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간 대결, 혹은 개인 대결이었다. 팀과 개인이 싸우는 구도는 비디오게임에서 늦게 형성된 편이다. 그리고 '비대칭 PvP'라는 거대한 장르로 떠올랐다.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인류의 전통놀이 술래잡기와 숨바꼭질 등, 술래가 존재하는 모든 야외놀이는 비대칭 PvP의 성격을 띤다. 술래는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는 패널티 개념이고,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술래로 만들어야 하는 목표를 가졌다. 

일대다 대결에서 '1인'의 개념이 새롭게 해석되면서, 게임 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합심해서 한 사람을 추격하기도 하고, 한명에게 강한 힘을 주고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다양한 시도와 과정을 거치면서 비대칭 PvP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시작은 '도둑잡기'였다

보드게임 시대, 비대칭 PvP의 원류로 자리잡은 게임은 스코틀랜드 야드다. 1983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로, 다수의 경찰 유저가 1명의 도둑 유저를 잡아야 하는 게임이다. 간단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교통수단을 계산해 움직이는 전략, 상대 동선을 예측하는 심리전, 수사망이 좁혀지는 긴장감이 모두 구현된 수작이다.

이후 파생작이 여럿 나오면서 발전했다. 가장 뛰어난 평가의 게임은 2011년 화이트채플에서 온 편지, 실제 영국 지역 화이트채플에서 악명 높았던 살인마 잭 더 리퍼에서 착안한 게임이다. 추리와 심리전 요소가 더욱 정교하게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비대칭 PvP를 비디오게임의 메인 콘텐츠에서 만나는 일은 오래 걸렸다. 기존 게임의 각종 모드 중 하나로 활용되거나, 유저 제작맵의 미니게임에서 그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서 톰과제리 등 다양한 인기게임이 호응을 얻었다. 

수요는 분명 존재했으나, 제대로 된 공급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개발 관점의 문제였다. 1인 쪽이 실수하면 허무하게 끝나는 만큼 통신 인프라와 서버 상태가 안정되어야 했고, 밸런스 조정과 장기 운영도 까다롭다. 또한 성공 사례가 없는 방식이라 모험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볼브(Evolve) - 게임성은 참 좋았는데...

'각 잡고 만든' 비대칭 PvP 게임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헌터 4인과 몬스터 1인의 대결로, 레프드4데드를 개발했던 터틀락 스튜디오가 개발해 2015년 출시했다. 그래픽과 연출이 준수했고, 초반 쫓겨다녀야 하는 몬스터가 진화를 거듭해 역으로 헌터를 습격하게 되는 흐름도 훌륭했다. 헌터팀과 몬스터, 양쪽 모두 치밀한 전략과 전술 발휘가 가능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1년 만에 무료플레이로 전환됐고, 2018년 서비스가 종료됐다. 여러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게임의 근본 뼈대에 결함이 있었다. 팀에게 너무 과중한 팀플레이를 요구한 것이다. MMORPG의 탱딜힐과 같이 역할군이 나뉘어 '1인 캐리'가 불가능했고, 헌터 중 한명이라도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승률은 급하강했다.

유저 입장에서 가볍게 즐길 수 없다는 단점은 치명적이었다. 어느 게임이든 미리 팀을 갖추고 보이스채팅을 활용하는 코어플레이 비율은 많지 않다. 신규 유저 역시 몬스터를 해도 이길 수 없고, 헌터를 해도 스스로 구멍이 되어 이길 수 없었다. 이볼브는 게임시장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과제만 남긴 채 도태됐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그 과제를 완수해낸 게임이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이하 데바데)였다. 이볼브의 단점이 데바데에게는 곧 장점이었다. 

다수 추격과 1인 도주 구도에서 벗어나 호러 장르의 형태를 띤 것은 성공적이었다. 1명이 살인마를 맡아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4명의 생존자는 잡히지 않고 탈출하는 것이 목표다. 규칙 역시 직관적이었다. 발전기를 돌려 출구를 열고 탈출, 생존자 유저는 한 문장만 기억해도 초기 적응에 문제가 없었다.

팀플레이의 여지를 끊고 각자 점수를 집계해 성적을 결정하는 시스템도 장점이었다. 숙련 유저는 오직 자기 플레이로 평가받을 수 있고, 신규 유저는 장벽이 비교적 낮다. 점수벌기 작업이나 밸런스 문제가 종종 입에 오르내렸지만, 비대칭 PvP 기준에서 데바데만큼 준수한 밸런스를 유지한 게임도 없었다.

여기에 롱런을 결정한 큰 요인은 질과 양 모두를 만족시킨 업데이트였다. 오히려 유저가 왜 벌써 신규 캐릭터가 나오냐고 놀랄 정도로 템포가 빨랐다. 퀄리티나 개성 면에서도 대부분 좋은 평을 받았다. 타 게임과 활발히 이루어진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몰이의 수단이 됐다.

'포스트 데바데'를 꿈꾸는 게임들

PC와 콘솔에 데바데가 있었다면, 모바일은 제5인격이 있었다. 넷이즈가 데바데 라이선스를 정식으로 얻어 출시한 게임이고, 중국이 모바일 컨버전 역량을 확실히 갖췄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다.

원작의 호러 세계관과 게임 규칙을 살리면서도, 폭넓은 유저층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화풍을 접목시켜 잔혹동화 분위기로 재창조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봉제인형풍 캐릭터에 걸맞게 강렬한 스킬을 개성으로 활용한 설계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 어느새 3년차를 맞이했지만, 모바일 비대칭 PvP에서 견줄 만한 게임은 찾기 어렵다.

반면 PC 플랫폼에서는 데바데를 위협하는 게임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호러 비대칭으로 데모니컬이 얼리액세스를 시작하며 잠시 기대를 받았지만, 지나치게 뒤떨어진 비주얼 퀄리티와 단조로운 게임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태다.

최근은 몬스트럼2가 전작의 싱글 호러를 탈피하고 데바데의 게임 방식을 차용해 클로즈베타를 실시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비주얼과 기술력 면에서 한계를 보였고, 시스템이 복잡해 빠르게 적응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다 오히려 전작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생기고 있다.

'공포를 제외한' 비대칭 PvP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아류작이 아시아 지역에서 논란이 되는 것처럼, 서양 중소규모 게임 시장에서도 수많은 카피캣과 아류작이 나온다. 그러나 호러 비대칭 PvP 분야는 기존 흥행작의 발전 속도를 오히려 신작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도다.

비대칭 PvP가 정체 상태는 아니다. 호러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눈을 돌릴 경우 개척할 시장은 충분히 많다. 데바데 이전 나왔던 모드나 유즈맵들은 호러 외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즈맵은 새로운 장르 융합이 발생할 때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해왔다.

아직 세계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빛나는 아이디어 하나가 장르를 선점할 수 있다. 수요는 이미 많다. 국내에서도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뛰어들 만한 분야다. 힌트는 이미 나온 게임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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