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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잊어버린 이야기, 라스트오브어스 파트2
길용찬 기자 | 승인 2020.06.29 17:05

"Okay", 그리고 암전되며 엔딩 크레딧이 올랐다. 

2013년 너티독의 라스트오브어스는 장엄하고 섬세한 내러티브를 보여줬다. 인간과 인간 사이 서사와 감정선을 긴 호흡으로 이끌었고, 자연스럽게 인간과 인류 사이 가치관의 대립을 이끌어내면서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했다.

7년 뒤, 라스트오브어스 파트2(이하 라오어2)는 유저의 'Okay' 사인을 받아내는 데에 실패했다. 

게임 만듦새 때문은 아니었다. 파트1의 미학과 시스템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 위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얹었다. 개발진에게 큰 실험이자 모험이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유저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할 경우 게임 시나리오가 갖는 무게는 더욱 강하다.

그렇다, 동기부여다. 현대 게임은 종합예술의 일종으로 불린다. 1인제작부터 블록버스터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이야기와 표현이 모여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임만의 특징이 있다. 유저의 조작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 여기에서 유저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인간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플레이하는가', '플레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좋은 게임이 갖추는 기본 요건이다.

라오어2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을 놓치고 있었다. 이 불협화음으로 인해,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가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 본 기사는 라스트오브어스 파트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제외한 요소는 완벽에 가깝다. 그래픽은 PS4에서 상상 가능한 최대치를 선보였다. 정교한 레벨 디자인은 유저를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파트1에서 극찬을 받은 사운드는 한층 입체감을 더해 세계 최고 수준을 입증했다. 시각장애 등 각종 어려움을 겪는 유저들을 위한 편의성도 완벽했다.

플레이도 한층 섬세하고 경쾌해졌다. L1 버튼을 사용하는 회피 액션의 손맛, 더욱 다채로워진 전투 방식, 인게임과 시네마틱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출까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요소 중 일부가 빠진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성에서 '마스터피스'의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지 않다.

남은 것은 이야기다. 사실, 라오어2의 시나리오를 떼로 떼어 분석할 경우 매력적인 장점이 다수 숨어 있다. 파트1에서 한 바퀴를 돌아 형성된 유대와 감정선을 강렬하게 파괴하고, 그것을 복수의 순환과 종료로 연결시킨다. 그 과정에서 시간 플롯으로 배경을 보충하고, 시점 전환으로 두 인물을 등치시킨다. 흠 잡을 곳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러나 라오어2의 기본정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다. 선택지가 없이 선형적 내러티브를 가진다. 모든 불협화음은 여기서 발생한다.

초반 조엘의 죽음은 라오어2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다. 게임이 불쾌하다고 해서 만드시 나쁜 것은 아니고, 전작 주인공을 비참하게 죽이는 일도 시나리오에서 종종 쓰인다. 

조엘은 제3자의 시선에서 선인이 아니었다. 엘리를 살리기 위해 인류 백신의 희망을 짓밟았고, 그외 쌓아온 수많은 업보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조엘을 죽인 뒤가 중요했다. 유저들이 가장 몰입해온 인물인 만큼 죽음의 에너지 또한 강렬하고, 여기서 수많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할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충격을 준 전개와 구성과 결말에 비해, 시나리오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는 지나치게 진부하다. 엘리는 조엘을 죽인 애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다. 마침내 애비와 마주치는 순간, 유저는 시간을 되돌아가 애비의 시점에서 다시 플레이를 시작한다. 20시간이 조금 넘는 플레이타임 동안 애비 파트 만 10시간에 육박한다. 사실상 엘리와 애비의 공동 주연 체제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저는, 애비를 플레이하는 내내 한 가지 생각으로 괴로워진다.

"내가 왜?"

게임은 일방적인 감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게임 스트리밍조차도 플레이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다르고, 스타일에 따른 상호작용 차이가 콘텐츠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유저가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없다면, 스토리에서 최소한의 공감대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까지 플레이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시나리오는 결국 의미가 없다.

애비 파트는 유저에게 의지나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 조엘에게 복수한 애비는 조엘이 죽인 의사의 딸이었다. 그는 살아남은 마지막 의사였고, 그로 인해 치료제를 만들 최후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 그러나 이곳은 소수의 인류만 살아남은 채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세계다. 파트1에서 조엘이 죽여야 했던 인간은 수백명, 조엘을 죽이려고 한 인간도 수백명이다. 그 모든 순간을 엘리와 유저는 함께 지켜봤다. 

모두가 알고 있다. 살인은 나쁜 일이며, 지금 유저가 직접 조작으로 죽이는 상대방도 가족과 연인이 있을 것이다. 라오어2의 전체 시나리오는 이 새삼스러운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 게임은 선형적 스토리의 액션 어드벤처다. 왜 제작자의 예고 없던 의도에 의해 유저의 의도가 희생해야 하는가. 라오어2가 지닌 불쾌감에서 의미 있는 담론을 얻기 어려운 이유다. 만일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이 길고 지루한 애비 파트를 과연 끝까지 플레이했을까.

만일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도중, 화면이 암전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시네마틱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자.

