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이 어느새 3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올해 독립영화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관객 스코어를 쌓고 있습니다. 70분이 조금 못 미치는 짧은 러닝타임의 덕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다양성을 가진 영화들이 대작 영화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다하며 힘을 내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독립영화계에서 흥행 보증수표이긴 하지요.) 영화 ‘비긴 어게인’이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북미 수익마저 뛰어넘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군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고 하면 그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남자들의 추태, 소주와 담배가 있는 술자리, 찌질하면서도 한편으론 은근히 찔리기도 하는 대사들,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들, 나레이션, 촬영당일 쓴다는 대본들,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처럼 친근한 톱배우들의 연기 등등, 늘 언제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따라오는 요소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좋건 싫건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었죠.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런 모든 요소가 한참을 끓어 형태가 뭉그러진 스튜처럼 한데 뭉쳐있어야 맞다고 봅니다.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항상 유수의 영화제에서 조명을 받고, 그 해의 영화로 꼽히기도 하는데도 막상 감독 본인은 영화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진 않습니다. 소위 예술영화라면 응당 따라와야 할 철학적인 질문이나 미장센의 의미, 전위적인 장면에 대한 해설 등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고, 오히려 아무 의미없는 영화처럼 평가되는 경우도 있죠. 감독의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역시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태도로서 최고의 미덕은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감상 후의 분석은 일단 저만치 밀어두고, 영화 안의 인물들과 함께 웃거나 울면서 함께 걸어 다니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자유의 언덕’은 그의 영화 중에 가장 재미없는 영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그의 영화에서 항상 등장하던 찌질한 남자가 등장하지 않고, 비꼬는 유머나 엇나가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영어가 쓰이고,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는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됩니다. 착하고, 예쁘다고 술에 취해서 말하던 전작의 인물들에 비해, 존경한다는 말은 정말로 존경을 의미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그대로 사랑하는걸 의미합니다.

일본인 ‘모리’(카세 료)는 한국에서 어학원 강사를 하면서 알게 된 ‘권’(서영희)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다짐하고 있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그가 떠나는 사정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병을 앓고 치료를 위해 잠시 떠났던 권이 돌아와 모리에게 온 편지를 받습니다. 열댓장의 두툼한 그 편지를 읽다가, 그녀는 잠시 찾아온 현기증에 편지를 떨어뜨립니다. 그 바람에 편지의 순서가 뒤섞이고, 게다가 한 장은 잃어버리고 맙니다.

영화는 모리가 권을 찾아 서울에 와서 약 이주간 지내면서 썼던 편지를, 권이 일주일 후에 받아 읽으며 각 편지에 등장하는 장면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지의 순서가 엉망진창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장면은 시간이 제멋대로 뒤엉켜 있습니다. ‘영선’(문소리)이라는 까페 주인에게 강아지 ‘꾸미’(맞습니다. 꿈입니다.)를 찾아주어 고맙다고 저녁대접을 받는데, 강아지를 찾아주는 장면은 그보다 뒤에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이를 두고 ‘시간이란 틀의 압력이 좀 약해지면 읽는 내용들 하나하나를 받아들이는데 뭐가 달라질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전작들에서도 시간의 압력은 그리 공고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조금 전 장면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서로 처음 만난 것처럼 행동하고, 어제 함께 술을 먹고 헤어진 사람들이 똑같은 장소에서 마치 처음 먹는 것처럼 술잔을 기울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에서 흩어진 시간의 틀은 애초에 올바른 시간의 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온전한 모습을 알지 못하니 그것이 뒤엉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셈이죠. 하지만 ‘자유의 언덕’에서, 분명히 모리가 권에서 쓴 편지는 시간의 순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의식적으로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축을 원래대로 짜맞추고 싶어합니다. 그래, 이건 이 전이고, 이건 이 후에 들어갈거고, 하면서 말이죠. 모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권에게 쓰려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모리는 서울에 와서 ‘자유의 언덕’을 일본어로 써놓은 까페에 자주 가게됩니다. 거기서 그 까페의 주인인 영선과 친해지게 되고, 그녀의 강아지 꾸미를 찾아주곤 저녁식사 대접을 받을 때 모리가 항상 들고다니는 책이 무엇이냐고 영선이 물어보자, 모리는 그 책의 제목이 ‘시간’이라고 하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얘기합니다. 시간은 사실 형체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인간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에 그걸 어쩔 수 없이 인식할 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시간의 순서대로 사건을 재배치 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는 권을 찾다가 지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가, 술에 취했다가, 영선과 실수로 하룻밤을 보내게 되거나 하는 모리의 모습과 모리의 편지를 읽는 권의 모습을 번갈아서 보여줍니다. 분명 권이 편지를 읽으며 상상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뒤로 갈수록 확신이 없어집니다. 모리의 나레이션은 권에게 말하는 대화체였다가, 어느 순간 독백이었다가, 어느 순간엔 또 다시 권에게 말하는 투로 바뀝니다. 영화는 모리가 문이 고장난 영선의 집 화장실에 갖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정확히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끝납니다.)그 후에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리와 권이 함께 떠나는 해피엔딩과, 권이 잃어버린 편지 한장에 들어있던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에필로그처럼 이어집니다.

