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이 3백만 관객에 육박하며 ‘워낭소리’의 기록을 깨고 다양성 영화로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개봉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명량’과 같은 초거대 흥행작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은은하게 흥행의 불을 살리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입소문의 위력이 이렇게나 오래가는 영화도 드물겠죠.(물론 별다른 흥행작이 등장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요.) 이미 북미의 흥행수익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존 카니 감독은 영화 ‘원스’를 통해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바 있습니다. 툭툭 끊어지는 조악하다면 할 수 있는 편집과 저예산인 탓에 엉망인 화질 속에서도 남녀 주인공의 매력과 음악만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던 바로 그 영화입니다. 인디음악영화로서 유래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실제로 인디밴드의 보컬이었던 주연배우 글렌 핸사드 역시 전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원스’라는 영화가 가진 매력이 대단했죠.

‘비긴 어게인’ 역시 음악영화입니다. 잘 나가는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더 이상 떨어질데가 없을 정도로 추락한 댄(마크 버팔로)이, 뮤지션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와 뉴욕으로 왔지만 그가 성공한 후 이별을 통보 받고 깊은 상심에 빠져 뉴욕을 떠나려던 싱어송 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레타의 노래에서 수년간 찾지 못했던 진주를 발견하고 그녀를 설득해 함께 무작정 앨범 작업을 시작하게 되죠.

전작의 신선했던 스토리 라인에 비해,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들이 겪는 상황들은 거물급 주연배우들의 얼굴이 낯 익은 것만큼 익숙해 보입니다. 퇴물 프로듀서와 인정받지 못했지만 재능을 숨기고 있는 싱어송 라이터가 만나 단지 좋은 음악을 위해 음반 작업을 시작하고, 단지 음악이 좋아서 즐기고 싶은 훌륭한 세션들이 합류하고, 스튜디오도 없이 도시의 소음을 리듬 삼아 거리에서 녹음을 합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백코러스를 맡고 주민들의 조용히 하라는 욕설이 효과음으로 삽입됩니다. 그들이 진정성 있는, 단순히 자본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 내내 두 주인공이 외치는 진정성에 비해 이런 익숙한 상황과 장치들은 마치 영화가자가당착에 조금씩 질식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스플리터(두 개의 리시버를 한꺼번에 꽂을 수 있는 커넥터)를 통해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걸으며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씬, 크레타가 가정사로 인해 비뚤어진 댄의 딸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친해지는 씬이나 댄 때문에 갑부가 된 랩퍼(씨 로 그린입니다!)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을 지원한다던지, 그렇게 음악을 하며 멀어졌던 가족이 서서히 재결합하게 되는 구조까지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영화의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영화 내에서 크레타가 전 남자친구이자 팝스타로 대성공한 데이브의 신곡(연인이었을 때 그를 위해 만들어 줬던 ‘Lost stars’의 편곡 버전입니다)을 듣고 ‘이건 우리가 바랐던 음악이 아니’라고 대사를 하는 지점에 이르면 영화가 외치는 진정성이 뻔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한술 더 떠 데이브는 빠른 비트의 댄스음악으로 편곡했던 곡을 최초의 분위기에 맞게 다시 편곡하고,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열창합니다.(밴드의 락음악이 되면 진정성이 더 해지는 걸까요?) 하긴 빠른 편곡의 ‘Lost stars’도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에 넣은걸 보면 영화가 바라는 지점을 짐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장면들에서 초심이 변했다는 평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을 애덤 리바인의 전기영화 같은 분위기가 풍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속사를 두번이나 써야할 정도로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댄이 크레타의 노래를 처음 들을 때 편곡이 머릿 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귀엽기 그지없고, 도시를 배경으로 몸을 씰룩거리며 흥에 겨워 녹음을 할 땐 보는 사람도 함께 들썩거리고, 앨범이 완성된걸 기념하는 파티에선 관객들도 함께 춤이라도 추고 싶어 안달이 나며 그들을 문전박대했던 레이블에서 그들을 잡기 위해 안달이 난 걸 보면 속이 다 시원합니다. 크레타가 데이브의 공연에 찾아와 그가 진심을 다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며 눈물 짓는 장면에선 마치 공연장에 있는 것처럼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죠.

마크 러팔로와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 역시 훌륭합니다. 까칠한 싱어송 라이터로 분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시크한 매력도 매력이지만, 마크 러팔로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 그의 손짓 발짓에 영화가 이리저리 요동칠 정도로 말이죠. 애덤 리바인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그림자가 얼핏 비치긴 하지만 뮤지션 출신으로써 무난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노래 부르는 장면에선 역시 존재감이 크구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러브 액츄얼리의 인디버젼이랄까요. 진부한 설정과 대사가 넘치고 사랑과 우정이 낯뜨겁게 펼쳐지지만 그것만으로 치부하기엔 매력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 모두 음악이 훌륭한 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다른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미소가 번지는 기분 좋은 영화입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영화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오랫동안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는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이해웅(http://yarktei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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