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광기'

최근 캐릭터 트렌드를 반영하는 단어죠. 남성 캐릭터는 예로부터 미친 성격을 자랑하는 주인공과 빌런이 흔했지만, 여성 캐릭터가 다채로워진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청순이나 큐티, 섹시 같은 단어로 설명되는 캐릭터는 눈에 띄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네요.

게임에서 만드는 캐릭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도 자주 들립니다. 웬만한 콘셉트는 다 나왔죠. 그만큼 격렬하고 눈에 띄는 스타일이 필요해졌습니다. 단순히 나쁜 성격이나 호전광 스타일은 예사고, 이중인격에 피 갈망까지 진심으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가 속속 나옵니다.

세상은 넓고 사이코는 많으니, 국내 서비스 중인 게임으로 범위를 좁혀봤습니다. 인간성이 기묘한데 밉진 않을 것, 독특한 비주얼을 얹어서 개성을 살릴 것.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이코 캐릭터들은 이런 특징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징크스 (리그오브레전드)

"뭐 할 차례였더라? 아! 깽판 칠 차례였지!"

이 친구를 빼고 사이코를 논할 수 있을까요? 2013년 LoL 신규 챔프로 등장한 뒤, '순수하게 미친 여캐'의 교과서로 자리잡았습니다.

필트오버에 나타나 오직 재미로 폭탄과 개틀링건을 퍼부으면서 '깽판'을 치고, 바이와 케이틀린을 피해 달아나면서 시민을 학살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연출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광기 어린 대사와 스킬셋을 만날 수 있죠. 징크스 뮤직비디오는 LoL을 플레이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극찬을 받았고, 조회수는 1억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없었던 스타일은 아닙니다. DC코믹스의 할리퀸이 이미 정립한 파괴적인 하이틴 악동 캐릭터는 성별을 불문하고 빌런의 정석입니다. 그런데 클리셰 중 매력적인 부분만 현대적으로 조합해낸 다음, 트레일러를 통한 매력발산으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라이엇게임즈의 장기이기도 하죠.

클라릿사 (에픽세븐)

"여신께서 걷던 길을... 피로 물들여주지"

모르는 사람에게 메인 일러스트를 보여주고 "어떤 성격일 것 같아?" 라고 물어보면, 단 한명도 정답을 말하지 못할 겁니다.

다소곳한 수녀 같은 모습을 가졌고 수녀는 맞습니다. 하지만 피와 폭력을 갈망하는 이중인격을 가졌고, 힐러 아니고 전사입니다. 손에 쥔 저건 스태프 아니고 철퇴입니다. 스킬 이름부터 '광기'와 '히스테릭'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푸른성십자회 소속 수녀로, 여신의 말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모든 적을 후려치며 다닌다는 설명이 곁들여집니다. 사제들이 홍보에 이용하기 위해 순례길에 음유시인을 동행시켰다가 절망에 빠졌다고 하죠. 기품 있던 표정을 광기에 물들이면서 신나게 내려치는 철퇴 연출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개성을 자랑합니다.

미라 한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저 여자, 자치령보다 독하오" by 발레리안

스타크래프트2의 수많은 인물 중 짧게 등장하지만, 등장시간 대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입니다. 사실, 자기 부대의 색깔을 모두 분홍색으로 칠해버린 취향부터 이미 건전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용병부대 미라의 약탈단을 이끄는 대장입니다. 12개 행성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만큼 악명이 높고, 게임에서 다른 인물들이 질색하며 뱉는 대사가 일품이죠. 짐 레이너의 부관 맷 호너와의 관계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극과 극의 성격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부부가 된 사이입니다.

미라 한이 일방적으로 소유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어찌됐든 커플이 된 둘 사이의 만담은, 비록 짧지만 유저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게다가 협동전 임무 사령관으로 '한과 호너'가 추가된 뒤로 세계관 공식 부부의 권위(?)는 굳건한 상태입니다.

에클레어 (크리티카)

"무기의 재고는 충분한가? 근데 이거 저작궈..."

티저 영상부터 페이트 시리즈의 에미야 시로 대사를 패러디하면서 범상치 않게 등장한 에클레어, 앞서 이야기한 징크스와도 유사점이 꽤 보입니다. 푸른색 계열의 묶은머리, 호방한 옷차림과 분노조절장애 총난사까지.

그래도 개성이 있습니다. 크리티카 세계관에 어울리게 소화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징크스가 순수한 재미로 깽판을 친다면 에클레어는 귀찮아서 칼 대신 총으로 말하는 스타일입니다. 배가 고파도 난폭해지고, 일단 싸울 상대가 보이면 뛰어듭니다. 화풀이를 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죠.
   
고아라는 배경이 있지만 신파나 진지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쭈그려앉은 채 "할배한텐 미안하지만 세상만 뜯어고쳐 놓고 효도할 거라니까!"라고 말하는 캐릭터, 성격은 좀 이상해도 꽤나 볼 맛이 납니다.

Mk48 (소녀전선)

"위로해줄 거야? 아니면 괴롭힐 거야? 어느쪽이든 상관없어"

암울한 세계관에 별의별 캐릭터가 다 나오는 게임이니만큼 특이한 성격도 많은데, 보통은 주인공 부대의 M4 SOPMOD를 주로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낮은 인지도 속에서 진짜 광기를 지닌 총기는 따로 있습니다. 그 이름은 Mk48, 별명에 미칠 광(狂) 한자가 포함될 정도죠.
 
모두의 앞에서 누군가를 짓밟고, 제약 없이 날뛰면서 적을 없애는 것을 삶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공격당하면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 성격을 동시에 최대치로 올린 하이브리드 광기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비운의 캐릭터기도 합니다. 출시 초창기엔 유용한 성능을 보여줬는데, 이후 아무런 추가 상향이 없던 사이에 메타가 바뀌고 다른 기관총에게 추월당하면서 버려져 있거든요. 게다가 아직까지 코스튬도 하나 없어서 소수 마니아들을 눈물짓게 합니다.

오로시아 (영원한 7일의 도시)

"여보세요. 널 사랑해. 여보세요. 듣고 있지?"

"죽여서라도 가지겠어" 라는 '얀데레' 성격을 가집니다. 물론 요즘 세상에 얀데레 정도가 뭐가 특이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어요. 문제는 12세 이용가 게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충격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서브 스토리에서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질문에 '심장'이라고 대답하는 장면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합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신체기관을 말합니다. 심장을 먹으면 그 사람의 사랑을 가질 수 있다나요. 이야기가 흐를수록 그 말은 공포감으로 돌아옵니다.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상태라 누구든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연쇄사랑마에 가깝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굉장히 감각적이어서 고정팬도 꽤 보이고요. 빌런을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무섭고도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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