실제로 권이 뒤섞인 시간 속에서 모리와 영선이 함께 잠을 자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읽고) 나서 다시 그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잃어버린 한장의 편지에 써있으라고 생각되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영선과 밤새 술을 먹고 그녀를 자신의 방에 재운 후 야외의 테이블에서 밤을 새는 모리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 내용을 권이 볼 수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는 흩어지고 뒤섞여 모리는 영선의 화장실에 앉아 자책감에 빠져서, 권은 까페 자유의 언덕에서 영선과 마주치고서도 감정을 숨긴 채 자연스레 인사를 하곤 담배를 깊이 빨며 상념에 잠긴 채로 영화는 마치게 됩니다. 서로 앞뒤로 등장하는 이 두 씬에서, 홍상수 감독의 어떤 영화보다도 깊은 감정의 폭을 느꼈습니다. 그의 말 그대로 ‘시간의 틀의 압력이 약해진’ 두 사람의 모습에서 말이죠. 그래서 그 뒤에 나오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이, 좀처럼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나란히 언덕을 넘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일말의 기대를 걸게 되기도 합니다.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농담이 없고,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카세 료는 그런 영화의 분위기에 정말 맞춤옷처럼 잘 맞습니다. 그의 눈빛은 깨끗하고,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숲’이라는 의미의 일본어인 ‘모리’라는 이름과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가 권에 대해 느끼는 사랑 역시, 카세 료의 연기 속에 자연스럽게 진지함이 묻어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순간에 늘 미끄러지고 헛발질을 해대던 남자들과는 다르죠.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에서 매력포인트라고 할만한 점들이 상당부분 빠졌음에도, 그의 최신작은 영화가 끝난 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죽음’의 이미지에 맞닿아있는 영화이기도 하구요.(모리는 권이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잠이 많아지고, 음산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시간의 통념을 영화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시간에 대해 탐구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결국 시간이 수렴되는 것은 인간 인식의 끝, 즉 죽음일 테니까요. 모리가 잠이 많아지는 것은 시간이 의미 없어지는 순간, 즉 권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걸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항상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짙은 잔영이 한동안 머리맡에서 남아있곤 했는데, ‘자유의 언덕’은 그 중 가장 음영이 짙습니다. 시간순대로 배열되지 못한 장면과 장면들이 불현듯이 떠오르곤 합니다. 장편영화로서는 한참이나 짧은 한시간 남짓의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 ‘북촌방향’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그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 멀리까지 나아가는 감독인 것 같습니다. 늘 그래왔지만, 다음 작품도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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