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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위즈, 한국의 '디볼버'가 될 수 있을까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4.03 15:28

아마도 공감을 받기 어려울 제목이다. 디볼버를 아는 사람은 "그럴 리가 있느냐"며 웃거나 화를 낼지도 모르고, 많은 유저들은 "디볼버가 뭔데?"부터 질문할 수 있다.

디볼버 디지털(Devolver Digital)은 미국에서 2009년 설립한 퍼블리싱 전문 기업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통과 배급의 대상이 인디게임이라는 것. 게임 바깥 분야에 어려움을 겪는 1인 혹은 소규모 개발사의 게임을 발굴하고, 적극적인 배급과 홍보로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켰다.

디볼버의 퍼블리싱 영역은 다채롭다. 대표작은 핫라인 마이애미, 엔터더건전, 시리어스 샘, 다운웰, 레인즈 등. 재미에 충실하면서 독창적인 개성을 뽐내는 스테디셀러들이다. 단순히 즐기는 게임뿐 아니라, 그리스나 탈로스 법칙처럼 미학이나 철학적 내용을 훌륭하게 표현한 게임도 함께 사랑받고 있다.

디볼버가 게임 외에도 일반 유저들에게 잘 알려진 계기는 게임쇼 컨퍼런스였다. E3 2017부터 프레스 컨퍼런스를 진행했는데, 매번 강렬한 인상으로 화제에 올랐다. 눈에 띄는 대작을 대세우지 않아도 청소년 관람불가의 각종 B급 정서를 녹여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

단순히 자극적인 퍼포먼스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게임산업의 실태와 게임쇼의 관습을 신랄하게 풍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많은 패러디 속에서도 발표작들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배급 게임들에서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는 인디게임들과의 선순환 구조로 연결된다.

국내 중견 혹은 대형 게임사들도 인디게임의 가능성과 아이디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좋은 게임을 선별해 지원하거나 영입하는 작업도 이어진다. 그중 독보적인 곳은 네오위즈다. 스팀과 콘솔 플랫폼에 비교적 일찍 눈을 돌린 편이고, 이후 인디게임을 발굴해 퍼블리싱에 나서는 작업이 이어졌다.

올해 결실이 나오기 시작한다. 2월 스팀 얼리액세스 버전으로 출시한 사우스포게임즈의 스컬(Skul)은 1개월 만에 10만장 판매를 돌파하는 쾌거를 얻었다. 스팀 글로벌에서 트렌디 장르인 로그라이트에 머리를 바꿔가며 시원하게 펼치는 액션으로 정체성을 확보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신작 메탈유닛 역시 보완할 부분이 있을지언정 가능성은 엿보였다. 장르도 다양해지고 있다. 4월 9일 출시하는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는 과거 아미앤스트레테지로 알려졌던 장기 개발작이다.

십자군 시대 유럽과 중동을 배경으로 한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마치 고전 장기의 말을 연상하게 하는 사각형 타일에 개성 넘치는 외형으로 캐릭터를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수년 전 게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네오위즈가 개발팀을 사내 영입했고, 게임성을 최대한 보강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플레비 퀘스트

해외 인디게임의 국내 마케팅 사업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캐나다 게임사 셀러 도어 게임즈와 계약해 풀메탈퓨리즈 한국 마케팅을 실시했다. 인지도가 낮지만 높은 게임성을 갖춘 해외 게임들을, 네오위즈의 국내 인프라를 기반으로 알려나가기 위한 작업이다.

네오위즈의 방침은 게임 개발 방향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순수 퍼블리셔로서 개발 이외 부분만 지원하고, 게임 속 결정은 모두 개발사에게 맡기는 것.

이는 네오위즈 산하에서 개발 중인 PC기반 게임들에도 해당된다.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로 디맥 IP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켜 서비스 중인 로키스튜디오도 독립된 개발 권한과 환경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다. 플레비 퀘스트 역시 긴 시간 개발하는 동안, 네오위즈는 완성에 전념할 환경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디볼버라는 표현이 아직 섣부른 것은 맞다. 하지만 잠재력을 전망하는 동시에, 기대하게 된다.

네오위즈 퍼블리싱 프랜차이즈는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스팀 글로벌 배급 노하우는 충분히 쌓였고, 스컬의 성공 사례를 통해 상생의 길을 확장할 여지가 생겼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볼륨이 향후 더 커진다면, 퍼블리싱 게임 속에서 콜라보레이션과 패러디를 진행할 길도 열린다. 브랜드를 구축하고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한국 인디게임은 아직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큰 돈이 되지 않는 시장이다. 서구권에 비해 개발 토양은 척박하고 유저 수요도 적다. 하지만 누군가는 식은 땅에 물을 줘야 한다. 네오위즈는 그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부분유료화와 확률형 게임을 내놓아야 매출을 담보한다고 여기는 분위기에서, 완결성을 갖춘 인디게임 퍼블리싱에 전폭적 지원을 실시하는 행보는 박수 받을 만하다. 한국 인디게임 시장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시도가 길게 이어지고, 게임계 전체가 문화적 발전을 이룰 수 있길 소망해본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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