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나 MT에서 사람은 많고 놀 거리는 없을 때, 그 자리를 메워준 '효자 종목'이 있었다. 마피아게임이다.

선량한 시민 사이에 섞인 한두 명의 마피아를 찾는 간단한 룰이다. 하지만 재미는 확실했다. 온갖 심리전과 정치질과 말싸움이 난무했으니까. 반면 헛기침 한번 했을 뿐인데 게임 시작부터 마피아로 몰려서 처형되거나, 첫날밤 희생자가 된 채 한시간 넘게 길어지는 싸움을 지켜보면서 손가락만 빨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늑대인간류 게임으로 더 알려져 있다. 보드게임 겸 파티게임인 타뷸라의 늑대(Lupus in Tabula)가 큰 흥행을 거뒀고, 국내에서 '마피아류'로 불리는 게임들의 근본 줄기가 됐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즐거운 게임 요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더 나아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다중참여 비디오게임의 시대와 함께.

보드게임 '레지스탕스 아발론'
보드게임 '레지스탕스 아발론'

직관적이고 유저 참여요소가 많은 룰 덕분에, 복잡한 시스템이 없어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마피아류 웹게임도 다수 등장했고, 심지어 mIRC 같은 순수 채팅 클라이언트에서 진행하는 모임도 있었다.

굳이 플레이 목표가 마피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도, '우리 중의 배신자' 방식은 여러 게임에서 활용됐다. 타뷸라의 늑대 제작사의 또다른 보드게임 '뱅(BANG)'이 대표적이다.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유저마다 카드를 이용해 총싸움을 펼치는데, 무법자 유저가 보안관의 조수인 척 연기하며 신분을 숨기기 때문에 마피아식 추리 요소를 함께 가진다.

레지스탕스 아발론은 마피아류 보드게임 중에서도 게임성으로 눈에 띄었다. 아서왕 전설 세계관에서 선과 악의 세력이 자신을 숨긴 채 승패를 가르는 방식으로, 특수능력의 상성이 서로 맞물려 추리의 영역이 크게 늘었다. 지금도 보드게임 카페에서 타뷸라의 늑대를 즐겨본 손님들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집어들게 되는 게임이다.

디시트(Deceit)
디시트(Deceit)

유저가 직접 제작한 경우도 많았다. 유즈맵 방식이 대표적이다. 워크래프트3 유즈맵으로 만든 타뷸라의 늑대는 지금까지도 이것 하나만 플레이하는 '고인물' 유저들이 존재할 정도다. 이 유즈맵은 스타크래프트2에서 더 발전해 독자적 게임성을 갖추게 됐다.

이렇게 수요가 많았지만, 온라인게임으로 한계는 있었다. 가장 큰 단점은 플레이 과정에서 얻는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 합리적 추리가 아니라 오직 감으로 찍거나 정치력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일찍 탈락해버리면 게임을 지켜볼 재미가 지나치게 없다는 것도 고질적 문제였다.

결국 마피아류는 대부분의 유저에게 어쩌다 한번씩 즐기는 미니게임 정도 위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이 게임성 진화를 이끌어냈다.

"온라인게임인데, 서로 마주보고 있을 필요 없이 미션을 시키면 되잖아?"

어몽어스(Among Us)
어몽어스(Among Us)

조건은 갖춰졌다. 소규모 개발로도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방식이, 게임 스트리밍의 성장을 만나자 흥미로운 시너지가 나타났다.

2017년 디시트(Deceit)는 6인 멀티플레이로 좀비 세계의 마피아게임을 구현했다. 무작위로 2명이 감염자가 되고, 나머지 일반 유저는 생존한 채로 감염자를 색출해가며 출구를 찾아야 한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처럼 호러 요소가 섞여서 긴박감이 확실하다. 특수능력을 활용하는 판단력과 컨트롤도 주요 조건이다.

어몽어스(Among Us)는 2018년 출시됐지만, 게임방송 콘텐츠로 인해 최근 재조명을 받은 경우다. 우주선 속에서 미션을 끝까지 수행하거나, 크루원 속 섞인 배신자(임포스터)를 모두 잡아내면 승리다. 임포스터가 죽인 시체를 누군가 발견해 신고하면 투표가 벌어지는 시스템이라, 서로 알리바이를 교환하는 추리가 가능한 점이 매력이다. 귀여운 캐릭터가 친근감을 준다는 장점도 있다.

어그로우(Agrou)는 올해 7월 말 출시한 따끈따끈 신작이다. 타뷸라의 늑대 룰을 가장 정교하게 온라인 최적화한 게임이다. 시민과 늑대 진영에 수많은 직업이 존재해 수많은 전략과 경우의 수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어 미지원이 좀 아쉽지만, 유저가 불어날수록 잠재력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어그로우(Agrou)
어그로우(Agrou)

비디오게임에서 마피아류의 발전은 이제 시작된 셈이다. 초창기 게임들이 단순히 시민을 죽이고 마피아를 때려맞추기에 집중됐다면, 이제 독자적인 게임 시스템 속에서 마피아류를 섞어가며 정체성이 생기고 있다.

물론 언어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3개 조건 중 하나가 필요하다. 영어를 잘 하거나, 국내 유저만 모일 만큼 흥행한 게임이거나, 게임 친구가 많거나. 하지만 잘 만들면 국내 대흥행도 꿈이 아니다. 스팀과 보이스톡이 빠른 속도로 보급됐고, 마피아 룰은 처음부터 친숙했다.

스팀 멀티플레이 게임은 더이상 국내에서 낯설지 않다. 새로운 융합장르 가능성도 충분히 내비친 것이 아닐까. 어쩌면 마피아류 게임의 진짜 전성기는 이제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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