠져드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떠나게 됐는지도 말하고 싶었다. 게임에서 느끼는 재미가 조금은 더 행복한 방향이었으면 한다. 성공과 명예를 향한 무한경쟁은 현실에서도 충분하므로.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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