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기 힘들어졌다. 이런 비판이 흘러나온 것은 오래 전부터다. 

"온라인게임 위주 환경에서 완성도 갖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에서 온라인 환경에 맞춘 훌륭한 이야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전성기를 이끈 힘은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이었다, 최근 파이널판타지14: 칠흑의 반역자는 역대 최고의 MMORPG 스토리란 찬사로 상승세를 이었다. 인게임에 스토리를 담기 어려운 FPS 장르에서도, 오버워치는 흥미로운 배경 스토리를 캐릭터와 영상에 담으면서 각종 변주를 만들어냈다.

* 이야기가 온라인게임의 핵심이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 패키지게임 시절 주목할 만한 서사를 지닌 게임은 악튜러스 정도였다. 지금 기준에서도 파격적인 전개와 주제의식을 보여줬지만, 거대한 그림에 디테일을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창세기전 시리즈가 스토리로 유명했지만 흥행의 시작이 된 2편과 외전이 표절 시비에 휘말려 언급이 어렵다.

오히려, 한국게임 서사의 전성기 역시 PC온라인 시기였다. 2000년대 후반 RPG를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향한 도전은 활발하게 이어졌다. 대표적 결과물은 마비노기 IP였다. 마비노기는 메인스트림 시스템으로 거대한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초창기 스토리는 가치관의 대립 구도가 훌륭했고, 유저에게 재미와 함께 생각할 소재를 함께 남겼다.

지금 시점에서 마비노기 영웅전을 비판하는 유저도, 시즌1 시기 스토리텔링이 걸작 반열에 오를 만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게임의 필수 진행만으로 주요 인물의 감정선과 개연성을 따라갈 수 있었고, 완벽한 기승전결 구성에 극적인 반전 연출이 곁들여졌다.

마지막으로 훌륭한 서사와 연출을 함께 보여준 게임은 블레이드앤소울이 꼽힌다. 판타지무협 세계관에서 무협 기반 전개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동시에, 캐릭터 매력과 흥미로운 몰입감을 함께 선사했다. 이후 패턴이 획일화란 비판이 따라오기도 했지만, 초창기 시나리오 퀄리티는 칭찬을 보내기 충분하다.

* 미래의 라이터들이 게임을 떠나다

한국게임 스토리가 실종된 시점은 게임방식 획일화가 굳어진 시점과 비슷한 궤를 그린다. 모바일게임이 성장하면서 유저들을 화면에 집중하도록 만들 필요가 줄어들었다. 편의성에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면서 템포가 긴 서사를 배제하는 새로운 승리 공식이 나타났다.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추가된다. 게임 시나리오라이터가 제대로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2개 분야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게임 구조와 시나리오 작법이다. 양쪽 공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은 시간과 교육 커리큘럼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게임 시나리오를 제대로 쓸 역량을 갖춘 작가가 국내 게임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능력을 대우받고 존재감을 과시할 만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업계의 짧은 근속기간 역시 시나리오 일관성을 지키는 데 부적합하다. 작가 개인이나 팀이 3년 이상 게임 하나를 맡아 스토리 기승전결을 매듭짓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스토리 외 파트 인력이 자주 바뀌는 현상도 표현력에 문제를 만든다. 좋은 스토리들이 게임 초창기에만 빛나고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와 연결된다.

* 다시, 이야기를 보고 싶다

게임 전문 시나리오라이터를 양성하지 못하는 환경은 스토리 표현에서 기본기가 사라지는 현상을 낳는다. 인물 대사에서 지나친 문어체와 번역투가 자주 등장하고, 캐릭터는 해당 세계관의 클리셰에 의존한다.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와 비문도 제대로 검수하지 못한 채 게임에 내보내는 일도 흔하다.

유저 대부분은 게임 대사를 스킵하기 시작하고 그만큼 게임사에서 시나리오 파트에 투자하는 비중은 줄어든다. 스킵 유저는 더 많아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게임사들이 스토리 비중을 높인 게임 개발에 다시 눈을 돌리면서 희망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PC와 콘솔 플랫폼은 물론 모바일에서 스토리 중요성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유저를 오래 붙잡아두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문화콘텐츠에서 스토리와 세계관의 힘은 절대적이다.

시스템이 절실하다. 인력 양성을 향한 장기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게임 시나리오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문화 상품으로서 연출 능력과 게임성 발전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다양성이 가장 절실해진 지금, 게임계에서 다시 유저를 놀라게 할 이야기가 탄생하길 빈다.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