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대만영화가 등장했다. 하지만 게임 유저들은 익숙할 영화다.

13일 국내 개봉한 반교: 디텐션의 원작은 대만에서 2017년 출시한 동명의 게임이다. 생소한 인지도, 횡스크롤 호러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장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게임성과 섬세한 이야기는 세계적 흥행을 거두기 부족함이 없었다. 개발사 레드캔들게임스는 후속작 환원: 디보션까지 성공시키면서 주목 받는 게임사가 됐다.

영화화 역시 성공적이었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매진된 영화로, 관람 요청 쇄도로 추가 상영을 진행했다. 대만 현지 반응도 뜨거웠다. 개봉 직후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2019 금마장 5관왕에 이어 22회 타이베이영화제에서 대상과 최우수영화상을 포함해 6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게임이 가진 스토리텔링 기법을 영화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용자 체감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는 주로 오락형 영화에 머물렀다. 영화 반교: 디텐션은 그 틀을 깼다. 게임과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원래 누구나 자유롭다"

비밀 독서회 풍경을 그리는 장면에서 두 작가가 쓴 책의 구절이 주로 등장한다. 인도 저항시인 타고르, 중국의 반정부 논객이자 소설가 루쉰. 학생들이 그들의 저서를 배껴쓰는 모습은 대만을 둘러싼 풍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하나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라인은 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플롯은 영화 매체에 어울리게 개편됐다. 원작은 두 주인공이 늦은 밤 학교에서 눈을 뜨며 시작하지만, 영화는 그전에 시대 배경과 주요 인물 소개를 미리 깔아놓는다. 그밖에 중간 사건의 순서나 인물 비중에 차이를 뒀다. 

시대 배경은 스토리의 핵심이다. 영화는 관객이 직접 관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순서 배치를 의도했다. 작중 배경이 되는 1960년경 대만은 장제스의 국민당 치하에서 장기간 계엄령 통치가 이어진 시기다. 정부 사상에 반하는 발언과 물건은 모두 금지됐고, 금서 소지만 해도 공산당 간첩으로 몰려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암울한 시대상은 곧 공포로 작용한다. 대만 계엄령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40년 가까이 지속됐다. 반교: 디텐션의 이야기는 취화고등학교에서 몇몇 교사와 학생들이 모여 만든 비밀 독서회에서 시작한다. 갈등과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극으로 치닫는다.

원작 게임 '반교: 디텐션(2017)'
원작 게임 '반교: 디텐션(2017)'

게임 특유의 시점은 영화에서 개성을 살린 연출로 승화되고, 독자적 장면 구성은 영화에 맞게 밀도를 높인다. 

존 쉬 감독은 게임 마니아로, 원작게임 출시와 동시에 플레이한 뒤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발언했다. 게임을 향한 폭넓은 이해도는 원작의 2D 횡스크롤 시점 활용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주인공 팡레이신이 복도를 헤매는 초반 부분은 게임의 긴박감을 같은 구도로 살렸다. 

거기에 장 선생님과 유령의 모습이 앞뒤로 교차하는 연출에서 반교: 디텐션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미장센을 고스란히 담았다. 팡레이신의 과거 회상으로 접어드는 매개체인 라디오 연출 역시 게임에 못지않을 만큼 훌륭하게 영화화한 사례다. 

오직 게임에 의지한 것도 아니다. 중반부 결정적 전환점에서 나오는 전등 씬은 영화만의 오리지널 연출인 동시에, 극중 최고의 연출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 남주인공 웨이중팅의 비중 상승, 영화식으로 밀도를 높여 표현한 거대 귀신은 오리지널리티 속에서 원작 이상의 몰입력을 보인다.

인물 묘사를 통한 재해석의 맛도 살아 있다. 반교: 디텐션 영화화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제는 팡레이신의 인물 묘사였다. 

원작은 2D 게임이기 때문에 다양한 표정 구현이 불가능했다. 후반 진행에서 내면과의 대화와 수많은 장면으로 격렬한 심리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를 똑같이 연출할 경우 괴리감은 피할 수 없다. 팡레이신은 스토리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고, 표현 변화는 항상 섬세할 필요가 있었다. 

영화는 그 어려운 과제를 성공으로 만들어낸다. 팡레이신 역을 맡은 배우 왕징(王淨)은 고난이도의 표정과 몸짓 표현을 카메라에 비춰냈다. 때로는 비극이었고, 때때로 격렬했다. 중요한 순간에는 그 모든 것을 표정 하나에 담기도 했다. 타이베이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연기였다. 

영화 '반교: 디텐션'은 게임이 전달하고자 했던 경험과 감정을 완전히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엔딩 연출이나 대사는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이 약간의 변화는 두 매체를 모두 즐긴 입장에서 완전히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임을 즐긴 유저가 영화를 관람하거나, 영화를 본 뒤 게임을 체험해도 새로울 수 있는 이유다.

아시아권 특유의 서늘한 공포물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다. 기존 호러영화와 다른 결을 가져갔고, 그것은 역으로 개성이 된다. 강렬한 공포 자극보다는 현실적 심리와 비극을 촘촘하게 쌓아올린다. 공포라는 틀 속에 시대의 무게를 녹인 작품에 가깝다.

게임 원작 영화는 점점 늘고 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지는 미디어 프랜차이즈 시대에서, 반교: 디텐션이 게임과 영화에서 보여준 표현력은 창작자들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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