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매출이 보장된 장르는 모바일 MMORPG다.

과포화 상태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신작은 쏟아지고 있다. 치열해진 경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투자 이상의 실적을 보장하는 흐름이다. 최상위권 성적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MMORPG를 즐기는 총인구가 늘어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모바일 MMORPG들의 평균접속자(MOU)는 비슷한 순위의 다른 장르 게임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결론은 명확하다. 유저 1인당 지출하는 비용이 늘어난 것이다. 예전부터 MMORPG는 과금 경쟁이 치열한 장르였다. 대부분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준수하는 지금 시점에 어떻게 과금이 추가된 것일까. 비밀은 규제의 사각지대, 장비 성장에 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사실상 랜덤박스 형식 상품에 한정돼 있었다. 자율규제가 강화될수록 MMORPG들은 장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명분은 콘텐츠 추가와 다양한 성장 자유도 마련이었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에서 다채로운 장비 성장은 다채로운 과금으로 나타났다.

유용한 장비를 쉽게 제공한 뒤 강화, 승급, 합성, 옵션 제련, 마법석 장착 등 수많은 성장 요소로 유도하는 방식은 기본이다. 캐릭터를 키워나가는 시간보다 장비를 키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합성은 규제 바깥에 있어서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필요한 옵션은 한정되어 있어 제련 확률도 힘겹다. 각각의 장비 성장마다 추가 패키지를 파는 일은 이미 자연스럽다. 마법석조차 강화 혹은 진화를 따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부터 장비에 과금유도를 제거했다는 MMORPG 신작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의 그늘에 새로운 요소가 숨어 있었다. 펫과 장신구다.

어떤 신작은 캐릭터 장비를 인게임 플레이만으로 최고 등급까지 올릴 수 있고, 장비 뽑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장신구 뽑기는 존재했고, 장신구만큼은 승급이 불가능했다. MMORPG는 대개 PvP가 중심 콘텐츠다. 비슷한 장비 스펙 속에서 강약을 좌우하는 주인공은 장신구였다. 결국 과금유도가 똑같지 않느냐고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장신구 역시 강화, 합성, 제련, 마법석 등 추가 성장요소가 포함된다. 게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통상 장비에 비해 획득과 성장이 어렵다는 점은 동일하다.

업데이트마다 장벽도 함께 올라간다. 희귀에서 영웅에서 고대로, 그뒤 전설에 이어 신화 같은 등급까지 추가된다. 전투력 경쟁을 위해서 무한 과금콘텐츠가 이어지는 것이다. 게임에 따라서는 "상위권에서 통할 장신구 하나 만드는 데에 수백만원이 나간다"고 푸념하는 유저의 이야기도 흔히 만날 수 있다.

펫 개념의 동반자는 최근 게임에 기본적으로 하나 이상 존재한다. 심할 경우 3~4가지 유형의 펫 요소가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한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획득한 이후 상위 등급 합성이 이어지고, 장비처럼 옵션이 추가되기도 한다. 모두 확률형 규제의 사각지대다.

한 대형 게임사 개발자는 "장신구를 갑옷이나 투구 등과 다른 시스템으로 세팅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흔히 떠올리는 '장비'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펫과 장신구를 제외한 장비를 쉽게 제공하는 것은 쇼핑의 '미끼상품'과 같다는 말을 내부에서 주고받기도 한다"며 비판을 가했다.

특정 게임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매출 순위권에 자리잡은 MMORPG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이제 초반 단계부터 과금을 강요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게임 플레이에서 편안하게 레벨을 올리고 기본 장비를 얻도록 한다. 그러나 심화 과정에 진입하면 서서히 과금 필요성이 생기고 확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구조다. 이미 캐릭터에 애정이 붙고 지금까지 키운 정성과 시간이 아까워진 상태에서는 불만이 있어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운이 특별히 좋다면 소량 과금에서 성취감을 느끼지만, 대부분은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사행성의 악순환에 빠진다. "중국식 VIP 과금은 차라리 과금에 비례해 강해지기라도 한다"는 유저들의 말을 단지 농담으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게임산업법 개정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자율규제를 넘어 정보공개 의무화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확률형 규제를 촉구하는 유저 여론이 점차 강화되고 사행성 이슈 역시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유저풀이 정체되고, 유저 개인의 부담은 늘었다. 더 심화될 규제 속에서 지금 같은 기형적 구조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캐릭터 장비와 아이템이 다채롭고 화려해지는 사이, 유저의 지갑과 만족도는 빈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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