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그림이 '덕질'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이제는 메인화면 캐릭터가 가만히 서 있으면 어색하다. 움직이는 그림, 라이브2D(Live2D)가 게임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라이브2D는 하나의 기술인 동시에 소프트웨어 이름이다. 일본 업체 사이버노이즈(Cybernoids)가 2012년 처음 발표했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이 됐다. 때마침 급격히 성장하던 모바일게임 환경에서 활용하기 최적이라는 점이 개발사들에게 큰 매력이었다.

데스티니 차일드, 에픽세븐, 소녀전선, 명일방주,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 붕괴3rd, 벽람항로, 카운터사이드, 그리고 최근 출시한 걸카페건까지. 수요에 맞춰 동아시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라이브2D를 활용 중이다. 그리고,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에픽세븐 '벨로나' 라이브2D
에픽세븐 '벨로나' 라이브2D

어떻게 발전됐을까?

시도와 정착 단계도 각국이 비슷했다. 발표와 함께 다양한 도전이 이뤄졌고, 3~4년이 지나 유저들에게 내세울 만한 퀄리티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2013년 아이돌 파라다이스가 국내 최초로 상용화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많은 유저가 처음 라이브2D를 인식한 계기는 2016년 데스티니 차일드다. 김형태 대표 특유의 화풍은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고, 고품질의 일러스트가 움직이기까지 한다는 점이 큰 화제를 불러왔다.

기술의 시발점인 일본에서는 더욱 큰 투자가 진행됐다. 미소녀게임 노하우가 긴 시간 쌓인 업계인 만큼 초반 퀄리티에서 앞서나갔다. 2014년 괴리성 밀리언아서는 이미 완성된 라이브2D를 선보였다. 이후 3대 캐릭터 육성 IP로 불리는 아이돌마스터, 러브라이브, 뱅드림 역시 모바일에서 라이브2D를 기본 탑재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대만은 비교적 후발주자다. 그러나 시장과 자본 규모로 인해 잠재력은 가장 클 수 있다는 전망이 존재했고, 실제로 엄청난 발전 속도가 나타났다. 소녀전선과 벽람항로 등 코레류로 대변되는 게임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추가됐고, 지금 시점에서는 역으로 발전 방향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어쩌다가 필수가 됐을까?

많은 유저들이 라이브2D를 원하게 된 이유는 성능이나 편의성을 완전히 떠난, 철저하게 감성적인 문제다. 예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성적인 분석이 끼어들 이유는 없다.

라이브2D의 발전은 성장 중심의 MMORPG와 지향점이 정반대에 있다. 후자가 내 캐릭터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게임 세계에서 더 상위에 선 모습을 성취하려 한다면, 전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더 예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소유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양쪽 다 캐릭터를 통해 유저의 욕망을 충족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결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점이 과금모델에서 장점으로 나타났다. 프리투플레이(F2P) 게임 BM의 가장 큰 미덕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수익'이다. 라이브2D는 그 목표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저 보기에 좋을 뿐이지만, 유저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소녀전선을 비롯한 몇몇 게임은 특정 한정 스킨에만 라이브2D가 적용되게 만들어 쏠쏠한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디지털 피규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널리 퍼졌다. 왜 그런 곳에 돈을 쓰느냐는 조롱의 의미로도 쓰인 말이다. 하지만 현실 피규어가 실용성이 없어도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처럼, 취미 지출에 실용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작업이 많이 힘들까?

관련 작업 종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처음 익힐 때 프레임워크의 개념을 이해하고 기능 학습을 익힐 때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적응되면 기술이 어려워서 못 만드는 경우는 없다. 아마추어 개인이 라이브2D를 제작해 유튜브나 GIF파일로 공개하는 모습도 흔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애니메이팅 기술이 기본적으로 그렇지만, 똑같은 부위를 반복해 그리고 연결하는 작업을 게속해야 한다. 한 가지 동작 반복은 작업 시간이 짧다. 그러나 움직임이 세밀할수록, 움직이는 지점이 많을수록, 반응 패턴이 다양할수록 노동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즉, 최고 수준의 라이브2D를 기한에 맞춰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 시간은 누구나 한정됐으니, 결국 인력과 자본이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이다.

걸카페건 '그루니에' 라이브2D
걸카페건 '그루니에' 라이브2D

그래서, 중국이 라이브2D 기술을 선도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전세계 모든 게임계를 통틀어 자본 규모에 대비해 인력이 가장 싼 지역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하청 작업이 대부분 중국으로 넘어간 것도 그런 이유다. 라이브2D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라이브2D에도 급이 있다. 첫째는 자동으로 반복 움직임을 취하는 고정형 라이브다. 대표적으로 일본 사이게임즈(데레스테, 프리코네)가 이 방식을 사용한다. 둘째는 특별한 조작을 하면 그에 따른 동작을 취하는 반응형 라이브인데, 이렇게 구현하는 작업이 훨씬 오래 걸리고 많은 인력이 들어간다.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구현되는 기법이다.

최근 출시한 걸카페건은 그 부분에서 놀랍다. 전투의 재미는 지적할 부분이 꽤 많다. 그런데 라이브2D의 애니메이션 구현이 최고의 품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캐릭터마다 수많은 상호작용 모션이 존재하는데 모두 자연스럽다. 얼굴과 신체 움직임, 옷의 변화도 3D처럼 섬세하다. 앞으로 중국에서 나올 게임들이 얼마나 더 높은 퀄리티를 보여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데스티니 차일드 '루살카' 라이브2D
데스티니 차일드 '루살카' 라이브2D

라이브2D의 미래는? 엔터테인먼트의 미래

물론, 라이브2D 퀄리티가 게임의 호감도와 경쟁력을 모두 결정하진 않는다. 그 점에서 국내 개발 수집형 게임들도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미 출시한 게임도 서비스 과정에서 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다.

데스티니 차일드가 대표적이다. 출시 초창기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고, 벤치마킹 대상도 없었다.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는 강연에서 "캐릭터 하나를 최대 200조각까지 나누고, 모든 직원이 달라붙어 공부하면서 움직임을 배워야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만큼 힘들여 만들었지만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4년간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최근 등장한 캐릭터들의 라이브 화면은 비현실적이던 모습이 한결 개선됐고, 텍스처 움직임도 섬세해졌다. 수많은 부위가 함께 움직이는 기존 장점과 결합되어 유려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미소녀 수집형 게임은 커다란 장르를 형성했다. 이성보다 감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의 특성과도 닮아 있다. 기술보다 표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자본을 이길 수 없더라도, 창작 능력을 되살려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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