"당신이 지금 어택땅으로 죽인 정찰용 마린은 한스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21세의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자원 입대했고, 다음 주 연인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죠. 내장이 뚫리는 순간까지도 어머니의 유품인 팬던트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한편 지금 당신 진영으로 달려오는 저 질럿은 사쿠라스 행성에서 245년 전에 태어난…"

라오어2의 시나리오에서 최대 희생자는 애비다.

애비의 서사와 상징, 그것들이 시나리오 전체에서 작용하는 의미는 완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저가 바라보는 애비의 캐릭터는 기괴해졌다. 문제는 애비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것이다.

스토리에서 애비는 엘리의 거울 같은 존재로 기능하지만, 엘리에 비해 감정을 이입할 요소가 거세된 상태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불륜 배드신, 복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그리고 유저가 미처 따라갈 수 없는 감정의 변화 등이 중심 방해 요소다. 유저는 엘리와 서로 총을 겨누는 애비의 일정을 따라가면서 종교 단체 세라파이트와 더 많은 대결을 진행한다. 다시 묻게 된다. '내가 이 싸움을 왜 하고 있어야 하는가'.

파이어플라이, 새라파이트, 그리고 엘리 일행까지. 애비는 수많은 세력과 대립하면서 갈등의 중심에 선다. 이 모든 과정이 짜임새 있게 구성됐다면 애비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긴 플레이타임에도 불구하고 애비를 둘러싼 서사는 완성되지 못했다. 

과거 회상은 엘리와 애비 파트에서 쉬지 않고 사용된다. 맥락 없이 시간대를 오갈 때도 많고, 그중 일부는 별 의미도 없다. 수족관과 박물관은 시나리오의 흐름에 섞이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등장해 연결을 시도하고, 각종 동물은 '애비가 사실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상징에서 그친다. 조엘과 엘리의 추가 서사 외에 몰입할 만한 구간은 많지 않다.

애비가 세라파이트의 전 소속원인 야라와 레브를 만난 뒤 벌어지는 일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파트1의 조엘과 엘리는 사계절에 걸친 여행을 통해 서로 서사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1년이라는 시간 외에도 두 인물이 가진 배경이 맞물리면서 유저에게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반면 애비가 야라와 레브를 만나 유대를 쌓은 기간은 단 이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십수년을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학살하며 나아간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모순적 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버튼을 눌러 죽여야 하는 유저 중 그것을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오어2의 시나리오는 수많은 클리셰를 작위적으로 파괴했고, 그로 인해 벌어진 틈을 어떻게든 구조적으로 꿰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애비가 유저들의 비난과 증오를 모두 떠안은 것은 덤이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감정에 와닿지도 않으며, 뚜렷한 의미조차 전달하지 못하는 애비의 캐릭터는 그렇게 플레이 시간을 소모시켰다.

"당신이 말해야 할 내용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그 내용을 위해 당신의 심장이 너무 따뜻하게 뛴다면, 틀림없이 완전히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격정적이 되고 감상적이 될 것이며, 당신의 손에서 무엇인가 어색한 것, 졸렬하게 진지한 것, 서투른 것, 반어성이 결여되어 양념이 덜 된 것, 지루하고 진부한 것이 작품이라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최후의 최후 장면까지도 이 이야기는 방향을 찾아낼 여지가 있었다. 중심 상징으로 '임신'과 '기타'가 남아 있었고, 이 두가지를 어떻게 풀어내 복수의 엔딩을 표현할 것인지가 마지막 호기심이었다.

엘리를 완벽한 악마로 재탄생시켰어도 괜찮았다. 혹은 엘리가 조엘과 같은 방식으로 애비에게 복수하고 레브를 살려보낸 뒤, 조엘의 기타줄로 스스로 목을 매는 엔딩이라도 지금보다는 감정선이 잘 연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는 복수를 완성하기 직전에서 그만두고, 잘린 손가락으로 기타를 쳐보려다 좌절한 뒤 떠난다. 선택지도 없다. 이것은 복수가 계속 순환되는 것도 아니고, 순환이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엘리가 애비를 죽이지 않고 떠난다고 해서 복수의 연쇄가 끊어질까? 마지막 씬까지 오는 동안 엘리가 죽여온, 그리고 애비가 죽여온 수많은 인간들의 복수는 무가치할까? 종합하면, 이 엔딩은 아무 의미도 없다. 동시에 무의미를 상징하지도 못한다. 

근거는 다시 이 게임의 기본정보로 돌아온다. 라오어2는 액션 어드벤처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유저 플레이 경험을 잊어버린 결과물이다.

과도한 PC가 문제라는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라오어2가 전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어도 이야기의 평가는 같았을 것이다. 평론가는 찬사를, 유저는 증오를 보냈을 것이다. 게임을 평가하는 입장에서 플레이와, 즐기기 위한 플레이는 미세한 격차가 있다. 이 이야기는 게임의 비평주의가 가진 맹점을 파고든다. 거기에 파트1이 만들어낸 후광 역시 하나의 역할을 한다.

인정할 부분은 있다. 역대 그 어떤 AAA급 게임도 유저를 이렇게 파멸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파격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실험 결과물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무도 만든 적이 없었던 시나리오가 모두 신선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클리셰 파괴는 반드시 훌륭한 것이 아니다. 라오어2의 이야기는 뚜렷한 의미를 가졌으나, 인간에 대한 이해는 가지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유저는 한 명의 인간이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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